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일로나 예르거 지음, 오지원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다윈의 자연과학은 신의 죽음을 선포했다.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은 자본주의를 살해했다.”


현대를 열어젖힌 두 명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반항아인 카를 마르크스와 찰스 다윈은 1881년 영국 런던에 살고 있었다. 더욱이 두 사람의 집은 불과 32㎞ 떨어진 거리였다. 마르크스는 절절한 헌사를 적은 〈자본론〉을 다윈에게 직접 보낸 바 있다. 다윈 역시 그 보답으로 마르크스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상호 간에 짙은 호의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 작품은 마르크스와 다윈이 한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는 허구를 통해 그들의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통찰, 그리고 19세기 말의 자본주의 중심국 영국의 사회상을 소설 형식으로 보여준다. 〈자본론〉 〈종의 기원〉의 사상적 배경과 함께 두 인물의 인간적 고뇌까지 엿볼 수 있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해냄 펴냄

“자신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결정적 요인이다.”

부제는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큰돈 안 들이고, 각자 사정에 따라 쉽게 배워 쓸 수 있게 한 적정기술처럼 심리적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실용적 처방전을 제시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지난 15년간 병원 진료실 대신 현장을 지켰다. 고문 생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과 함께 지낸 경험을 통해 그는 이런 트라우마 현장에서 자격증이 무용지물임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상처받은 이들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것은 심리 치유 전문가가 아니라 상처에 공감할 줄 아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공감해주는 것으로 상처가 치유될까? 그렇지는 않다. 읽다 보면 어머니의 결혼 반대에 부딪힌 딸 등 다양한 사례가 실전 적용 시 이해를 돕는다. 7년 만에 만난 저자의 글맛도 반갑다.


나이트 우드
주나 반스 지음, 이예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사람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것을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죠.”

퀴어 문학의 고전 〈나이트 우드〉가 국내에 처음 번역됐다. 1936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편집은 시인 T. S. 엘리엇이 맡았다. 소설의 첫 독자로서 그는 “너무나 좋은 소설이기 때문에 시로 훈련된 감수성만이 그것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라고 극찬했지만, 편집자로서는 책의 일정 부분 삭제를 결정한다. 당대 검열 기준에 맞춰 ‘출판할 수 있는 레즈비언 소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995년에 이르러서야 삭제된 내용이 복원되고, 국내 번역도 이를 바탕으로 작업됐다.
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에게도 확실히 ‘낯선’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며 때때로 길을 잃는 느낌이 들더라도 일단 끝까지 가보시길. SF 작가 ‘듀나’의 발문과 윤조원 교수의 해설을 작품보다 먼저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단어의 발견
차병직 지음, 낮은산 펴냄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경험의 확장이다. 모르는 세계로 겨우 들어가는 일을 안다고 한다.”

2년 전 편집자는 인권변호사이자 다독가로 알려진 저자를 찾아갔다. 저자는 ‘문인을 긴장시키는’ 빼어난 산문을 쓰는 산문가로도 유명했다. ‘책을 읽다가 눈에 띄는 단어를 붙들어 단어로부터 흘러나오는 생각을 200자 원고지 5장 내외 분량 안에 담아보자’라는 제안에 그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두 장짜리 기획안을 그저 책상 위에 두고 나왔다.
2년 뒤 원고가 도착했다. 원고의 밑바탕이 된 책의 표지는 물론이고 본문 내용이 복사된 꾸러미도 함께였다. 아주 오래된 책부터 근간까지 망라한 책은 철학과 과학을 넘어 시와 소설까지 분야도 가리지 않았다. 88권의 책 안에서 발견한 단어로 사유한 문장을 읽는 동안 독자 역시 자연스레 ‘나의 단어’를 고르게 된다.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
고종석·황인숙 지음, 삼인 펴냄

“그저 돈이 없어서 망상이 되고 만 빛나는 신념이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시인 황인숙씨가 묻고, 작가 고종석씨가 답했다. 인터뷰 형식이지만, 사실과 의견을 건져 올리기 위한 목적의 인터뷰보다는 ‘대화록’이라고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30년 지기 사이의 대화. 시인 황인숙씨는 ‘말하기보다 다른 이의 말을 차분하게 듣는 사람’인데, 그런 시인이 이야기를 끌어가서인지 정겨운 분위기가 감돈다.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일상과 정치, 책과 지식 등을 오간다. 책을 읽다가 ‘뜻밖의 소식’에 놀란 이도 있으리라. 작가 고종석씨가 지난해 연말 뇌출혈로 쓰러졌다. 주치의는 ‘뇌출혈을 겪은 뒤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 많이 달라질 거’라고 했단다. 회복기의 작가는 그 말을 실감하며 생활의 변화를 토로한다. 트위터도 끊었다. 그가 건강을 되찾고 미문으로 돌아오길 소망한다.


백 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  
다카하시 사치에 지음, 정미애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균형이란 섬세하고도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저자 다카하시 사치에는 100세의 정신과 의사다. 70년 가까이 환자들을 만나며 ‘배운’ 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힌트를 건네기 위해 책을 썼다. 평소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그러기 위해 어떻게 ‘마음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지 환자와 지인들의 일화를 통해 조언을 건넨다.
고령의 정신과 의사가 건네는 충고는 부드럽지만 단호하다. 너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지만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대해지지 말아야 한다. 너무 참으면서 살지 않아도 되지만 지나치게 남에게 의지해서도 곤란하다. 이러한 균형을 찾아내는 분별력이야말로 어른이라면 갖춰야 할
능력이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저자의 성찰이 마음을 움직인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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