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돌 제작·시사IN 양한모
2009년 여름. ‘소원을 말해봐’의 비트가 멈추면 티파니는 홀로 일어나 한가득 웃어 보이며 “DJ, put it back on”을 외쳤다. 소녀시대 멤버 중에서도 마스코트 같아 보였다. 그는 귀여운 아이돌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은 그에게 애교나 눈웃음을 연방 주문했다. 미국 출신인 그의 조금 어눌한 한국어 실력이 귀엽다고들 했다(요즘 분위기로는 큰일 날 소리다). 간혹 덤벙대기도 하면서, 어쩐지 우수가 엿보이는 눈으로 활짝 웃어 보이곤 했다. 그래서인지 ‘보호해주고 싶은 아이돌’의 이미지도 있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그런 그가 소속사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름은 ‘티파니 영(Tiffany Young)’이 되었다. 미국 베벌리힐스에 본부를 둔 패러다임 탤런트 에이전시와 계약했다. 음원 사이트에는 그의 신곡들이 ‘외국 음원’으로 등재됐다. 그는 작사·작곡에도 참여하면서 작품 전체의 방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케이팝보다는 영미권의 솔로 가수들이 주도권을 키워가는 방식이다.

케이팝 아이돌 출신이라 더 대비돼 보이는 걸까. 그의 걸음걸음에서는 유난히 ‘집주인’ 같은 분위기가 엿보인다. 작곡가나 안무 팀과의 관계를 아낌없이 언급하고 가사에서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안무를 따라 하는 팬들의 영상을 올려주거나, 최근작 ‘Teach You’에서는 집들이를 하듯 소녀시대 멤버들을 뮤직비디오에 초청했다.

새롭게 꾸린 자신의 둥지에서 티파니 영은 확고하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자신이 욕망과 육체의 주인이라는 선언이나, 연인에 대한 과감한 비난도 보인다. 팝 시장에서야 드물지 않지만, 케이팝의 의뭉스러움에 비하면 해방감을 느낄 정도다. 적당한 ‘수위’를 찾아 실험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소녀시대 티파니’는 ‘티파니 영’으로 확실하게 날개를 뻗는다. 그는 여전히 화사하고 사랑스럽지만, 한때 사람들이 착각한 것처럼 순진무구해서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소녀시대의 조금은 깍쟁이 같던 느낌도, 실은 상당 부분 티파니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나. 티파니 영의 웃는 얼굴은 활달함에 가깝다. 자신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위해 사람들을 규합하고, 그 집단을 주인으로서 통제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그런 얼굴이다.

미국 시장이 케이팝을 선택한 데에는 아시아인의 약진이라는 최근의 사회 문화적 흐름이 관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다음’은 아시아인 여성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도 많다. 케이팝을 출발점 삼아 팝으로 기울고 있는 티파니 영을 주목한 이유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보여주는 새로운 미소가 꽤 좋은 꿈을 꾸게 한다. 케이팝에서 성장해 마침내 자기 자신을 찾아낸 사람의 시원함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