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 ‘불편할 준비’
  • 시사IN 편집국
  • 호수 586
  • 승인 2018.12.08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여성, 건축가입니다
데스피나 스트라티가코스 지음, 김다은 옮김, 눌와 펴냄

“남자들은 제 머리를 두드리며 ‘여자치고 잘하네’ 말하곤 했죠.”


권위 있는 건축상인 프리츠커상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에게 수여된 2004년. 수상자인 자하 하디드에 대한 기사는 남성 수상자였다면 생각도 못할 모욕적인 방식으로 쓰였다. “평생의 동반자라고는 급성 독감뿐인 독신 일벌레” “아줌마처럼 크게 웃는다” 같은 식이다. 하디드는 ‘네가 수상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같은 모욕적인 질문 앞에 서기도 했다.
건축과에 입학하는 여성 학생은 꾸준히 증가하지만 실제 활동하는 여성 건축가 수는 변함이 없고, 경력이 쌓일수록 그 숫자는 더 줄어든다. 건축가를 꿈꿨던 여성의 꿈과 야망과 업적은 다 어디로 갔을까? 책은 차별에 맞서며 자리를 지켜낸 여성 건축가의 현재를 돌아본다. 부록을 통해 한국 여성 건축가 통계를 별도로 다뤘다.



읽으면 진짜 똑똑한 선택이 보이는 만화 행동경제학
조립식 그림, 김민주 해설, 위즈덤하우스 펴냄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은, 합리적 선택을 전제로 하는 전통 경제학을 쓸모없게 만든다.”


주류 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합리적 선택을 하는 인간)’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구축된 학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과연 그런가? 현실의 인간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고에 속아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합리적인 것보다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무작정 따르는 등 비합리적 행위를 밥 먹듯이 한다. 행동경제학은 이 같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비주류이지만 허버트 사이먼, 로버트 실러 등 다수의 행동경제학 연구자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저스툰>에 연재된 조립식 작가의 웹툰 20편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의 해설을 묶어 단행본으로 펴낸 이 책은, 행동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맛보기엔 적절한 자료다.



알고리즘이 당신에게 이것을 추천합니다
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 전대호 옮김, 해나무 펴냄

“섬뜩하고 멋진 알고리즘의 시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알고리즘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인터넷 검색이나 SNS에서 해당 누리꾼의 관심을 끌 만한 자료를 선별해서 보여주는 기능,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을 불과 몇 초 만에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등은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한다.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따위의 알고리즘은 누리꾼의 검색기록과 소비 패턴을 분석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예측하고 적절한 (때로는 터무니없는) 상품을 추천해준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을 잡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어려운 개념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능력을 수학· 물리학 등에서 입증해온 저자는 직관적인 도표와 그래프, 그림을 통해서 알고리즘의 핵심 원리를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한다.



배틀그라운드: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백영경 외 지음,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후마니타스 펴냄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임신 중지를 둘러싼 논쟁은 ‘입체적’이다. 태아의 생명결정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문제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오히려 이런 이분법적 구도가 생명과 가치의 위계를 만든다. 마치 여성이 혼자 선택을 내리는 문제인 것처럼 책임을 방기한 채, 국가는 여성의 몸에 대해 ‘재생산 조절’을 시도해왔다.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이라는 예외를 만들어 여성의 몸을 ‘인구 조절을 위한 일종의 도구’로 활용했다. 통제의 핵심 도구인 형법 27장 ‘낙태의 죄’는 현재 위헌소송 중이다.
이 책은 여성학자·법률가·의료인· 인권활동가 등이 정책·보건의료· 종교·법·인권의 관점에서 ‘낙태의 죄’ 이면에 담긴 맥락을 살핀다. 낙태죄 폐지운동에 대한 이해를 넘어, ‘재생산 권리’에 대한 깊은 사유가 뒤따르는 책이다.



일본정신분석
박규태 지음, 이학사 펴냄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일본 전통사회와 현대사회 모두를 반영하는 유용한 거울이다.”


일본을 일컬어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를 나무와 숲에 빗댄다. 일본을 이해할 때 나무만, 혹은 숲만 보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나무와 숲 모두를 조망하기 위해 프랑스 철학자 라캉을 동원한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라캉 철학으로 일본 정신문화를 분석한다니, 책 표지만 보고도 질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이 책은 어느 정도 라캉 철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독해 가능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해 불가는 아니다.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신세기 에반게리온> <너의 이름은> <데스노트> <늑대 아이>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 등을 소재로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분석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일가견이 있는 이라면, 라캉 철학을 접하는 입문서가 될 수도 있다.



불편할 준비
이은의 외 지음, 시사IN북 펴냄

“의학에도 가부장성이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


‘조심하라’는 당부를 듣고 자란 장일호 <시사IN> 기자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를 탓했다. 당부는 ‘조심하지’라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숱한 언어적· 물리적 성폭력의 와중에 ‘살아남았다’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페미니즘은 그의 입과 목소리가 되어주었다. 지면의 필자를 구성할 때 평소 고려하지 않던 성별 비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시작된 ‘불편할 준비’ 연재는 그 가운데 탄생했다. 필자인 이은의 변호사,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박선민 국회의원 보좌관, 은유 작가, 오수경 자유기고가가 지난 5월 같은 이름의 강연을 열었다.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성폭력· 몸·정치·글쓰기· 대중문화를 이야기한다. 한 번으로 끝내기엔 아까운 어떤 ‘불편함’이 책으로 묶였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