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과 손잡고 할랄 음식점 열었어요
  • 제주/글·사진 박준수 (사진가)
  • 호수 586
  • 승인 2018.12.12 1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부터 제주 예멘 난민을 도와온 하민경씨가 제주도 최초로 중동·할랄 음식점을 열었다. 예멘인들은 민경씨에게 아랍어로 꽃을 의미하는 ‘와르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음식점 이름은 ‘와르다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국악을 전공한 제주도민 하민경씨(39)는 지난 6월 초 페이스북에서 수십명의 예멘인이 거리에서 노숙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국내 언론이 제주 예멘 난민을 집중 조명하기 전이다. 민경씨는 예멘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고, 전쟁을 겪고 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비가 내리던 6월 어느 쌀쌀한 밤, 노숙을 하던 예멘인 15명에게 장구와 전통무용을 연습하는 지하 작업실을 내주면서 민경씨와 예멘 난민 사이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민경씨의 작업실은 갈 곳이 없는 예멘인의 쉼터가 되었다. 누군가 일자리를 찾으러 떠나 빈자리가 생기면 그들의 친구가 찾아와 머무르는 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많은 제주도민이 민경씨와 힘을 합해 난민을 돕기 시작했다. 많게는 연습실에서 한 번에 30명이 숙식을 해결했고, 그렇게 모두 100여 명에 이르는 예멘인이 민경씨의 작업실을 거쳐갔다. 고향으로부터 8000㎞ 떨어진 타지에서 처음으로 접한 낯선 이의 환대. 예멘인들은 민경씨에게 아랍어로 꽃을 의미하는 ‘와르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박준수11월6일 제주도 제주시에 문을 연 와르다 레스토랑.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지 6개월이 지났다. 11월 중순 방문한 제주 동문시장에서는 온라인 공간을 채웠던 두려움이나 적대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막연하던 공포가 잦아들었다. 지난 6개월간 예멘 난민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없었다는 점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두 아이의 엄마인 박아름씨(30) 역시 예멘 난민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에 예멘 사람들이 제주도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세 살 된 딸이 있거든요. 예멘은 여성 인권이 취약하고 미성년자 조혼도 흔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문화랑은 안 맞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동안 예멘인들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제주에서 일어난 범죄와 예멘 난민을 연결 짓는 댓글이 많은데, 그게 꼭 사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보조 주방장으로 일하는 김재희씨(27)는 예멘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재희씨의 여성 친구들도 난민들이 성희롱이나 추행을 하고 다닐까 봐 두려워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박준수와르다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이예수씨, 예멘인 사미·아민·압둘라만 씨, 그리고 하민경씨(왼쪽부터).


한국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외지 방문객을 많이 접하고 살아온 경험 덕분일까? 제주도민들은 예멘 난민의 존재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제주도민 10여 명 대부분이 인도적 체류 허가에 대하여 중립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동문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하는 전진호씨(54)는 이렇게 말했다. “과장된 면이 있죠. 언론을 보면 무슬림 난민들이 이 나라를 접수한 것처럼 말하지만, 소수의 얘기일 뿐이죠. ‘인도적 체류 허가’는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봐요. 전쟁이 났으니 이 사람들을 돌려보낼 순 없잖아요. 하지만 500명 모두에게 난민 자격을 주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민경씨의 작업실을 거쳐간 예멘인들은 고향 음식을 그리워했다. 함께 예멘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제주도민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국악 공연을 하는 민경씨는 고심 끝에 친구 이예수씨(39)와 함께 제주도 최초의 중동·할랄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름은 ‘와르다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예멘과 말레이시아에서 주방장으로 일한 아민 씨(34)에게 요리를 맡기고, 예멘인 사미(23)·나스리(25)·압둘라만(36) 씨를 추가로 고용했다. 지인이 인테리어를 도와주고 제주에서 나오는 목재로 공간을 꾸몄다. 예멘인들도 3개월에 걸친 공사 기간에 일손을 보탰다.


ⓒ박준수주방장 아민 씨(오른쪽)가 중동식 밥 요리인 캅사를 조리하며 웨이터 압둘라만 씨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금발로 염색한 곱슬머리와 깔끔한 옷차림이 눈에 띄는 와르다 레스토랑의 웨이터 사미 씨는 고향 사나의 대학에서 컴퓨터 정보처리를 공부했다. 지난해 그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후티 반군의 지휘관이 어머니를 찾아와 위협했다고 한다. “당신에게는 아들이 둘 있으니 한 명은 우리와 함께 싸워야 한다. 사미를 보내라.” 후티 반군의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것은 곧 전쟁터 최전방으로 보내져 죽음을 맞게 된다는 뜻이다. 아들의 운명을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를 외국에 보내기로 했다. 사미는 48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오만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이후 말레이시아 체류 비자가 만료될 무렵 제주도에 왔다. “먼 나라인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상상하긴 힘들 겁니다. 예멘은 완전한 혼란 속에 갇혀 있어요. 학교와 도로는 파괴되었고, 사나의 우리 동네에도 폭탄이 주기적으로 떨어집니다. 정상화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죠. 항상 가족이 걱정돼요. 어머니와 매일 인터넷을 통해 연락합니다. 한동안은 제주에 머물 생각이에요. 어디에 있든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박준수예멘인 손님이 와르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와르다 레스토랑은 예멘인의 희망”


10월 중순, 한국 정부는 예멘인 339명에게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고, 11월14일 현재 174명이 제주도를 떠났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3시, 문 연 지 겨우 일주일 된 와르다 레스토랑의 2평 남짓한 주방은 분주했다. 민경씨에게 감사와 석별의 인사를 전하러 온 예멘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누구는 서울로, 누구는 부산으로 간다고 했다. 대부분 언어 문제 때문에 단순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사미는 와르다 레스토랑을 “예멘인의 희망”이라고 표현했다. 예멘인들은 난민을 향한 한국 사회의 반감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자신을 받아준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전쟁의 공포와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에 머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 기간은 1년. 이미 많은 예멘인이 제주도를 떠났고, 1년 후 체류 허가가 갱신되지 않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경제적 위험을 무릅쓰고 할랄 레스토랑을 연 민경씨는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이 두렵지 않을까? “건강 문제로 공연을 포기하려던 무렵, 예멘 친구들을 만나고 레스토랑까지 열게 되었어요. 예술활동만 했지 사업체를 운영해본 경험은 없다 보니, 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와요. 하지만 또 다른 기회가 운명적으로 찾아온 것 같아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