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베트남 모델을 거론할 때만 해도 진정성이 느껴졌다. 김 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말년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의 힘을 빌려 무너진 산업시설을 재건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시사IN 양한모

베트남 모델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미 반중’의 태도다. 미국과 친하고 중국과 대립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통일 직후인 1979년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으며 반중 의식이 강화됐다. 오랜 전쟁 상대였던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 외에는 활로가 없었다.

베트남 모델의 진정한 함의는 이런 국제정치적 문제를 뛰어넘는 데에 있다. 체제 전환을 꿈꾸는 국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야 인프라와 산업시설을 재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그 나라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여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미국으로부터 최혜국대우(MFN)를 받아 수출 상품에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중국의 개혁·개방도 이것이 가능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베트남이 가까이 있는 중국을 놔두고 미국과 10여 년에 걸친 힘든 협상을 마다하지 않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4·27 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모델을 얘기했을 때, 이제 북한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후 행보는 실망스럽다. 미국과 협상하는 데는 건성으로 임하고 오히려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해서 과연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과 협상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다행히 북한은 그 점에서 베트남보다 유리하다. 바로 남한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미국과 협상할 때 한국과의 관계가 큰 도움이 됐다. 하물며 북한이 하겠다는 데 가만히 있겠는가. 남북 공조는 이럴 때 하라고 있는 말이다. 퇴영적 남북 공조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 남북 공조가 필요하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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