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10월에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위원장 심상정)가 본격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슈가 커졌다. 2020년 4월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큰 폭으로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국회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선거제도를 바꾸려는 정당들과 시민사회는 이 시기에 온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 총선은 1인2표제다. 지역구에서 후보에게 한 표를 찍고, 비례 투표에서 정당에 한 표를 찍는다. 연동형 비례제란, 정당이 얻은 비례 득표에 전체 의석수를 연동하는 제도다. 여러 변형이 있지만 기본 원리는 이렇다. A당이 비례 투표에서 10%를 얻었다. 그렇다면 A당은 전체 의석수 300석 중 10%인 30석을 가져가야 한다. A당이 지역구에서 25석을 얻었다면, 비례에서 5석을 배분하여 30석을 맞춰준다. 만약 지역구에서 10석만 얻었다면 비례에서 20석을 배분하여 30석을 맞춘다. 지역구 결과가 어찌 나오든 정당 득표율에 총 의석을 맞춰주는 제도다.

ⓒ연합뉴스10월24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위원장 (왼쪽)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내년 초까지는 선거제도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선거제도는 연동형이 아니다. 비례 투표 결과는 비례에 배당된 의석(20대 국회의 경우 47석)의 배분비율만 결정한다. 비례 투표에서 10%를 얻은 A당은 현행 선거제도에선 비례로 4~5석을 받는다. 지역구와 비례 결과를 별개로 취급한다. 보통 ‘병립형’이라고 부른다.

연동형 비례제는 민심의 분포대로 의석수가 배분된다는 장점이 있다. 1위 후보를 찍지 않으면 사표(死票)가 되는 소선거구제의 단점과 대조된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부산광역시 의회는 지역구가 42곳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 42명은 평균 51.5%를 득표했다. 그 결과 42곳 중 38곳을 이겼다. 지역구 의석점유율은 90.5%다. 다른 후보를 찍은 유권자 48.5%의 의사는 사실상 허공으로 사라졌다. 연동형 비례제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때문에 유력한 정치 개혁 방안으로 거론되어왔다.

연동형 비례제가 진정한 개혁이고, 소선거구제는 거대 정당들의 기득권에 불과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선거구제는 유권자가 후보를 직접 뽑기 때문에 둘 사이에 책임성의 고리가 더 강하게 걸린다. 안정된 다수당이 출현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시대의 다수 민의를 더 강력하게 집행할 수 있다. 이것은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에 부합한다. 반면 연동형 비례제는 소수 의견이 의회에서 더 잘 보호된다. 다당제가 출현하는 경향이 있어서 통치를 하려면 합의가 강제된다. 이것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또 다른 민주주의 대원칙에 부합한다. 두 제도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장단점이 상충하면서 민주주의 원칙을 구현해낸다. 둘 사이의 선택은 그 사회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의 문제다. 다만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다수제 원칙으로 작동해온 터라 비례성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왔고, 그를 기준점 삼아 논의가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선거제도를 비례적으로 바꾸는 것은 일종의 삼차방정식이다. 핵심 변수 셋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첫째,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을 정해야 한다. 병립형이냐 연동형이냐의 문제가 축이고, 그 사이에 수많은 변형과 절충안이 검토되고 있다. 둘째, 지역구 의원과 비례 의원의 구성 비율을 손봐야 한다. 20대 국회는 지역구 253석 비례 47석이다. 47석으로는 정당 지지율에 맞는 의석 보정이 불가능하다. 비례 의석 비율을 늘리려면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하는데, 해당되는 의원들이 결사 항전할 것이므로 간단치 않다. 그래서 세 번째 변수, 국회의원 정원 문제가 등장한다. 정원을 늘릴 수 있다면 지역구를 줄이지 않고도 비례 의석을 늘릴 수 있다.

연동형 비례제는 진보 정당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정의당이 주장하는 안은 연동형, 지역구 대 비례 비율 2대 1, 의원 정수 확대를 포함하는 패키지다. 360석으로 정원을 늘리고, 의석을 지역구 240석, 비례 120석으로 배분한다. 비례 120석이면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 한 연동형을 구현할 수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힘을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10월1일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과 여야 당 대표들이 정례 모임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가장 속내가 복잡한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원내 1당이자 여당이자 지지율 선두 정당이다. 현 제도에서 연동형 비례제로 바뀔 경우 손해가 클 정당이기도 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1월16일 국회의장·5당 대표 만찬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발언해 공약 후퇴 논란을 일으켰다. 파장이 커지자 민주당은 “우리 공약은 권역별(권역 단위로 비례 의석을 배분하는 안)이었지 연동형은 아니었다”라는 메시지로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역풍만 맞았다. 민주당이 내놓은 권역별 비례제 공약은 연동형적 요소를 사실상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이상 수세에 몰린 끝에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11월28일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구제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대통령도 계속 강조하고 있는 우리 당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비례성 강화’와 ‘연동형 비례제 도입’은 같은 말이 아니다. 비례성 강화가 상위 범주이고, 연동형은 더 구체적인 하위 범주다. 현행 병립형 제도를 그대로 둔 채로 지역구·비례 비율을 200석 대 100석으로 조정해도 비례성은 강화된다. 의원 총정원을 늘리고, 늘어난 의석을 비례로 돌리는 방식으로도 비례성은 강화된다. 세 핵심 변수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연동형 없는 비례성 강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 야 3당은 민주당에 “연동형 공약을 지키라”는 공세를 연일 펼쳤다. 정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11월29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약) 친자 확인을 해주시면 정개특위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정원 확대 카드, 제1야당에게 명분?

정개특위 위원 18명 중에 민주당 소속은 8명이다. 면면을 보면 비례성 강화 방향에는 거의 다 동의하고, 몇몇은 분명하게 연동형을 선호한다. 적어도 ‘연동형은 불리하니 아예 판을 깨자고 짠 라인업’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민주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걱정은 세 핵심 변수 중 의원 총정원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민주당 내 선거제도 관련 핵심 인사들은, 민주당이 의원 총정원 확대를 꺼내드는 순간 자유한국당이 기꺼이 판을 깰 것이라고 예측한다. ‘비례성 강화 반대’는 내걸기 어색하다. 하지만 ‘총정원 확대 반대’는 내걸기 좋은 명분이다. 국회를 싫어하는 여론에 호소력이 크다. 선거제도는 권력 생성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거의 헌법에 준하는 무게를 인정받는다. 제1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표결 처리하는 옵션은 사실상 없다. 그러므로 자유한국당이 판을 깰 명분을 주는 순간, 선거제도 개혁은 물 건너간다. 민주당 핵심 인사들이 대체로 이런 상황 인식을 공유한다.

이에 따라 총정원 확대라는 옵션이 실질적으로 봉쇄된다. 이러면 더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 지역구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른바 ‘200대 100’ 안이다. 한 석을 없애기도 어려운 지역구를 53석 없애야 한다. 여론의 반발은 이쪽이 덜하겠으나, 국회 내에서의 반발은 훨씬 심하다. 정치 경력이 긴 원로급 의원 중에서는 이쪽이 의원 총정원 확대보다 더 어려운 길이라고 보기도 한다.

결국 민주당 내의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갈래다. 한 축에서는 ‘되는 길’을 고민하는 모색이 있다. 의원 총정원 확대는 여론에 막히고, 지역구·비례 비율 조정은 국회 내의 결사 항전에 막히는 상황에서, 둘 중 하나나 둘 다가 필요한 ‘연동형’부터 선언하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비례성 강화’라는 대원칙을 합의한 후에, 정개특위 논의 과정에서 세 핵심 변수를 모두 테이블에 놓고 조율해 나가자는 그림이다. 이 편이 그나마 자유한국당을 논의에 묶어둘 길이라고 본다. 민주당의 제도개혁론은 ‘200대 100’을 기준(의원 정수는 유지, 지역구·비례 비율은 2대 1)으로, 연동형과 병립형 혹은 그 사이의 여러 가능한 변형들을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쪽으로 수렴되고 있다.

또 한 축에는 더 솔직한 의견도 들을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안 될 가능성’이 ‘될 가능성’보다 훨씬 높은 게임이다. 어차피 판은 자유한국당이 깨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안 되는 방향’으로 먼저 이끌 이유가 없다. 이해찬 대표가 “연동형 비례제 어렵다”라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그래서 실책이다. 잘못된 방향이어서가 아니라, 굳이 먼저 나서서 책임론에 휩싸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엉뚱하게 쳐진 정개특위 전선

국회 물밑 논의에서는 여러 대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된다. ‘200대 100’ 모델을 검토하는 사람들은, 21대 총선 1회에 한해 지역구가 사라지는 의원들을 비례 후보로 공천하자는 구상을 만지작거린다. 이를 통해 현역 의원들의 저항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이는 입법 사안이 아니라 각 정당의 정치적 결단과 합의 문제여서 상대적으로 수월할 순 있다. 지역구 경력이 긴 중진 의원들의 경우 이를 고리로 타협이 가능하다는 기대도 있다.

총정원 확대의 경우 총예산을 300인 기준으로 동결시켜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자는 제안이 나온 바 있다. 의원은 늘리되 비용은 그대로 묶겠다는 취지다. 정의당은 선명하게 360석 증원론을 내세운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의원 정수 확대는 불가피하다”라고 11월29일 기자회견에서 다시 못 박았다. 민주당은 이 전선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정의당은 내달려도 된다. 자유한국당이 정의당을 핑계로 판을 깰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다르다. 그러니 정의당이 의원 총정원 확대 여론을 다수 의견으로 만들어온다면 모를까, 지금 여론 지형에서 우리가 총정원 확대를 말하는 건 자살행위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정개특위 최초의 전선은 다소 엉뚱하게 쳐졌다. 가장 큰 고비인 자유한국당을 일단 제쳐놓은 가운데, 민주당의 ‘비례성 강화 합의’ 구상과 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 야 3당의 ‘연동형 연대’ 구상이 첫 파열음을 냈다. 둘은 결정적으로 삼차방정식을 푸는 순서가 다르다. 민주당은 세 변수를 모두 열어놓아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유한국당을 테이블에 묶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야 3당은 ‘연동형’을 우선 고정하고 변수를 둘로 줄여야 문제가 풀린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을 먼저 묶어둬야 하기 때문이다.

정개특위 활동 시한은 연말까지지만, 참여자들 대부분은 기한 연장을 사실상 상수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지금은 샅바 싸움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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