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우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강간미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 전 의원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였다. 제19대 국회(2012~2016년) 비례대표 10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례대표 11번에 배치됐다.

이 전 의원은 강간치상·강제추행·감금 등의 혐의로 지난 3월 구속 기소됐다. 7월27일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유성)는 강간미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이 기소한 강제추행·감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바로 다음 날 이 전 의원을 고소한 피해자는 처벌을 요구하며 합의를 하지 않았다. 검찰 쪽은 “피해자 합의 없는 강간미수 사건에서 집행유예는 흔치 않은 데다 강제추행 혐의에 대한 무죄판결도 인정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항소했다. 모든 혐의에 무죄를 주장하는 이 전 의원 쪽도 “합의하의 행위였다”라며 1심 판결에 불복했다.

ⓒ연합뉴스이만우 전 새누리당 의원은 강간치상·강제추행· 감금 등의 혐의로 지난 3월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시사IN〉은 1심 판결문을 입수했다. 판결문 속 사건을 재구성했다. 또한 재판부의 판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폈다. 특히 무죄 판단 논거를 보면 ‘안희정 판결’ 이후 논란인 성범죄 피해자를 바라보는 재판부의 시선이 읽힌다. “통상적인 피해 이후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례적이다” “강제추행 당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와 같은 표현이 판결문에 나온다.

강간미수 유죄 핵심 증거는 호텔 객실 복도의 CCTV였다. 2017년 11월28일 오후 3시14분, 이 전 의원은 호텔 복도에서 피해자의 팔을 잡아끌고 객실 문 앞으로 갔다. 피해자는 중간에 벽을 잡았다. 3시15분 피해자가 호텔 방 문 앞에서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찍혔다. 그러자 이만우 전 의원은 피해자의 양손을 잡아챘다. 동시에 열어두었던 객실 문이 닫혔다. 이 전 의원이 문을 잡으려고 피해자의 손을 놓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피해자가 복도를 뛰었다. 바로 붙잡혔다. 이 전 의원은 피해자를 감싸 안고 객실로 들어갔다. 12분 후인 오후 3시27분 객실 복도 CCTV에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방에서 나온 피해자의 모습이 나온다. 옷도 다 갖춰 입지 못한 피해자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비상계단으로 가서야 신발을 신었다. 그런 다음 걸어서 한 층을 내려온 뒤 주변을 살피고서야 엘리베이터를 탔다.

2시간 정도 지난 오후 5시9분, 이 전 의원은 피해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씨 오늘 해프닝 미안해. 너무 과한 것 용서해. 가끔 점심식사나 같이해. 행복한 하루를.” 피해자는 이튿날 답장을 보냈다. “어제 의원님 차 안에서부터 호텔까지 의원님이 한 행동 때문에 치가 떨려 오늘까지 한잠도 못 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해프닝이라뇨. 그동안 의원님이 제 몸에 손을 대도 ○○○과 관계 때문에 참고 참았는데, 이거 너무하시네요….” 그러자 이 전 의원은 이렇게 다시 보냈다. “○○씨 너무너무 오해하고 있군요. ○○씨하고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어린애처럼 순수한 마음에서 오버액션 했나 보오. 용서해주세요. 다음 기회 차 한잔 하면서 정식 사과 하리다.”

1심 재판부는 강간미수 혐의와 관련해 피해자의 문자 항의에 그런 사실 없다고 부인하지 않은 점 등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범죄 피해자의 수사기관 피해 신고는 당연한 권리임에도 피고인(이만우)은 오히려 피해자가 돈을 노리고 고소를 했을 가능성, 피해자가 이 사건을 언론에 제보했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피해자를 비난해, 피고인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라고 판시했다. 이만우 전 의원이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기보다는 2차 피해를 가했다고 지적했다.

ⓒ시사IN 이명익8월14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안희정 무죄, 사법부 유죄’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전 의원에게 유리한 양형 참작의 사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이 전 의원과 피해자가 다소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을 내세웠다. 피해자가 사건 전까지 이 전 의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사회적인 관계 등을 고려해 제대로 된 거절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1심 재판부는 보았다. 피해자가 도망가 범행이 미수에 그치게 된 점도 이 전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달려드는 이 전 의원을 향해 씻고 오라고 말한 다음, 피해자는 이 전 의원이 씻는 동안 도망쳤다. 피해자의 노력으로 범행이 미수에 그쳤는데 재판부는 이를 가해자에게 유리한 정황으로 해석했다. 이에 대해 이만우 전 의원은 “호텔에 들어가기 전 스킨십이 있었고, 호텔 방 앞에서 거절의 몸짓을 한 것은 겸연쩍어서 한 행동으로 여겼다”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이 주장하는 ‘스킨십’에 대해 피해자는 ‘성추행’이라고 반박했다. 검찰도 강제추행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 전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피해자가 묘사하는 바와 같이 수치스러운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 근거였다.

강제추행죄 넓게 해석하는 판례와도 어긋나

검찰이 기소한 공소사실은, 강간미수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이만우 전 의원이 자신의 차 안에서 피해자에게 저지른 행동이었다. 피해자는 이 전 의원이 “뽀뽀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라며 키스하자, “싫다” “더럽다”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전 의원은 피해자의 몸을 만지거나 자신의 몸을 만지게 했다. 그러고는 호텔을 찾아 운전을 했다. 피해자는 “차에서 내린다고 했지만 ‘싫다, 모텔 간다’고 하면서 차를 세우지 않아 내릴 수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댄 이만우 전 의원에게 주차 공간을 확인해주거나 호텔 숙박비 결제를 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도망가지 않은 점 등을 무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이만우 전 의원이 (건물 밖으로) 나오면 같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달래서 같이 가려고 했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내심 이를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달래는 정도의’ 소극적 의사표현을 하거나 어느 정도까지의 스킨십은 허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만우 전 의원이 피해자의 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강제추행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이러한 판단은 최근 강제추행죄를 넓게 해석하는 대법원 판례와도 어긋난다. 지난 5월27일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는 헤어진 연인에게 강제로 키스한 남성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피해자가 피고인을 달래는 듯한 행동을 했다”라는 부분이 항거 곤란한 상태가 아니라는 근거였다. 하급심과 달리 대법원은 강제추행죄를 인정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힘을 행사한 것 자체가 문제다. 힘의 대소 강약이 중요하지 않다. 이는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이다.” 항거 곤란을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지에 방점을 찍었다.

이 전 의원 강간미수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 증언하는 성추행은 한 건 더 있다.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하기 10개월 전인 2017년 1월19일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1심 재판부는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성추행을 당한 이후에도 몇 차례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등의 ‘적극적 행동’을 했다고 판단했다.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통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피해 이후의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강간미수 같은 강력 범죄를 당한 다음에서야 수사기관에 찾아가고 가해자에게 항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가 상정하는 성범죄 피해자 범주에는 ‘성범죄를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는 피해자’와 ‘회복 불능의 상처받은 피해자’만 존재하는 셈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