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아서 애슈킨 전 미국 벨 연구소 연구원과 제라르 무루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 명예교수,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 대학 교수가 선정됐다. 무루 교수와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동일 연구에 대한 공동 수상자로, 수십 펨토초(fs, 1fs는 1000조 분의 1초) 이하의 짧은 순간에 높은 에너지를 내는 ‘고에너지 극초단파 레이저 펄스’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둘은 사제지간으로 상금의 절반을 반반씩 나눠 갖는다.
수상자가 발표되던 10월2일, 나는 각각의 인물을 위키피디아로 검색해봤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의 다른 노벨상 수상자처럼 아서 애슈킨과 제라르 무루는 기본 정보부터 인생사, 연구 업적 등이 골고루 긴 페이지로 이어졌지만 도나 스트리클런드는 짧은 한 토막의 정보가 다였다(발표 약 한 달 뒤인 지금은 위키피디아에 정보가 많이 채워졌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스트리클런드 교수의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쉰아홉 나이에 여전히 워털루 대학 물리천문학과 부교수 신분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보도된 노벨상 기사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55년 만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 외에 스트리클런드의 업적에 대한 소개는 드물었고, 아서 애슈킨과 제라르 무루 소개 뒤에 부록처럼 몇 줄 얹히는 게 고작이었다.
얼마 전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성과와 의미에 대해 국내 전문가에게 묻는 자리에 갔는데, 그곳에서 한 물리학자는 이번 연구에서 제라르 무루와 도나 스트리클런드가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스트리클런드 교수요? 지도교수가 시키는 대로 했겠죠, 하하하.”
도나 스트리클런드와 제라르 무루의 ‘고에너지 극초단파 레이저 펄스’ 개발은 1985년 광학 분야 저널 〈옵틱스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스트리클런드 교수가 박사과정 학생이던 시절 처음 쓴 논문으로 1저자가 스트리클런드 교수, 2저자가 당시 지도교수인 무루 교수로 돼 있다. 이공계 연구 특성상 이들 중 누가 더 주도적으로 했는지 명확히 나누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내가 짧은 대학원 생활로 어렴풋이 아는 것은, 지도교수가 주도한 연구에 대학원생 제자가 숟가락을 얹기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스트리클런드 교수는 어쩌면 행운아다. 여성이면서, 대학원생일 때 이룬 업적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 역사에서 여성이 수상 기회를 빼앗긴 경우는 많다. 천체물리학자인 조슬린 벨 버넬은 대학원생 시절 펄서(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중성자별)를 발견했지만,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은 지도교수였던 앤터니 휴이시 케임브리지 대학 천체물리학자에게만 돌아갔다.
여성이 수상한 건 과학 분야 노벨상 599건 중 18건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독일 화학자 오토 한과 함께 원자폭탄을 가능케 했던 핵분열 발견에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1944년 화학자 수상자 명단에는 오토 한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그녀가 물리학상을 탈 것으로 예상했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하고 1968년 사망했다.
우주의 4분의 1을 차지한다고 알려진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한 베라 쿠퍼 루빈, DNA X선 회절 사진으로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데 크게 공헌한 로절린드 프랭클린 역시 안타깝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사례로 꼽힌다(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그녀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노벨상을 받았다). 지난해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599건 가운데 여성이 받은 횟수는 18건으로 전체의 3%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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