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도 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세계경제는 위기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불평등과 자산 버블을 배경으로, 규제완화가 부추긴 금융시장의 폭주로 인한 것이었다. 위기 직후 정부와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와 재정 투입으로 급한 불을 끄고 체제의 붕괴를 면했다. 또한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조명받았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얼마나 변했고 위기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나. 선진국만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민간 부문의 부채비율은 낮아졌지만 정부 부문의 그것이 크게 높아져 경제 전체의 부채비율은 GDP의 약 380%로 위기 전후 별다른 변화가 없다. 많은 이들은 정부 부채의 급증을 우려하지만,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오히려 금융 부문의 부채비율이 2009년 GDP의 약 130%에서 2018년 현재 110%로 약간 줄어들었을 뿐이고, 이들에 대한 규제도 크게 강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계속 높아져온 불평등은 위기 이후 경제회복과 함께 다시금 높아졌다. 미국에서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약 20%에서 위기 직후 하락했다가 2016년은 위기 이전보다 조금 높아졌고, 하위 50%의 비중은 약 14%에서 13%로 더 낮아졌다. 위기와 반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에 맞서는 경제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었다.

한편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명백히 드러난 불평등 심화는 자유민주주의의 약화를 낳았다. 소외된 저학력 백인 노동자층의 엘리트 정치에 대한 반발이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극우 포퓰리즘 현상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금기가 그랬듯이 민주정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절히 규제할 때 체제의 안정과 높은 성장이 가능하지만, 이제는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경제학자와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도 위기를 일으킨 자유시장과 불황을 심화시킨 긴축의 문제를 인식하고 확장적 재정정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긴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위기가 이후 경제사상을 완전히 변화시킨 데 비해 지금 커다란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마틴 울프 칼럼니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의 사고가 지배적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이는 역시 기득권 권력이 사상과 정책의 근본 전환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옛것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것이 오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오랜 위기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미국 시골을 여행하고 자신이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었다는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이야기처럼 엘리트들의 반성도 나타나고 있다. 중하위층 노동자들의 현실을 모르고 그들을 정치에서 소외시켜 포퓰리즘을 가져온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 내부에서도 급진적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들의 반성이 새로운 변화로 이어질지,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을 넘어 좌파 정치가 성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연합뉴스10월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촛불로 대표되는 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두었고, 새 정부도 불평등을 개선하고 총수요를 진작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던가. 불평등과 긴축이 경제에 나쁘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사실상의 긴축재정을 시행했고, 논란 속에서 원래의 지향은 동력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돈과 힘을 가진 기득권의 강고함은 서구보다 한국에서 더 강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 멈춰서는 안 된다. 역사와 세계를 돌아보는 넓은 시각과 긴 호흡이 한국인에게 필요하다.

 

 

기자명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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