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선미의 답변은 늘 명쾌하다. 10년간 몸담았던 소속사를 떠날 때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하고 싶은 것이 확실했기에 딱히 두렵지 않았다”라며 싱긋 웃어 보인다. 가지고 있는 재능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무엇에 강하고 무엇에 약한지, 어떤 것이 잘 어울리고 어떤 것을 피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콘셉트와 상관없이 선미의 무대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상쾌함의 근원 역시 같다. 스스로에 대한 깊은 연구 끝에 결국 해답을 찾아낸 사람 특유의 깊이와 안정감이 주는, 뒤끝 없는 산뜻함이다.

선미의 이러한 확신은 단지 말뿐이 아니기에 더욱 빛난다. 2007년 만 열다섯의 나이에 그룹 ‘원더걸스’ 멤버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8년 선미라는 사람을 온전히 녹여낸 미니 앨범 〈WARNING(워닝)〉을 내놓기까지 선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기민한 판단과 단호한 행동력이었다. 그룹으로 한창 활동을 이어가던 2010년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 그 뒤 선미 앞에 놓인 선택지는 결코 쉽지 않은 것투성이였다. 그는 기약 없는 휴식 끝에 ‘굳이’ 기존 소속사를 통해 예기치 않은 솔로 데뷔를 알렸다. 이후 잠시 떠났던 그룹에 ‘굳이’ 재합류한 뒤 밴드로 형태를 바꾼 그룹 안에서 베이시스트로 활약하며 ‘굳이’ 자작곡을 선보였다.

아이돌의 흥망성쇠에 대한 상식을 생각했을 때 앞선 ‘굳이’는 대부분 어떻게 해도 팬과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항목들이었다. 때로는 의아하게, 그래서 더 대담해 보였던 그 모든 선택은 지금의 선미를 있게 만든 더없이 든든한 밑그림이 되었다. 그와 작업한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선미의 타고난 촉과 감은 자신과 시류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낮은 자세와 만나며 더없이 훌륭한 시너지 효과를 이뤘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그는 짧지 않았던 공백기도, ‘24시간이 모자라’(2013)와 ‘보름달’(2014)이 덧씌운 섹슈얼 판타지도, ‘4차원’이라 불리는 독특한 성격도, 소속사도 멤버도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도 ‘굳이’ 떨쳐낼 필요가 없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대로 선미였기 때문이다.

‘가시나’와 ‘주인공’을 돌아 다다른 경고 프로젝트의 마침표 〈WARNING〉은 그렇게 선미 자신과 완벽히 호응하며 더욱 완벽해진 서사를 갖는다. ‘누가 이 쇼의 주도권을 쥐고 있냐(Who’s running the show)’는 외침, 그리고 ‘네 환상에 아름다운 나는 없다’는 외침이 10년 넘게 그를 봐온 이들의 심장 한가운데를 묵직하게 치고 지나간다. 전반적인 완성도, 수록곡이 가지고 있는 팝으로서의 매력, 호흡이 잘 들어맞는 프로듀서의 영리한 기용 등 좋은 음악과 아티스트를 가르는 데 자주 호명되는 기준 모두 합격점이다. 선미에게서 태어난 음악이 선미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 명의 멋진 팝스타를 갖게 되었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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