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사IN〉이 제578호 커버스토리로 다룬 라오스 댐 붕괴에 대한 탐사보도 ‘마을이 있던 자리’를 꼼꼼히 읽어봤다. 댐이 건설됐는지조차 모르다가 갑자기 덮쳐온 수마에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현지 주민들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너무나 참담했다.

댐 붕괴의 원인이 폭우 때문인지, 공사 과정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다고 한다. “조사 결과의 진위 여부는 알기 어렵지만, 건설사와 라오스 정부에게는 행복한 결론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은 이 참담한 비극이 내포한 좀 더 근원적이고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동남아 6개국 주민 6500만명의 젖줄 구실을 해온 메콩 강에는 100개가 훨씬 넘는 댐이 있다. 1960년대부터 중국이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기 시작한 뒤 라오스, 베트남 등이 가세했다. 라오스는 앞으로도 80개 이상의 댐을 더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명분은 경제성장과 소득 증대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수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인접국에 팔아 국민들을 잘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댐이 건설되면서 강 주변 마을은 사라졌다. 물고기를 잡고 먹을거리를 채집하던 주민들은 정다운 고향에서 쫓겨나 막막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댐 건설 이후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가뭄과 홍수가 잦고 강 수위는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한다. 수질 악화와 생물다양성 파괴, 어획량 감소 등은 댐 건설 주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개발의 폐해다.

이런 사회적 재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행된 개발이익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라오스 댐은 한국의 수출입은행이 10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대출하고, SK건설이 시공한 뒤 또 다른 한국 기업이 운영을 맡는다. 이른바 정부개발원조,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이라고 불리는 개발도상국의 대규모 ‘개발’ 사업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투자 방식이다. 개발 지역 국가의 자본이 일부 결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익이 어디로 돌아갈지는 뻔하다.

비슷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타이(태국) 정부는 녹화와 산림 보호를 한다며 일본의 원조를 받아 동북부 일대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유칼립투스를 끝도 없이 심었다. 유칼립투스는 급속히 잘 자라는 나무다. 그러나 땅의 수분과 양분을 모두 빨아들이는 바람에 주변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식물 생태계의 깡패 같은 나무(gang tree)다. 타이 정부는 일본 등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에 유칼립투스를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였지만, 농민들은 과일이나 버섯 등을 수확할 수 없게 됐다. 개발이익의 수혜자는 타이 정부와 일본 기업, 일본 소비자인 것이다.

필리핀은 일본의 원조를 받아 바탕가스 항구를 건설했다. 그 개발 과정을 추적한 일본 기자의 글을 10여 년 전 읽었는데, 일부 내용을 잊을 수 없다. 항구를 짓느라 고향에서 쫓겨난 한 여성은 “개발이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와 식량을 빼앗고 주민의 삶을 파괴했다. 한마디로 ‘개발 침략’이다”라고 단언했다.

 

 

ⓒ시사IN 이명익댐 사고의 최대 피해 지역인 타생짠 마을.100여 가구가 살았던 마을은 완전히 사라졌다.

 


‘개발의 역설’을 곱씹어봐야 할 또 하나의 대상

왜 개발할수록 지역 주민은 더 가난해지는가? 발전은 경제성장을 의미하는가? 생태계가 파괴되고 불평등이 심화된다면 그것이 과연 개발인가?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 필립 맥마이클 교수(코넬 대학)가 전 지구적 개발 과정을 추적·분석하면서 던진 질문들이다. 그는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 현상을 ‘개발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라오스 댐 붕괴와 개발의 역설이 제기하는 근원적 질문은 비단 개발도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압축적 경제성장에 던지는 도전장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숙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최근 들어 개발의 역설을 곱씹어봐야 할 대상이 하나 더 생겨났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향후 전개될 남북한 경제협력과 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개발의 본질은 공존과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이다. 이 같은 원칙이 남북경협 과정에서 제발 제대로 작동되길 기원한다.

 

 

기자명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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