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낸 지 한참 뒤에야 전화가 왔다. “형님, 박상규입니다.” 얼굴만큼이나 말도 ‘조폭’스러웠다. 통화 전 그와 딱 한 번 만난 적 있다. 그런데도 박 기자는 “형님”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썼다. 진실탐사 그룹 〈셜록〉 박상규 기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두 음계 높은 ‘시’ 톤이었다. “아휴, 방송사도 찾아가고 시민단체도 갔는데 같이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 했죠.” 자랑할 자격, 충분하다. 〈셜록〉과 〈뉴스타파〉가 공동 취재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행과 엽기 행각 보도의 파장이 크다.
배가 아파 한마디 던졌다. “박 기자, 〈시사IN〉과 공동 취재하지.” “형님! 제보자들이 방송사를 원해서요.” ‘능구렁이 박상규’의 밝은 목소리에 내가 다 기분이좋았다. 지난 9월 그와 홍어를 앞에 두고 막걸리잔을 부딪쳤다. 그때 박 기자는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오마이뉴스〉 기자를 그만두고 만든 〈셜록〉은 냉혹한 현실 앞에 주저앉을 뻔했다. 후원금이 계획대로 모이지 않아 접을 뻔한 적이 있다고 했다. 9월에야 겨우 문 닫을 위기를 벗어날 만큼 후원 회원들이 모였다고. “힘내”라며 술잔을 부딪쳤지만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2017년 5월10일 그날 이후 〈시사IN〉도 구독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은 조금씩 따뜻해졌지만 〈시사IN〉에는 그때부터 찬바람이 불었다. 지금도 거세다. 〈시사IN〉이 사라져도 될 만큼 세상은 나아졌을까? 정권‘만’ 바뀌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양진호들’이 아직 많다. 그를 비호한 검찰과 법원 등 법조 권력의 개혁도 더디다.

〈시사IN〉은 이번 호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한 권력 청와대를 들여다 보았다. 검찰이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하며 압수한 이명박 청와대 문건 400여 건을 입수했다. A4 용지로 2500장 분량이다. 최고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민주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생생하게 담았다.
문제는 다시 저널리즘이다. 진짜 뉴스가 민주주의를 살린다. 진짜 뉴스는 독자가 만든다. 진짜 뉴스는 사회가 만든다. ‘탐사보도와 아시아 민주주의’ 취재에 나선 〈시사IN〉 기자들의 결론이다. 지난해에 이어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SJC 2018)를 연다. 박상규 기자도 연사로 나선다. ‘MB 프로젝트’를 보도한 주진우 기자를 비롯해 〈관저의 100시간〉을 쓴 기무라 히데아키 일본 〈와세다 크로니클〉 대표, 크리스 영 홍콩기자협회장 등이 연사로 나선다. 매년 〈시사IN〉이 실시하는 신뢰도 조사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신뢰받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손석희 JTBC 사장이 기조 발제를 한다. 12월4일 민주주의와 언론을 고민하는 독자들과 함께 저널리즘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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