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덕후’ 실리콘밸리로 향하다
  • 전혜원 기자
  • 호수 581
  • 승인 2018.11.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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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미술을 하고 싶었다. 먹고살 길이 안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디자인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정답’이 정해진 입시 디자인은 재미가 없었다.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생각했다. ‘이걸 하면 10년 뒤에도 행복할까?’ 아닐 것 같았다. 미술학원을 그만뒀다. 다른 진로를 생각해본 적 없었던 그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이 역시 재미가 없었다.

상병 시절이던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군대 동기가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식당에서 사과를 훔쳐왔다. 함께 제사를 지내고 스티브 잡스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태용씨(28·가운데)가 ‘스타트업 덕후’가 된 순간이다. 그가 보기에 스타트업은 “남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다. 스타트업이 하고 싶어서 창업을 세 번 했다. 갈증이 여전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어떻게 계속 새로운 걸 내놓는지 궁금했다. 지난해 7~9월 42일간 픽사 촬영감독, 우버 엔지니어 등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 40여 명을 만났고, 그중 16명의 인터뷰 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시리즈 <리얼밸리(Real Valley)> 시즌 1은 누적 조회 수 400만을 넘어섰다.

ⓒ시사IN 조남진

김씨는 지난 8월부터 <리얼밸리> 시즌 2를 페이스북 페이지 태용(facebook.com/tyzapzi) 등에 연재한다. 이번에는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시애틀, 포틀랜드, 로스앤젤레스도 다녀왔다. 두 달 동안 25명을 인터뷰했다. “시즌 1에서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시즌 2에서는 그들이 일하는 ‘생태계’를 들여다봤다. 주식 보상 제도나 조직 문화, 교육 등 실리콘밸리를 가능하게 했던 요소를 보여주려 한다.” 이를테면 에어비앤비 엔지니어가 ‘역할 조직(디자이너·엔지니어 등 실제로 역할을 맡은 사람이 결정권을 갖는 조직)’과 ‘위계 조직(서열이 제일 높은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조직)’의 차이를 설명하는 식이다. 인터뷰와 촬영, 편집을 혼자 하는 대신 팀을 꾸린 것도 시즌 1과 달라진 점이다. 영상 촬영을 정윤혜씨(24·맨 왼쪽), 편집을 지효민씨(24·맨 오른쪽)가 맡았다. 김씨 팀은 국내 스타트업 창업자 인터뷰, 오프라인 행사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영상 전문가로 명호씨(37·서 있는 이)도 합류했다.

김씨는 자신과 자신의 팀이 “정보 격차를 줄이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모든 정보는 인터넷에 있지만, 그런 정보나 기회를 이야기하는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 않으면 구글 같은 회사에 가고 싶어도 감히 갈 생각을 못한다. 청년들이 대기업 입사나 공무원을 준비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길밖에 안 보여줬고, 다른 길로 가서 성공하거나 행복하게 사는 레퍼런스(참고 대상)가 안 보여서 주저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고, 이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 참고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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