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N의 〈알쓸신잡3(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사진 무단 도용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파리 페르라셰즈 공동묘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진 몇 장이 방송에 나갔는데, 이것이 모두 사진가와 상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게다가 김영하씨가 묘지를 설명하는 내용도 사진가가 블로그에 올린 그대로여서 통째로 표절해 대본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우연히 방송을 본 작가 전영광씨가 이 사실을 SNS에 올리자 곧바로 대중의 비난이 쏟아졌다. 논쟁의 여지 없는 사건이라 방송국 측은 사과하고 저작권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이 간과되었다. 방송국 측은 보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이 사건의 핵심은 저작권의 재산권보다는 인격권적인 측면이 크다. 사진이 무단 도용되었을 뿐 아니라 사진 구석에 작가가 넣은 저작권 표기를 자르고 방송 포맷에 맞춰 사진의 모양과 형태를 훼손했다. 아마 사진가도 이 때문에 더 화가 난 듯하다. 저작 인격권은 작가가 저작물을 공중에 공개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공표권), 저작물에 이름을 표기할 권리(성명표시권),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동일성 유지권)인데 이 경우 모두 무시된 것이다.
저작 인격권이 창작자에게 소중한 까닭
저작 인격권에서 대표적으로 논쟁이 되는 사진은 체 게바라의 초상이다. 이 사진은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전속 사진가였던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아바나 항구에 마련된 연단 위의 체 게바라를 순간적으로 찍은 단 두 장 중 하나였다.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 사진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7년 후, 이탈리아 출판사가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를 펴내면서 코르다의 미공개 초상 사진 2점을 실었고 그중 한 장이 바로 이 항구 앞 사진이었다. 책 출간 6개월 만에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살해된다. 책을 출간한 편집인 페트리넬리는 코르다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이 초상 사진으로 수백만 점의 포스터를 제작해 팔았다. 그리고 68혁명 내내 가장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하지만 코르다는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사진이 혁명의 대의에 복무한 것을 행복해했다.
2000년 영국의 대표 주류회사 스미노프가 신작 보드카를 홍보할 때 코르다의 체 게바라 사진을 활용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코르다가 이를 알게 되었고 그는 저작권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법정에서는 별다른 이견 없이 코르다의 손을 들어줬고 징벌적 금액을 포함해 7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했다. “이상향을 꿈꾸는 파르티잔(빨치산)으로서
체 게바라가 자신의 목숨을 던졌던 만큼, 저는 그에 대한 기억과 전 세계에 사회적 정의를 퍼뜨리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그가 재생산되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술과 같은 제품의 홍보를 위해 남용하거나 그의 명성을 흠집 내는 데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반대합니다.” 그는 이 7만 달러를 모두 쿠바 어린이 복지기금에 기부했다. 코르다에게 저작권은 재산권이 아닌 인격권이었다.
언론이나 대중은 저작권 논쟁이 있을 때마다 돈 이야기부터 하기 때문에 그것이 저작권의 전부인 양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창작자들 입장에서 그것은 두 번째다. 돈을 기대하고 자신의 창작물이 무단 도용되기를 기대하는 작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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