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만난 진한 생의 에너지
  • 고재열 기자
  • 호수 580
  • 승인 2018.10.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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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에서 진행한 ‘나의 첫 아프리카 여행’에 고재열 기자가 동행했다. 헤밍웨이, 데이비드 리빙스턴, 프레디 머큐리. 여행 중에 접한 이름이다. ‘화이트 아프리카’라는 말이 떠오른다.

카렌 블릭센, 어니스트 헤밍웨이, 데이비드 리빙스턴, 프레디 머큐리…. <시사IN>에서 진행한 ‘나의 첫 아프리카 여행’의 여정 중 마주친 이름들이다. 우리가 여행한 아프리카는 날것 그대로이기보다 백인들이 발견하고 개발하고 착취했던 ‘화이트 아프리카’에 가깝다. 가장 평균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케냐와 탄자니아가 특히 그렇다.

비행기에서부터 그 징후는 나타났다. 인천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행 항공기에는 흑인 일색이었는데, 아디스아바바발 케냐 나이로비행 항공기로 옮겨 타자 백인이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달랐다. 선입관 때문인지 그들이 평범한 관광객이 아니라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연구하는 동물학자나 지질학자로 보였다. 이번 여행을 함께 기획한 디스이즈아프리카의 박다애 대표는 “만약 아프리카 54개국을 각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면, 가장 먼저 케냐와 탄자니아를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그 접시에 담긴 음식은 고급 레스토랑의 양식이었다.


ⓒ시사IN 고재열나이바샤 호수 안에 있는 반달섬에서는 걸어 다니며 초식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


‘화이트 아프리카’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날것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감당할 맷집이 없기 때문이다. 황열병 주사를 맞고 말라리아 약을 먹어도 아프리카는 여전히 불안한 곳이다. 하루 먼저 나이로비에 도착했던 한 일행은 불안해서 호텔 밖으로 1m도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야생의 아프리카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바로 ‘화이트 아프리카’를 뒤쫓는 길이다.

나이로비는 경계와 구분의 도시다. 도시 밖에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있다면 도시 안에는 ‘부자 보호구역’이 있다. 부자와 백인들이 이용하는 시설은 담장 위로 철책이 둘러쳐져 있어 마치 군사시설처럼 보였다. 호텔이나 레스토랑도 철저한 경계를 받는다. 호텔에 들어갈 때는 보안 검색까지 해야 하는데 외국인이 아니라 주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다.

‘화이트 아프리카’의 여정에서 처음 마주치는 이름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 카렌 블릭센이다.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85년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퍼드가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녀의 저택이었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아프리카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후 여행 일정과 코스는 ‘카렌 블릭센 로드’라
할 만하다. ‘그녀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도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백인들은 아프리카 초원과 정글 속으로 적정 도시를 옮겨두었다. 그들이 옮긴 도시를 따라 우리는 케냐와 탄자니아를 둘러보게 된다. 카렌 블릭센처럼 글램핑 텐트에서 숙박하고 얼룩말이 뛰어노는 초원에서 정찬을 즐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퍼드와 메릴 스트립은 경비행기를 타고 초원과 호수를 가로지르는데, 우리는 대신 열기구를 타고 아프리카물소 떼를 관찰했다.

‘화이트 아프리카’는 마사이마라 초원에서 시작되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펜이 지나간 킬리만자로 능선을 지나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이 울리는 잔지바르 해변까지 이어진다. 백인들이 재발견하고 재해석한 아프리카를 보게 되고 백인들에게 최적화된 숙박과 식사와 운송을 경험하게 된다. 박제된 아프리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아프리카에서는 ‘게임 드라이브’라 부른다

나이로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는 나이바샤 호수는 해발 1884m에 자리 잡은 늪지로 둘러싸여 있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 본격 사파리(아프리카에서는 ‘게임 드라이브’라고 부른다)를 하기 전에 들르는 곳이라 일종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곳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다. 나이바샤 호수 사파리는 ‘아프리카는 흉내 내는 것이 없다.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준다.

나이바샤 호수 사파리는 보트를 타고 호수 이곳저곳을 둘러본 뒤 호수 한쪽에 있는 반달섬에 내려서 초식동물들을 관찰하고 돌아오는 코스다. 사파리의 첫 주인공은 하마다. 호수 표면에 코와 눈만 드러내고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는 하마 가족을 볼 수 있다. 인상과 달리 하마는 그리 온순한 동물이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원작을 쓰고 그레고리 펙, 수전 헤이워드, 에바 가드너 등 당대의 스타가 출연했던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에 보면 하마가 흑인 가이드를 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종종 사고를 일으킨다.

ⓒ시사IN 고재열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는 좋은 풀을 찾아 이동하는 아프리카물소 떼를 볼 수 있다.

나이바샤 호수에서 하마 다음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물 위로 드러난 하얀 고사목들이다. 바람 세찬 산 정상에 있어야 할 고사목이 호수 안에 있어서 생경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빈집 지붕과 함께 이런 고사목이 군데군데 서 있어서 마치 침수된 곳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건기인데도 수위가 높았다. 고사목은 사람이 살았던 곳에 물이 차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사목을 얻은 대신 잃은 것도 있다. 원래 나이바샤 호수의 명물은 홍학(플라밍고)이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도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퍼드가 경비행기를 타고 홍학 떼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먹이가 줄자 홍학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나이바샤 호수에서는 다양한 새를 관찰할 수 있다.

호수 안에 있는 반달섬에서는 얼룩말·기린·아프리카물소 같은 초식동물을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다. 가이드를 따라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동물을 관찰하니까 꼭 동물원 우리 안에 들어온 것 같다. 반달섬 언덕 위에서는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평원과 그 뒤의 산을 볼 수 있어서 ‘눈맛’이 시원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고편이다.
본편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 경험하게 된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주로 비포장도로다. 험한 길을 몇 시간 달려야 하는데 마사이족 거주 지역을 가로질러 간다. 여기서 재미있는 장면을 마주친다. 도로 곳곳에 장대로 길을 막고 통행세를 받는 마사이족을 만나게 된다. 비가 와서 훼손된 도로에 우회로를 만들어놓고 돈을 받기도 하지만 그냥 막아놓은 곳도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사파리 자동차의 운전사들이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들과 정답게 환담하면서 통행세를 흔쾌히 낸다는 것이다.

나이로비에서 6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은 서울시의 2.5배 면적에 달할 만큼 큰 곳이다. 이곳은 케냐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서로 맞닿아 있다. 아프리카물소들은 좋은 풀을 찾아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 사이를 옮겨 다닌다. 10월에는 마사이마라 쪽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물소 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을 노리는 다양한 육식동물도 덤으로 볼 수 있다. 코끼리·기린·얼룩말 그리고 임팔라·가젤 등 각종 영양류 동물과 원숭이·토끼 등 다양한 동물들을 초원에서 볼 수 있다.

사파리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처음에는 모든 동물이 신기해 보이지만 이내 시들해진다. 나중에는 초식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귀한 육식동물을 찾게 된다. 그런데 육식동물은 대부분 야행성이라 낮에 잠을 잔다(밤에는 사파리가 금지되어 있다). 사자나 표범 같은 육식동물은 잠을 자고 있는 모습밖에 볼 수 없고 움직여도 자다가 기지개를 켜는 정도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역동적인 사냥 장면을 볼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에 가깝다.

초원을 지배하는 법칙은 약육강식이 아니었다. 육식동물이 다들 잠을 자는데 초식동물이 경계할 이유는 없었다. 육식동물은 먹을 만큼만 사냥하고 초식동물은 먹힐 녀석들만 먹히니, 약한 동물은 약한 대로 한가했고 강한 동물은 강한 대로 한가했다. 초원에서는 거대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자의 잠멍, 기린의 하늘멍, 아프리카물소의 풀멍, 악어의 물멍, 하마의 하품멍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멍해 있다.

동물들은 어느 것도 뛰어다니지 않았다. 오직 인간만이 분주했다. 사륜구동 사파리 차를 타고 서로 무전을 주고받으며 구경거리를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정신없이 옮겨 다녔다. 그 모습이 익숙한 듯 동물들은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는데 사람은 그 동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쫓아다니니 동물들이 조금 지겨워져, 우리도 이곳의 동물처럼 ‘멍 때리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팡이를 짚고 우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마사이족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마사이족은 관조하듯 쳐다보았다.

마사이마라가 거대한 동물원이라면 킬리만자로산은 거대한 식물원이다. 이 웅장한 식물원의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은 바로 바오밥나무다. 탄자니아 모시에서 킬리만자로산으로 가는 길에 거대한 바오밥나무를 여럿 볼 수 있는데 그중에는 둘레가 40걸음이나 되는 큰 것도 있다. 수령이 수천 년은 되어 보이는 이런 오래된 바오밥나무가 마을의 당산나무처럼 서 있어서 일행은 차를 멈추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해발 5895m인 킬리만자로는 허가를 받고 등록하고 나서야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등산로 입구인 마랑구 게이트는 해발 1970m인데, 보통 정상을 다녀오는 데에 5박6일 정도 일정을 잡는다. 일행은 해발 2700m에 있는 만다라 대피소까지 왕복 16㎞를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킬리만자로에서 해발 1800~2700m 지역은 열대우림이다. 보통 고산 트레킹에는 자외선을 방지하기 위해 선글라스가 필수인데, 이곳의 원시림을 걸을 때는 없어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만다라 대피소 다음의 호쿰보 대피소(해발 3800m)까지는 관목과 초지의 길이다.

킬리만자로산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서는 그 매력을 알 수 없다. 꼭 걸어봐야 한다. 해발 2700m인 만다라 대피소 정도는 올라가야 킬리만자로의 시선으로 아프리카 평원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이 높이면 고소증이 오는데 등산로를 길게 낸 대신 언덕의 기울기를 가파르지 않게 해서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현지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흥이 많고 유머가 넘치면서도 섬세하게 배려하는 그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과 여러모로 닮았다. 짐을 나르는 포터들은 우리보다 훨씬 큰 짐을 지고도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오른다. 가이드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만다라 대피소에 올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만다라 대피소는 별을 볼 수 있는 명소다. 히말라야의 산장과 몽골의 초원 그리고 캄차카반도에서도 많은 별을 보았지만 킬리만자로에서 본 별과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마치 우주의 어느 곳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SF 영화를 보면 카메라가 별에서 줌아웃되어 지상으로 향하곤 하는데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가깝게 느껴지는 별, 멀리 아득히 보이는 별 등 별과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별을 많이 볼 수 있는 곳, 별이 밝게 보이는 곳, 혹은 크게 보이는 곳이 있었지만 이곳처럼 별의 공간감이 확실한 곳은 없었다.

킬리만자로산의 동쪽 사면에 있는 만다라 대피소는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돋이를 보았다. 해돋이를 본 뒤에는 분화구도 돌아보았는데 전날 오른 곳과는 식생이 달랐다. 관목과 초지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시야가 시원해 정상부를 관망하기 좋았다. 그리고 들꽃이 너무나 예뻐서 킬리만자로를 거대한 식물원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객이 겪는 ‘적도의 추위’

ⓒ시사IN 고재열킬리만자로산 동쪽에 있는 만다라 대피소는 해돋이와 별을 관찰하기에 좋은 명소다.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준비할 때는 추위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날씨는 위도만큼 고도의 영향이 크다. 고도가 높은 곳은 일교차가 크다. 그래서 밤과 새벽에는 상당히 춥다. 일출을 보러 올라가는 언덕의 해발은 3000m가 넘는다. 대피소는 난방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기능 좋은 침낭이나 핫팩 등을 준비해야 한다.

사실 이번 아프리카 여행 내내 우리 일행은 추위와 싸워야 했다. 여행지가 대부분 적도 근처인데, 일사병이 아니라 감기 몸살을 걱정했다. 패딩과 바람막이는 필수품이었다. 해발 2200m인 마사이마라 캠프에서 캠프파이어를 하자 사람들이 불 옆에 모여들었다. 그보다 고도가 더 높은 마사이마라의 로지에는 담요 안에 넣고 잘 수 있는 유단포(보온 물주머니)가 방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적도는 추웠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나이로비(해발 1600m)나 아디스아바바 (해발 2400m)에서는 긴팔 옷은 당연했고 점퍼를 입은 사람도 흔했다. 간혹 털모자를 쓴 사람도 있었다. 일교차가 매우 커서 두꺼운 옷은 필수였다. 시베리아와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 열기구 파일럿을 하는 세르게이와 그의 아내 엘레나도 7월과 8월에 추위 때문에 혼이 났다고 말할 정도다. 마사이족이 담요로 온몸을 친친 감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간 잔지바르 섬은 ‘화이트 아프리카’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잔지바르는 마지막 노예무역 항구로 유명한데, 노예들의 불행이 시작되던 이곳이 지극한 행복을 주는 휴양지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많은 여행가들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곳 중의 한 곳인데, 압도적인 풍광과 억압의 역사가 뒤섞인 이곳에서 다양한 감성의 자극을 경험할 수 있다.

나이로비의 카렌 블릭센에게서 시작된 ‘화이트 아프리카’는 잔지바르에서 프레디 머큐리로 마무리될 뻔했는데,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룹 퀸의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부끄러워하고 인종차별주의자를 위해 공연했던 프레디 머큐리를 ‘싱겁게’ 추모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하나 볼 수 없었다. 백인 몇몇만 그의 생가 터를 기웃거릴 뿐 추모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프레디 머큐리 이름을 딴 바에서는 다른 음악을 틀었다. 우리가 요청한 뒤에야 겨우 그의 음악 몇 곡을 들려주었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프레디 머큐리와는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화이트 아프리카’를 ‘블랙 아프리카’로 되돌리면서 아프리카에서는 백인들이 붙인 이름을 스와힐리어로 되돌렸는데 리빙스턴만은 예외라고 했다. 그가 노예해방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붙인 빅토리아 폭포는 그대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잔지바르에서 노예 매매가 이뤄지던 곳에 세워진 성공회 성당에도 그의 무덤에서 자란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아직 있었다.

제국주의 시대 영국은 식민지를 지배할 때 대륙의 숨통을 쥘 수 있는 섬을 주로 정복했는데 잔지바르도 그런 곳이다. 당시 인도계 영국인들도 많이 정착했으며 프레디 머큐리가 바로 그들의 후손이다. 노예무역을 독점하려 했던 아랍의 오만 왕조도 그런 이유로 이곳을 공략했다. 아랍인들은 이곳에 이슬람교를 남겨두었다. 탄자니아 본토는 기독교인이 많지만 잔지바르는 대부분 무슬림이었다. 무슬림들은 잔지바르에 수많은 이슬람 유적을 남겼고 인도계 영국인들은 이곳을 향신료(특히 정향)의 고향으로 키웠다. 영화 <간디>의 주인공 벤 킹슬리의 할아버지도 그런 잔지바르의 향신료 무역상 중 한 명이다.

이런 다양한 문화가 빚어낸 독특한 풍광을 볼 수 있는 잔지바르는 고급 휴양도시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낸 낡음에는 추레함이 없었다. 잔지바르의 중심인 스톤타운의 골목 사진을 찍어본 일행은 “쿠바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라고 평했다. 섬 북쪽의 능궤 해변은 백사장이 곱고 바다색이 예뻐 휴양지로 이름나 있다. 섬 동쪽의 파제 해변은 해양 스포츠의 성지여서 젊은이들이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쪽에 자리 잡은 스톤타운은 석양이 유명했다.

등려군의 ‘첨밀밀’을 들려준 현지인 공연


잔지바르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휴양도시지만 잔지바르의 주인은 아프리카 현지인이었다. 야시장에서든 해변에서든 현지인들은 주인답게 자신들의 도시를 즐겼다. 특히 석양에 펼쳐지는 아이들의 다이빙 놀이가 인상적이었다. 진한 생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스톤타운의 여행자들은 현지인들의 즐거움과 흥에 기대고 동화되어 행복을 느끼게 된다.

잔지바르에서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색깔을 보기도 했다. 바로 중국인들이 몰고 온 ‘골드 아프리카’ 바람이다. 아프리카 여행 내내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나이로비 파라다이스 호텔에서는 현지인 공연자들이 중국 관광객들을 위해 등려군(덩리쥔)의 ‘첨밀밀’ 등 중국 유행가를 불러주기도 했다(테이블의 대부분은 중국 관광객이었다). 이런 중국 단체 관광객들은 ‘전설’을 몰고 다닌다. 나이바샤 호수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 한 중국인 관광객이 금지 구역에 갔다가 하마에 물려 죽는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서는 한 해 전에 중국인 신혼부부가 가이드 말을 듣지 않고 위험 행동을 하다 사자에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사IN 고재열잔지바르의 스톤타운 해변에서는 석양이 되면 아이들이 다이빙을 즐긴다.

잔지바르에서도 ‘골드 아프리카’의 징후는 강했다. 중국 자본이 아프리카에 깊이 뿌리박히고 있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의 운전을 맡아주었던 안토니 씨는 “잔지바르 사람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 중국 기업이 축구 경기장을 지어주었다. 지금 차 밖으로 보이는 공사장 중 높은 건물은 전부 중국인들이 짓는 곳이다”라고 귀띔해주었다. 잔지바르의 아름다운 석양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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