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3.47점)보다 신뢰도 점수가 낮았다. 검찰은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개혁 최우선 대상으로 꼽혔다. 조사 대상인 청와대 등 국가기관 8곳 가운데 지난해와 비교해 낙폭도 가장 컸다(오른쪽 〈표〉 참조). 대법원은 지난해 4.8점에서 올해 3.42점을 받아 1.38점 떨어졌다. 지난 5년 동안 신뢰도 조사를 보면, 한 해 만에 신뢰도 점수가 1점 이상 떨어진 국가기관은 탄핵 직전인 2016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유일하다(2015년 4.85점에서 2016년 3.62점으로 1.23점 하락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이 신뢰도 하락의 원인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로 전·현직 판사들이 줄줄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개인 비리로 형사처벌된 판사는 있었지만, 대법원 수뇌부가 조직적으로 연루된 사건은 처음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 등이 재판 거래 의혹의 당사자다. 법원 내 요직을 차지하는 현직 판사들도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비공개 조사를 받은 전·현직 판사만 50명 가까이 된다.
지난해 초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내부 제보 뒤 대법원 자체 조사가 세 차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올해 초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사는 문건이 대거 발견됐다. 구체적인 재판 거래 의혹 피해자도 나왔다. KTX 승무원 해고, 전교조 법외노조 결정, 과거사 배상 등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논란이 된 판결의 당사자들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한 상고법원을 대가로 박근혜 정부 입맛에 맞는 판결을 했다는 의혹이 커졌다.
국회·국정원도 낮은 성적표 받아
신뢰도 하락에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태도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법원은 재판 거래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대거 기각했다. 9월 현재 관련 수사로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208건 중 23건만 발부했다. 발부율이 11%다.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전체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율 87.85%와 비교되는 수치다. 법원이 수사를 방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기각 사유를 살펴보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 “직접 문건을 작성하거나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등이다(44쪽 인포그래픽 참조).
재판 거래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대포폰(차명 전화기)’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검찰은 대포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9월13일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기본권 제한의 정도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압수수색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사유를 밝혔다. 이후 임 전 차장이 대포폰을 임의 제출했지만, 주로 범죄 혐의자가 사용하는 대포폰에 대한 강제수사마저 법원이 제동을 건 셈이다.
유해용 전 수석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은 법원이 사흘 동안 ‘쥐고’ 있다가 기각했다. 주말이 포함되긴 했지만 이례적이다. 압수수색은 신속성이 중요하다. 박범석 부장판사는 9월10일 “재판 자료 반출은 부적절하지만 죄가 되지 않는다”라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사이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에서 가지고 나온 자료를 파기해, 법원이 증거인멸을 방조했다는 비판까지 샀다.
수사 단계에서 법원이 보여준 태도 때문에 재판 거래 의혹을 담당할 특별재판부를 신설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9월17일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전국 법학교수 137명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재판 거래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대법원의 신뢰도 하락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대법원과 함께 국회·국정원도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오랜 기간 불신을 받아온 입법부가 3.28점으로 전체 8개 국가기관 가운데 신뢰도 꼴찌였다. 국정원은 지난해 최저점에서 조금 올랐지만(3.16점→3.39점) 여전히 불신 구간에 들어 있다. 지난 1년 동안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의 국내 정치·선거 개입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특히 특수활동비 상납으로 국정원 수장이었던 원세훈·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이 모두 구속된 상황(원 전 원장은 추가 기소)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 조사 대상 국가기관 8곳 중 청와대만 5.27점으로 유일하게 불신 구간을 피했다. 청와대 신뢰도는 대통령 신뢰도와 같이 움직인다. 문재인 대통령 신뢰도는 5.86점으로 나왔다. 지난해 6.67점에 비해서는 떨어졌다. 대통령 신뢰도 조사는 지지율 조사와 발맞춰가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고공비행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부동산 대책 등 경제정책 관련 논란으로 하락세다. 9월18~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는 반영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신뢰도는 세대별로는 30대(6.59점)와 40대(6.43점)에서 높았고, 60세 이상(4.99점)에서 낮았다. 지역으로는 광주·전북·전남(7.38점)이 높았고, 대구·경북(4.85점)이 낮았다. 그 외 지역은 5점대 중·후반을 기록했다. 지지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7.7점)에 버금가는 신뢰도 점수를 정의당 지지자(7.14점)가 주었다. 거꾸로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2.33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바른미래당 지지자는 3.82점, 민주평화당 지지자는 5.94점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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