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 ‘인도양의 낙원’ 몰디브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연합 후보 이브라힘 모하메드 솔리(54)가 현직 대통령 압둘라 야민에게 압승을 거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인구 40만명을 조금 웃도는 이 나라에서 솔리 후보는 13만4616표(58.4%)를 얻었다. 야민 후보가 얻은 표는 9만6132표(41.6%)에 그쳤다.

인도 정부가 너무 기뻐했다. 표정 관리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개표 직후 인도 외무부가 나서서 “이번 몰디브 선거는 이 나라 민주 세력의 승리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의 가치가 지켜지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격찬했다. 몰디브는 인도 남부에서 해상으로 700㎞ 정도 떨어진 섬나라다.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오랜 세월 인도의 절대적 영향권 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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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민 대통령이 집권한 2013년부터 새로운 패권 세력이 대두했다. 중국이 몰디브에 대대적 인프라 투자를 개시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게 몰디브는 중동과 아프리카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경제·군사적 전략 거점이 될 수 있다. 인도양의 패권국가 인도에겐 좌시할 수 없는 사태. 문제는 야민 대통령이 철저한 친(親)중국파라는 사실이다. 솔리 후보를 앞세운 야권연합은 인도, 그리고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관계를 더욱 중시한다.

야민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으나 독재자였다. 행정과 경제, 군사 부문 등에서 대통령 권한을 일방적으로 강화하면서 야권 지도자들을 막무가내로 투옥했다. 올해 들어 대법원이 수감 정치인들에 대한 석방을 결정했지만 그는 승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2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법원으로 군경을 보냈다. 6개월 뒤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몰디브 정부가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올 만했다. 인도와 서방국가 정부들이 일제히 야민 정부 압박에 나섰다. 그 결과가 솔리 후보의 승리다.

솔리 후보는 몰디브민주당(MDP)의 창건자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 비판 언론의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1995년 서른두 살 나이로 의원직에 선출되었다. 2003년에서 2008년 사이 진행된 ‘몰디브 정치개혁’ 당시, 개헌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삼권분립, 기본권 보장, 다당제 등을 포괄하는 현대적 헌법을 몰디브에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해서 거행된 2008년 ‘민주 대선’에서 비로소 마우문 압둘 가윰 당시 대통령의 30년 통치가 종식되었다.

몰디브 정계에서 솔리 후보는 신중하고 자제력 강한 정치인으로 평가되지만 지명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가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유력 정치인들이 거의 체포된 상태였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정치 일정대로라면 당선한 솔리 후보는 11월 대통령에 취임한다. 몰디브를 둘러싼 정치 게임에서 일단 민주주의와 친(親)인도(및 서방국가) 진영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몰디브인들은 ‘30년 독재’의 가윰 전 대통령 뒤에 인도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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