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그룹 ‘(여자)아이들’의 기세가 뜨겁다. 올해 5월 ‘LATATA’로 데뷔 20일 만에 케이블 차트방송 1위에 올랐고, 두 번째로 발표한 싱글 ‘한(一)’ 역시 세 번이나 1위의 영예를 안았다. 이 두 곡은 모두 이 팀의 리더이자 메인 래퍼인 전소연이 만들었다.

전소연이 처음 방송에 등장한 것은 〈프로듀스 101〉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개개인이 단편적으로 소개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한계상 그는 ‘실력파’라는 애매한 라벨로 존재했다. 자작 랩까지 선보이며 고군분투했지만 중간 탈락했다. 그가 좀 더 돋보인 프로는 뒤이어 출연한 〈언프리티 랩스타 3〉다. 참가자 중 유일하게 데뷔 경력이 없는 연습생 출신이었다. 디스 배틀에서는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지점을 공격당할 것을 예상하고 〈프로듀스 101〉의 핑크색 교복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안타깝게 중간에 탈락했으나 위압적인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강심장임을 증명하며 여러 번 최다 득표를 거머쥐었다.

ⓒ시사IN 양한모


이 두 프로그램에서 전소연이 보여준 공통적인 정체성은 ‘힙합 여성 아이돌’이다. 아이돌과 힙합은 대개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여겨진다. 철저한 기획과 자본으로 이루어지는 아이돌 산업은 힙합이 추구하는 진정성 같은 가치와 정반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GD, 지코, 방탄소년단 등 이미 성공한 남성 힙합 아이돌도 모두 이런 논의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여기에 전소연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더 있다. 그가 여성 아이돌이라는 점이다. 여성 아이돌은 남성 아이돌보다 쉬이 대상화된다. 그나마 남성 아이돌은 자작곡을 발표하면 ‘남자는 실력이 있으면 매력 있다’는 도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성 아이돌은, 자기 목소리를 담은 가사나 자기가 결정한 콘셉트 등 커리어의 방향을 지휘하는 주체이기보다는 귀엽거나 섹시한 대상이기를 기대받는다(아이유나 선미 같은 가수는 꽤 드문 케이스다. 그나마 그들도 연차가 쌓이고서야 ‘셀프 프로듀싱’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전소연이 고무적인 점은 이 과제를 비교적 쉽게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소연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다른 힙합 아이돌, 그리고 셀프 프로듀싱 여성 아이돌이 쌓아온 공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음악가로서 탁월한 전소연 자신의 공이다.

그는 전천후 아이돌 창작자다. 멤버들에게 제공할 가이드 보컬을 각 멤버의 목소리톤에 맞추어 녹음할 수 있는 작곡가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아이돌이라고 해서, 여자라고 해서 이런 사람의 능력치가 과소평가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언프리티 랩스타 3〉의 전 시즌에 등장한 또 다른 아이돌 래퍼 예지는 ‘내가 설마 X밥인데 아이돌을 하겠느냐’라는 펀치 라인을 남긴 바 있다. 대중은 아이돌이라는 장르를 비좁은 시선으로 보지만 이를 넘어서는 인물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괴물 신인’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와 그의 팀, (여자)아이들의 활동을 기대한다.


기자명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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