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유치원 그 배후에는
  • 황도윤 (자유기고가)
  • 호수 582
  • 승인 2018.11.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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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정감사 최대 현안은 단연코 ‘유치원 비리’였다. 맘카페마다 유치원 비리에 분노하면서도, 당장 이러다 재학 중인 유치원이 폐업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가득하다. 국가의 제한적인 지원은 엄마들에게 ‘내가 정보가 부족해서’ 또는 ‘운이 따르지 않아서’ 우리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주지 못했다는 열패감을 안긴다. 이제 엄마들에게 남은 선택은 기둥뿌리를 뽑아 비싼 유치원에 보내거나, 돈은 적게 받지만 열의와 선의를 가진 좋은 교사들을 만나는 가능성을 기대해보거나 둘 중 하나다.

전직 대통령을 둘이나 감옥에 보냈지만 비리 유치원 적폐 척결은 어쩌면 그보다도 어려운 과제 같다. 적폐 집단을 청산하면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다. 아이들에 대한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산업 자체가 성실한 참여자만으론 유지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 산업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운영만으로도 사업에 나설 만한 수익성이 있어야 하며, 산업 질서를 해치는 사업자들이 적절하게 퇴출되어야 한다. 아동교육처럼 공공성이 있는 분야에서는 적절한 규정을 만들고, 이를 준수한 자에게 안정적인 보상을 줘서 수익성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력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유치원 비리 사태는 원장 개인의 부도덕함 차원을 넘어, 돌봄 노동의 양과 질을 관리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행정과 정치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사태다.

ⓒ정켈 그림

비리 유치원 배후는 돌봄 노동을 헐값으로 때우려는 우리 사회다. 누군가를 돌보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일은 가족 내에서 여성에게 맡겨져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왔다. 돌봄 노동은 사회화·시장화되는 과정에서도 역시 여성의 일, 여성적인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며 헐한 대우를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정부와 시장은 아이 돌보미, 어린이집, 유치원,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보조 등 돌봄 서비스의 양을 점차 늘려 부족하나마 그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적은 예산으로 양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낮은 진입 장벽과 저임금을 유지하는 정책을 사용해왔다. 

공공서비스의 양과 질에는 많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돌봄 서비스에 대해 우리 사회는 제대로 합의를 이룬 적이 없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돌봄 노동은 얼마인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한가, 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성실하게 자기 임무를 다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얼마의 돈을 쓸 것인가 하는 등의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여성들이 당연히 해온 일이어서 헐값을 주고도 시킬 수 있는 일로 여겨지는 돌봄 노동이, 실은 사회적으로 큰 값을 치러야 마땅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이 부담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분담할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돌봄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점차 커지는데…

일생에서 어떤 시기는 반드시 누군가의 돌봄을 받게 된다. 사회적으로도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늘 존재한다. 좋은 돌봄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평등하게 전인적 돌봄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장애인·환자·노인들도 고립된 환경에서 연명만 하는 삶을 넘어, 사회적 주체로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 공공에서 좋은 돌봄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지금과는 아예 다른 수준의 사회적 자원이 필요하다. 어머니만큼의 돈만 받고, 어머니만큼의 헌신적인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사업가와 노동자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성 신화조차 이상화된 것이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비싼 값을 인정하고, 이를 부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 비리 유치원을 척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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