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채증과 집회의 자유 관계는?
  • 이상엽 (사진가)
  • 호수 579
  • 승인 2018.10.2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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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헌법재판소(헌재)에서 꽤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이뤄지는 국가 경찰의 사진 채증에 관한 것으로 초상권 등 인권과 관계된 중요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를 보도한 언론은 그리 많지 않았고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주변에 거의 없다.

법학전문대학원생 김 아무개씨 등은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집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경찰에 마구잡이 채증을 당한 이들은 “경찰이 각종 집회 현장에서 불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촬영하고 있다. 이는 초상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며 경찰청 예규인 ‘채증활동규칙’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경찰이 집회·시위 참가자들을 촬영하는 ‘채증 행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4(합헌):5(위헌)로 헌법 재판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김이수·강일원· 이선애·유남석 재판관 등은 “집회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촬영은 집회 참가자들의 (초상)인격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 불법행위의 긴급성이 요구될 때만 허용해야 하고, 근접촬영은 참가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가하는 부당한 방법이므로 채증활동규칙은 위헌”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 이상의 찬성에는 이르지 못해 합헌으로 결론이 났다.

파리코뮌 이후 사진으로 색출 작업

ⓒ이상엽2014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집회의 참석자들을 채증하는 경찰.

1871년 파리, 니엡스와 다게르가 사진을 발명한 지도 40년쯤 흐른 이곳에서는 증명사진이 유행이었다. 그해 프랑스 ‘파리코뮌’이 일어났다. 황제에 반대하는 파리 시민 대부분이 들고일어나, 집에서 사용하던 가구들로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그 변혁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해방은 잠시, 일주일간의 전투 끝에 2만명이 학살당하고 파리코뮌은 붕괴했다.

더욱 비극적인 사건은 사진으로부터 시작됐다. 경찰은 당시 사진을 수거해 동조자 색출 작업에 나섰고 4만명이 체포당해 사형과 강제 노동, 투옥, 유형 등의 징벌을 받았다. 파리코뮌에 반대하던 문호 빅토르 위고조차 “누구를 징벌하는가? 파리에 벌을 내리는가? 파리는 자유를 원했을 뿐이거늘!”이라며 분노했다. 사진사가 지젤 프로인트는 “사진이 국가 폭력의 정보로 활용된 첫 사례”라고 한탄했다.

이후 사람들은 혁명의 거리에서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다. 이는 사진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가는 경찰을 이용해 정치적 반대자들이나 예비 범죄자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주민증에 사진을 넣은 나라가 프랑스이다. 지금 주민증에 새겨진 증명사진도 그런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시 헌재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판결은 위태롭다. “새로이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을 발견하기 위하여는 촬영할 필요가 있다”라는 판결은 누구든 잠재적 불법행위자가 될 수 있으니 초상권에 상관없이 얼굴을 기록해도 된다는 뜻이다.

지금도 이 나라 곳곳에서 경찰에 의한 채증이 진행 중이다.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을 앞두고서도 제주도 강정에서는 경찰뿐 아니라 해군에 의한 주민 채증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요즘 집회는 과거보다 얼굴을 가리는 사람이 더 많다. 언론사 사진기자 때문이 아니다. 카메라를 든 경찰 탓이다. 집회의 자유가 과거보다 위축된 것이다. 분명 채증은 헌법 제21조 1항 집회의 자유를 억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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