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영국에서는 한 장의 사진이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5월 가자 지구에서 찍힌 사진이다. 한 청년이 윗옷을 벗은 채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돌팔매를 든 사진인데, 런던의 중동정치 교수가 이를 트윗에 올렸다가 리트윗 3만 개에 ‘좋아요’ 8만 개를 받으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터키 사진기자 무스타파 하수나가 찍은 이 사진은 대중에게 두 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을 연상시킨 것이다. 포토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흔히 명화에 나오는 장면들과 유사해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이는 순간 포착 등 얻어 걸린 특종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혹시 이렇게 탐미적이며 스펙터클한 사진을 의도적으로 찍는 건 아닐까? 자신이 응원하는 피사체를 응원하기 위해? 또는 그렇게 찍어야 잘 팔리니까? 그래서 무스타파의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그는 분명히 의도적으로 그렇게 찍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영국 언론은 때아닌 회화적 사진과 그 현장의 진실을 두고 논쟁 중이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이 불러온 논쟁

ⓒ유진 스미스1972년 미국 사진가 유진 스미스가 찍은 우에무라 도모코 모녀의 사진.

여기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어둡고 좁은 욕조에 사지를 뒤틀고 있는 비쩍 마른 여인과 그녀를 안은 어머니. 우리는 이 비극적인 장면에서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을 재현한 피에타를 떠올릴 것이다. 미국 사진가 유진 스미스가 1972년 일본 미나마타에서 찍은 우에무라 도모코 모녀의 사진이다. 도모코는 미나마타병 환자였다. 사실 이 사진은 우연히 찍은 것이 아니다. 모녀의 동의하에 완전히 연출됐다. 물론 스미스는 피에타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사진은 내내 이러한 연출이 옳은 것이냐 하는 논쟁에 시달렸다. 공해병의 위험보다는 그 성스러운 죽음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쟁은 1990년대에도 재현된다. 세계적인 사진가라 불리는 세바스티앙 살가두는 1985년 에티오피아를 휩쓴 가뭄과 기아를 다룬 프로젝트 〈사헬의 기근〉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아사 직전의 사람들을 명화의 한 장면처럼 스펙터클하게 묘사한 것이다. 살가두는 이런 묘사에 대해 관람자들이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런 사진적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 ‘볼만한 스펙터클’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여문주, 〈보도사진의 예술화〉).”

이 때문에 내전과 난민을 어떻게 촬영하고 내보일까 번번이 다른 목소리를 낸 것이 질 페레스다. 그는 보스니아와 르완다를 여행하면서 감정적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그의 사진을 바꾸어놓았다. 페레스는 증거를 수집하는 법정 사진가처럼 작업했다. 즉 전통 포토저널리스트와는 다른 전략을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작업은 사실에 좀 더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좋은 사진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난 더 이상 ‘좋은 사진’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난 역사를 위한 증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도록….”

내 생각에 다큐멘터리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진은 건조할수록 좋다. 한 방에 감동받는 스펙터클보다 더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할 테니 말이다.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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