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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기하, 막장은 몰라도 재미는 안다

아직도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뮤지션을 모른다면, 당신은 ‘유행’에 조금 늦다. 뭐, 별 문제될 건 없다. 그는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젊은 뮤지션이니까.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08년 11월 19일 수요일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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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한향란
장기하 :1981년생, 2002년 ‘눈뜨고코베인’ 드러머(지금도 활동 중), 2008년 5월 ‘장기하와 얼굴들’ 데뷔 앨범 <싸구려 커피> 출반 히트곡 ‘싸구려 커피’ ‘달이 차오른다, 가자’ ‘나를 받아주오’ .
그는 ‘뭐’라는 단어를 자주 섞어 말한다. “제가 뭐, 그냥 뭐···” 따위의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히트곡 ‘싸구려 커피’에도 ‘이거는 뭐’라는 가사가 나온다. ‘화법도 콘셉트인가’ 싶어 얼굴을 쳐다보면 문득 세상 일을 다 알아챈 늙은 소년처럼 달관한 표정을 짓는다. 급기야 노래를 만든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런 걸 지면을 통해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각자의 느낌이 정답일 거예요. 노래를 만든 것 자체로 이미 설명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까 듣는 이의 상상력을 억압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어떻게든 이 사람을 ‘설명’해야 하는 기자 처지에서 별로 반갑지 않다. 심지어 “내가 안 한 말을 쓰지만 않으면, 기사는 마음대로 쓰셔도 된다”라며 여유만만이다. 이 가수, 대체 누군가.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27)는 단언컨대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수다. 디시인사이드(DC inside) 등 젊은 누리꾼이 즐겨 찾는 인터넷 공간에서 장기하는 ‘장교주’로까지 불린다. 그는 음반사 홍보 문구 말마따나 ‘잘생긴 얼굴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의 길을 버리고 음악으로 승부하겠다며 지난 5월, 데뷔 앨범을 냈다. 그러다 한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신촌·홍대 앞의 음반점에서는 그의 음반이 찍어내는 족족 팔리는 까닭에 불황기에 ‘품절’ 사태까지 빚고 있다.

젊은 층이 장기하의 노래에 꽂힌 까닭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상당수는 신장개업 이벤트에 등장하는 풍선 인형처럼 두 팔을 흐느적거리는 ‘촉수춤’에 열광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오히려 ‘춤만 빼면 최고다’라며 그들의 음악성을 추어올린다. 촉수춤에 열광하든, 음악성에 반했든 장기하는 이제 ‘필수 요소’다. 인터넷에는 그의 음악과 춤을 패러디한 UCC가 넘쳐난다.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는 ‘재미’가 있다.

“늘 ‘내가 관객이라면 어떤 게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요. ‘비디오형 가수’라는 평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수가 밋밋하게 연주만 하고 말 거면, 뭣하러 공연을 하나요. 음반만 내면 되지.”
‘한국형 포크록의 부활’이라는 평을 듣는 그의  노래 역시 ‘싸구려 커피’의 노랫말처럼 귀에 ‘쩍쩍 달라 붙는다’. 언뜻 1970~1980년대 포크 가요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창법에는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멜로디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노랫말도 압권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내레이션인지 판소리인지 모를’ 그의 랩이다.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대학가 지하 자취방의 일상을 노래한 ‘싸구려 커피’ 랩의 한 대목이다. 젊은 층이 열광하는 건 바로 이 ‘자취방 정서’ 때문이다. 속칭 ‘된장녀’와 ‘신상남’만 넘쳐날 것 같은 2008년의 청춘에게 이 노래가 꽂힌 건 역설적이다. 미디어에 의해 화려하게 포장된 20대의 감성을 장기하가 정확하게 건드렸다는 이야기다.

민감한 감수성과 타고난 재능


장기하는 지난 8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음반을 냈을 때는 서울대생이었고, 지금은 ‘서울대 출신 뮤지션’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스스로도 ‘서울대 프리미엄’ 덕에 더욱 유명해졌을 거라고 수긍한다. 그러나 그런 배경이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잘나가는’ 서울대 출신이 ‘막장 인생’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폄훼다.

자기 음악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겠다는 그의 ‘주관’까지 겹쳐지면서 소수지만 안티도 생겨났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 딴따라’는 그렇게 일부의 색안경을 통과해야 하는 불우함도 견뎌야 한다. “전 그동안 꽤 낙천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무 살 넘어가면서부터 어느 순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 하는 알 수 없는 허무가 밀려오는 거예요. 그게 데자뷔처럼 반복되더군요. 그럴 때마다 혼자 방에 누워서 기타를 배 위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싸구려 커피’를 만들 때도 그런 느낌이었죠.”
그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동시에 재능도 타고났다. 자기의 허무를 음악을 통해 달랠 수 있는 것이다. “어느날 문득 제가 ‘HOT’의 ‘행복’을 음계이름으로 따라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때 제게 절대 음감까지는 아니어도 ‘상대 음감’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뒤로는 뭐, ‘노래 한 곡 만들어야지’ 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하고 만들어졌어요. 코드 대충 조합해서 베이스기타 넣고, 드럼 들어가고, 이러면 되더군요.”

자신의 재능을 다시 발견한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 ‘데모질’하고, 술 마시고 토론하기를 즐기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에게 캠퍼스밴드 활동을 하던 지인이 신중현과 산울림을 소개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이들 뮤지션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그들의 노래는 멜로디와 우리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이런 노래는 전세계에서 우리만 할 수 있겠다”라는 걸 절절히 느꼈다. 음악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도 이 무렵이다.

“어제도 산울림 노래를 다시 들었어요. 큰 산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되더군요. 한편으론 무척 안심이 돼요. ‘아직도 내가 공부할 게 많구나,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안심이죠. 그러니까 신중현이나 산울림과 함께 청춘기를 보낸 선배들은 얼마나 설레겠어요.”
비범한 건 장기하만이 아니다. 장기하의 앨범을 낸 ‘붕가붕가레코드’ 역시 비범한 음반사다. 이 음반사는 앨범을 ‘수공업’으로 제작한다. 직원들이 공CD를 구입해 녹음한 뒤, 라벨 붙이고 케이스에 넣는 작업까지 직접 한다. 이렇게 만든 <싸구려 커피> 싱글앨범 가격은 4000원. 다른 앨범의 절반 가격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윈윈’하는 시스템 덕이다. 그들의 ‘딴따라질’은 그렇게 지속 가능하다.

겨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장기하는 ‘전업’ 뮤지션이 아니었다. 음악 활동하는 틈틈이 방송국에서 해외 뉴스를 번역하는 알바를 뛰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제는 알바를 접고 음악에만 몰두할 작정이다. “하나마나한 노래는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뭐, 어쩌라고?’ 이런 것 말고, ‘아~ 그런가? 재미있다!’ 하는 반응이 나오는 음악이요. 재미가 있어야, 의미도 있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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