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8년에 찍힌 것으로 알려진 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 발명가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가 찍은 ‘탕플 대로’라는 사진이다. 다게르는 원래 화가이자 사업가로 ‘디오라마’라는 시각적 구경거리의 발명자이기도 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이미지 사업가다. 다게르는 1839년 8월19일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사진의 공식 발명자로 인정을 받았다. 다게르가 발명한 다게레오 타입 카메라로 찍은 이 사진은 1970년대에 원본은 훼손되었다고 하는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인류 최초의 사진이다. 물론 이전에도 니엡스를 비롯한 많은 사진 발명가들이 사진 찍힌 이미지를 만들었지만 선명도와 노출 시간, 안정성 등에서 탕플 대로와 비교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사진의 발명이 아니라, 사진의 기묘한 성질에 관해서다. 언뜻 탕플 대로라는 사진은 모든 것이 놀랍도록 선명해 보인다.
잘 들여다보면 상점들의 간판에 쓰인 글씨까지 읽힐 정도이다. 하지만 동시에 움직이는 피사체가 거의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사람이라고 해봐야 구두를 닦고 있는 신사뿐이다. 노출 시간이 30분을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당대의 환락가로 알려진 탕플 대로 마차들과 움직이는 사람들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마치 선명함과 움직임 사이의 필연적인 대립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의 특성을 날카롭게 짚어낸 절묘한 표현이다.
요즘도 몇몇 작가는 거리에서 여러 시간 동안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 움직이는 것은 흐릿하게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는 것들은 선명해지는 기이한 분위기를 낳는다.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 혹은 사진의 기원과 성격이 원래 그런 거라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흐릿한 것과 선명한 것의 뒤섞임 또는 조합과 고통스러움. 물론 오늘날의 사진은 이때 사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선명하고 빠르게 찍히며, 교환되고 소비된다. 사진은 순간을 확실하게 기록하는 객관적인 어떤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믿는다. 아무리 빠른 셔터 스피드와 감광력을 갖춘 카메라라 해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즉 사진은 사물을 찍는 게 아니라 빛을 찍는 것이다. 흐릿함과 선명함 사이에 있는 일종의 광학적 효과가 그 특성이다. 이는 기술적 문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찍지 않으면 이제 다게레오 타입의 흐릿함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의미와 해석은 여전히 안갯속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명료하고 투명해진 것도 아니다. 기술적인 명료함은 얻었지만 의미와 해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예를 들면 먼 우주의 별 사진이나 안드로메다 성운 사진은 어떤가. 수없이 많은 사진을 겹치고 분석, 결합해서 명료하고 선명한 사진이 만들어진다. 흐릿함을 걸러내 완성된 이런 사진들은 사실일까, 조작일까. 아직도 모든 사진은 단순하게 그냥 찍히는 것이 아니라 흐릿함과 선명함 속에서 고통스럽게 구축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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