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지난 회에 나이절 캐머런의 〈로봇과 일자리: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이음, 2018)에 대해 쓰면서 이해찬 민주당 신임 당 대표의 ‘20년 집권 플랜’에 비난 섞인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 인공지능 로봇의 심각한 또 다른 문제인 ‘군사 로봇’에 대해 언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 아쉬움을 풀기 전에 20년 집권 플랜에 대해 한마디만 덧붙인다. 미국의 경우 10~20년 안에 전체 고용의 약 66%가 인공지능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고 한다. 한국이라고 해서 그와 같은 환난을 피해갈 수 없다면, 민주당 20년 집권 플랜은 해일 앞에서 개헤엄을 치는 꼴이다. 민주당 20년 집권 플랜이 아니라, 문제는 일하는 국민의 운명이다.

미국의 육해공군은 10대 지원병을 모집하기 위해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붓는데, 미국 해군의 텔레비전 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최전방에 인간이 설 필요가 없도록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모병 광고는 현대의 군대와 전쟁이 마치 공상과학영화 속의 군대와 전쟁을 닮아간다고 말해준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 육군은 M-60 탱크를 무인 지뢰 제거 차량으로 개조했지만 사막을 가로질러 이라크로 진격할 때는 투입하지 않았다. 또 공군에서는 단 1대의 무인항공기(드론)만을 날렸다. 하지만 1993년 소말리아에서 블랙호크 헬기가 추락하고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미군 전사자를 줄이고 비대칭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군 장비의 무인 시스템과 군사 로봇 개발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실상은 9·11이 벌어지기 한 해 전인 2000년 2월, 미국 의회 상원군사위원회는 2010년까지 적전선 너머를 공격하는 모든 항공기의 3분의 1, 2015년까지 모든 지상 전투 차량의 3분의 1을 무인화하는 계획을 미국 국방부 예산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군사 로봇 1만2000여 대를 보유하게 되었고(대표적인 군사 로봇은 정탐용으로 만들어진 팩봇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파키스탄 등에서 무인기 4000여 대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미군은 언젠가 군사 로봇에게 전투를 완전히 맡기게 될 때까지, 현재의 군대를 인간과 로봇 혼성부대로 재편하는 데 힘쓸 것이다.

2009년 출간되어 과학과 미래 전쟁에 대한 저서로 어느덧 이 분야의 고전이 된 〈하이테크 전쟁-로봇 혁명과 21세기 전투〉(지안, 2011)의 지은이인 피터 W. 싱어는 이렇게 말한다. “무인 항공기가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 은닉처를 공격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 나는 무기 분야에서 핵폭탄 이래 가장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는 시기에 살고 있음을 몸으로 느낀다. 디지털 전사(戰士)의 등장이 핵폭탄보다 더욱 중요한 사건이라는 주장이 충분히 가능하다. 로봇공학의 발전은 전쟁의 치명성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주체까지 바꿔놓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군대를 가진 정부와 제품을 개발하는 산업체는 군사 로봇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을 것이며, 대다수 국가의 국민들은 이 일을 방관할 것이다. 군산복합체가 군인 로봇을 개발하는 이유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지만, 지구 경찰을 자임하면서 많은 나라에 군사기지를 두어야 하는 미국 정부는 경제적 이유가 아닌 여러 편리성에서 군사 로봇이 절실하다. 전쟁을 벌이는 국가가 젊은이를 전선으로 보내면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전사하는 것이고, 전사자가 늘어나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 로봇은 허기를 느끼지도 않고, 두려움이 없고, 명령도 잊지 않는 데다, 전사하지도 않는다.

전쟁이라는 게임을 관람하는 스포츠팬처럼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뒤, 야전 군인들이 처한 위험과 희생에 동참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백악관의 군 최고 통수권자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때와 똑같이 “나가서 쇼핑하라”고 당부했다. 그때만 해도 군과 국민은 군대에 가족을 보낸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사 로봇의 등장은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부시의 말을 지당한 것으로 만든다. “무인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면서 군과 사회의 마지막 연계 고리마저 단절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전쟁의 과정과 결과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심지어 대중을 전쟁이라는 게임을 관람하는 스포츠 팬처럼 바꿔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이동훈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참전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을 수반한다. 하지만 군사 로봇 시대에는 많은 군인들이 원격조종을 하기 위해 해외가 아닌 미국 내에 있는 군 기지를 출입할 것이다. 무려 필자 20명이 드론·군용 로봇·사이버 전쟁·생물학 병기·화학 병기·핵병기·우주 전쟁·핵 테러리즘에 대해 한 편씩 글을 보탠 〈미래의 전쟁-과학이 바꾸는 전쟁의 풍경〉(한림출판사, 2017)에서 피터 W. 싱어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식의 전쟁을 하는 병사에게 제일 위험한 때는 전투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출퇴근하는 시간이다.” 미국 국방부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많은 젊은이를 군으로 유인하면서, 제대를 해도 아무런 경력 단절 없이 그와 비슷한 직종에 취직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서구 문명은 신무기가 개발될 때마다 여러 논리를 동원해 신무기 사용을 악마화했다. 활과 총이 출현했을 때 교황청과 귀족(전사 계층)은 두 무기를 비열한 것으로 단정하고 금지하고자 했다. 그 때문에 포로로 잡힌 궁수나 소총수는 처형되거나 손발이 잘렸다. 현대에 와서는 지뢰·어뢰·잠수함· 핵폭탄·네이팜탄 등 무수한 신무기가 똑같은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신무기가 뛰어난 살상 능력과 작전 능력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폐기된 경우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마틴 반 클레벨트의 〈과학기술과 전쟁:B.C.2000부터 오늘날까지〉(황금알, 2006)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압축한다. “우리 쪽보다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를 붙여서 부당한 무기”로 간주했을 뿐, “모든 것을 군사적인 충돌로써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은 산업 로봇과 군사 로봇 개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로봇 산업이 엄청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섹스 로봇’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정교한 섹스 로봇이 등장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피터 노왁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문학동네, 2012)에서 줄기차게 입증하려고 했던 그것, 즉 군대와 섹스 산업은 기술을 매개로 통합되어 있다는 그의 주장이 옳다면, 섹스 로봇은 그나마 남아 있는 한 줌의 인간 병사들을 위한 군수품으로 제일 먼저 보급될지 모른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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