탐사보도 없는 곳, 민주주의도 없다
  • 나경희 기자
  • 호수 587
  • 승인 2018.12.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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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언론이 위기 상황이다. 언론 자유지수는 ‘나쁨’ 또는 ‘매우 나쁨’이다. 2018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 ‘탐사보도와 아시아 저널리즘’에서는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제시되었다.
언론 자유를 감시하는 국제 비영리단체 ‘국경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아시아 언론자유지수는 ‘나쁨’ 또는 ‘매우 나쁨’이다. 일본 67위, 중국 167위, 한국은 2016년 70위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43위로 회복세다. 언론자유지수가 언론의 독립성이나 공정성, 저널리즘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시아 저널리즘이 처한 위기의 단면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위기 국면을 극복하려는 언론사와 탐사보도 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2월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탐사보도와 아시아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2018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이하 SJC 2018)’가 열렸다.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창간한 <시사IN>이 지난해 창간 10주년을 맞아 ‘언론 독립, 탐사보도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SJC 2017’을 개최한 데 이어 두 번째다.

표완수 <시사IN> 대표이사의 개막사에 이어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과 정규성 한국기자협회 회장이 축사를 했다. 지난해 영상으로 기조 발제를 했던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올해에는 직접 연단에 섰다.
ⓒ시사IN 이명익박상규 <셜록> 기자, 크리스 영 홍콩 기자협회장, 기무라 히데아키 <와세다 크로니클> 기자, 주진우 <시사IN> 기자(왼쪽부터).

손석희 대표이사는 자신도 이제 휴대전화로 뉴스를 본다며 6초짜리 영상이 시선을 사로잡는 디지털 시대에 왜 하필 60분짜리 탐사보도가 중요한지 설명했다. 그는 “도구의 변화가 스피릿(보도 정신)의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언론의 ‘스피릿’은 ‘어젠다 키핑’이다. 6초 만에 이슈가 소비되는 상황에서 사회에 꼭 필요한 어젠다를 지켜나가려면, 60분 길이의 탐사보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손석희 대표이사가 탐사보도 어젠다를 고르는 기준은 두 가지다.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다. JTBC가 200일 동안 매일 세월호 참사 보도를 했던 것도, 3년 동안 삼성 백혈병 사건을 다룬 것도 민주주의·인본주의 가치와 맞닿아 있어서다.

크리스 영 홍콩 기자협회장 역시 탐사보도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강조했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혁명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중국 정부는 홍콩 언론사의 수석 편집장들을 본토로 불렀다. 중국 정부는 편집장들에게 좀 더 ‘큰 그림’을 볼 것을 주문하며 ‘국가 안보에 반하는 행동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암시했다.

ⓒ시사IN 이명익손석희 JTBC 대표(아래)는 사회에 필요한 어젠다를 지키려면 탐사보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79일간의 우산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중국 정부는 홍콩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홍콩의 순위는 2002년 18위에서 2012년 54위를 거쳐 2017년 73위로 떨어졌다. 중국 베이징에서 홍콩 언론사를 인수합병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적신호다. 크리스 영 회장은 홍콩 미디어가 중국 본토의 색깔로 물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홍콩 미디어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는 판단 아래 그를 비롯한 베테랑 기자들이 함께 만든 <시티즌뉴스>는 중국 정부의 압박에 맞서는 ‘미친 짓’을 해나가는 독립 언론사다. 시민의 구독료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뒤이어 연단에 선 기무라 히데아키 일본 <와세다 크로니클> 기자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을 다룬 책 <관저의 100시간> 저자다. 2015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오는 12월13일부터 같은 제목의 연극으로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된다.

기무라 기자는 자기반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그는 2016년을 기자 생활의 전환점으로 떠올렸다. 데이비드 케이 유엔 특별보고관이 일본 언론의 무너진 독립성을 지적했지만, 일본 언론인 대다수는 침묵을 지켰다. “저널리즘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사자 의식이 없었다는 뜻이죠.” 그해 직장을 나온 그는 <와세다 크로니클>을 설립했다.

독립 언론의 기자로서 첫 보도 대상은 언론사와 기업 간 유착 관계였다. 일본의 대표 통신사인 교도통신이 제약회사 돈을 받고 기사를 내보냈다는 의혹이었다. 제약회사 담당자는 교도통신 기자에게 ‘성공보수’로 150만 엔을 주었다. 기무라 기자는 교도통신 기자들이 이를 열심히 노력한 ‘취재 활동’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사회문제의 중심에 언론사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와세다 크로니클>을 언론사가 아닌 NGO로 소개한다. 기성 언론의 관성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셜록>의 비영리 탐사 언론 분투기 ‘압권’

기존 매체를 떠나 독립 언론사를 만든 사람은 또 있었다. 최근 양진호 회장 사건으로 주목받는 박상규 <셜록> 기자는 비영리 탐사 언론의 분투기를 소개했다.

10년 동안 다닌 <오마이뉴스>를 나온 박상규 기자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재심 시리즈’를 보도했다. 삼례 나라슈퍼 살인 사건에서 경찰의 조작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강인구씨와 눈을 마주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강씨가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데 또 3개월이 걸렸다. “쓰는 데 9개월이 걸리는 사건을 기다려줄 언론사가 있었을까요?”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다. 후원금이 쌓였다. ‘좋은 기사는 통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그는 <셜록>을 만들었다. 하지만 창간 9개월 뒤에 ‘쪽박을 찼다’. 스크린 화면에 깨진 바가지 사진이 띄워지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따라 웃던 박 기자는 사실 당시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강인구씨의 결혼식장 장면이었다. 삼례 나라슈퍼 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족과 턱시도를 입은 강씨, 그리고 진범임을 자백했던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다. 양진호 회장에게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와 대학교수가 용기를 내 검찰청으로 들어서는 사진을 소개하며 박 기자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고,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해가는 과정, 취재원과 오래 만나고 교감하면서 그들의 변화 모습을 직접 보는 게 탐사보도의 진짜 맛이다.”

마지막 연사인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한정된 지면을 시민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답을 탐사보도에서 찾았다. 기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를 쫓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탐사보도가 이루어진다. 지난해 <시사IN>이 연속 보도한 ‘MB 프로젝트’로 시작된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주 기자는 여전히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의혹을 추적하고 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죠.” 권력과 자본이 감추려는 이슈를 ‘선택’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중’해야 탐사보도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주진우 기자는 그 힘의 동력이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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