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연영석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 내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세상/ 내 일한 만큼만 갖는 세상을/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아 나는 오늘도 간절히 원하지(연영석 작사·작곡 ‘간절히’ 중에서).’

연영석은 대표적인 민중가수이다. 아울러 그의 음악은 사회적인 메시지와 음악이 완성도 있게 잘 결합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 발표한 ‘간절히’와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와 같은 곡들은 지금도 많은 노동 현장과 집회에서 자주 불리는 민중음악의 명곡이다. 그러나 연영석은 자신의 대표곡인 이 노래들을 최근 들어 잘 부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스물아홉 살 무렵에야 기타를 처음 접한 그는 정규 앨범 세 장을 발표했으며 지금껏 20년 넘게 수많은 집회 현장에서 노래해오고 있다. 수십 년간 광장에서, 거리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해온 민중음악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15년 만에 새 앨범을 준비 중인 연영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영석 제공가수 연영석(위)은 2006년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15년 만에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이기용:2005년에 3집 앨범이 나온 후 앨범 소식이 없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연영석:벌써 3집 앨범 낸 지가 15년 가까이 됐다. 공연 다니고, 곡 쓴 거 정리하며 새 앨범을 준비하고, 아이도 보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기용:왜 이렇게 음반이 오래 걸리게 됐나?

연영석:1998년에 첫 번째 음반을 낸 후 거리의 집회 현장에서 최근까지 록에 기반한 포크 음악을 해왔다. 그러다 음악에도, 삶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음악적으로는 좀 더 내밀한 이야기와 서정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고, 생각의 변화도 좀 있었다. 어느 순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육아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에 좀 더 구체적으로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런 고민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이기용:정권이 바뀌었다. 민중가수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 부분은 없나?

연영석:정권이 바뀐 것은 정말 다행이고 ‘이명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확실히 다르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맥락에서 보면 여전히 문제는 많다. 근본적으로는 소수가 사회적 재화를 독점하는 문제를 세계적으로 함께 풀어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면 사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불평등한 문제들은 계속 남을 거다.

이기용:그렇다면 지금 현장에 나가서 노래할 때의 심정은 어떤가?

연영석:즐겁지만은 않다. 언제부터인가 장기 투쟁 사업장이 많아졌다. 싸우면 바로 승부가 나는 게 아니라 갈등이 점점 오래 길어지는 곳이 많아서 마음이 무겁다.

이기용:대표적으로 회사 측이 노동자들에게 거는 소송 같은 것들이 있겠다.

연영석:그렇다. ‘콜트콜텍’ 경우도 10년이 넘었다. 그러니 그분들한테 ‘투쟁합시다!’ 이러는 것도 어색하고. 그냥 그분들 지지하고 조금이라도 옆에 있어주는 게 내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이기용:지금 민중가요는 옛날하고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연영석:그렇다. 달라야 한다. 올해가 ‘파업가’가 나온 지 30년 되는 해다. 여전히 파업 현장에서 불리는 명곡이고 앞으로도 계속 불릴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와 그 안의 관계들은 분명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노동자는 무조건 하나여야 했다. 그런데 노동자는 과연 하나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 중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고 그 안에서도 또 다양하다. 여성 노동자도 많고 아르바이트도 많다. 1980∼1990년대는 적과 우리 편이 너무 뚜렷했기 때문에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먹혔지만 지금은 그런 사회가 아니다. 이것을 도저히 하나로 묶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 간의 정서적인 동질감을 형성해낼 수 있는 훨씬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기용:민중음악에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나?

연영석:더 유연해지고 더 많은 소재를 다뤄야 한다. 민중도 사랑을 하니까 민중가요도 사랑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기존 민중음악은 좀 강성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우리 편을 넓히기가 어렵다. 노동자라고 해서 ‘파업가’만 듣는 게 아니잖나. 대중음악과 민중가요가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민중가수니까 ‘달리는 말처럼 눈 가리고 달려야 해’가 아니라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이 그런 시대라는 거다. 한편 노동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음악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내가 종전과 다른 풍의 노래를 하면 현장의 반응이 달갑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을 포용하기 시작하면 집회에 더 다양한 음악가들이 오고, 그러면 집회 문화도 더 풍성해질 것이다. 결국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오기 때문에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기용:준비 중인 15년 만의 새 앨범에서 변화한 점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들이 담기나?

연영석:나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 부럽다. 사람들은 서정적인 음악을 들으며 현실을 잠시 잊고 싶어 하는 욕망도 있다. 나는 왜 그런 걸 못 만들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작업하고 있는 앨범에서는 서정적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하고 싶다.

이기용:연영석의 음악은 왜 멜론, 네이버, 벅스 등 음원 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나?

연영석:제안이 오긴 했는데, 거절했다. 현재 음원 유통 시스템에서는 수익이 음악 창작자에게 너무 적게 돌아간다. 이런 구조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기에 음원 문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지만, 음원을 통해서 뮤지션이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이 너무 적을 바엔 유튜브에 무료로 음악을 공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기용:연영석의 공연은 주로 집회 현장이었다. 본인의 단독 콘서트 계획은 있나?

연영석:지금까지 나만의 콘서트 같은 걸 거의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만 음악을 해선 안 되겠구나 싶다. 집회 현장은 그것대로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 현장이 콘서트장은 아니란 뜻이다. 집회 현장에서의 음악은 일정 정도 집회를 좀 더 문화적으로 고양시키는 하나의 방편이지, 음악 자체가 주가 아니다. 이제는 크든 작든 내가 기획하고 내가 상황을 연출하는 공연을 꾸준히 만들 계획이다.

연영석은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졸업 후에 문화단체를 만들어 활동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민중음악 밴드 ‘메이데이’ 등에 가사를 써주면서 음악과 연을 맺었다. 많을 때에는 한 달에 30일 가까이 전국의 집회 현장을 누비고 다닌 거리의 민중가수 연영석은 이제 나직이 읊조리는 방식으로 노래하고 싶어 한다. 손을 높이 들고 목소리 높이는 대신 그는 삶으로 고민하고 거리에서 노래하며 오랫동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해왔다. 그러기에 15년 만에 발표하게 될 그의 다음 앨범은 그 바람대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따뜻한 햇살처럼 비추길 바란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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