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제작·방영된 영국 드라마로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동시에 많은 사랑을 받은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xxxing World)〉의 원작은 그래픽노블이다. 이 책은 간결하고 단순한 대사, 막 흘려 그린 듯한 무성의한 그림체가 시선을 끈다. 주인공 제임스와 앨리사의 관점을 나누어 편집한 챕터의 흐름은 ‘다행히도’ 놀란 독자의 가슴을 쉬어가게 만든다.

제임스의 엄마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을 했고, 앨리사의 새아버지는 집을 떠나라고 앨리사를 압박하는데 친엄마조차 딱히 딸을 지켜주려 하지도 않는다. 어린 시절, 아무도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외려 상처만을 준 것이 가족이라면 과연 그들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가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자 이 둘은 이 불안한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와 세상을 경험한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찰스 포스먼 지음, 성기승 옮김, 프시케의숲 펴냄

제임스의 나이는 열여섯. 자신이 사이코패스라 믿는 그는 동물을 죽이는 데 싫증나서 사람을 죽여볼까 하는데 그 앞에 앨리사가 나타난다. 삶이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전개되지 않는 법.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예정에 없던 길 위의 삶을 시작한다. 우연히 빈집을 발견하고 그곳에 잠시 머무는 사이 큰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과연 그 둘은 어떻게 이 여정을 끝낼까. 두 사람은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될까?

주인공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잔인하고 극단적인 둘의 캐릭터가 먼 나라 이야기, 혹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상상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의 10대라면 공감하고 이해할 정서의 어떤 극단적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낯선 세상에 외롭게 던져져 10대를 통과해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세상이 있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이기 일쑤였고 욕도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이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되뇌어봤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들의 성격과 행동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험난한 로드 무비에 기꺼이 동참하고 정서를 공유한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된 그래픽노블

찰스 포스먼은 이 책 하나로 미국 인디 만화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젊은 작가다. 미국 중서부에서 8쪽짜리 시리즈로 시작한 이 만화가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줄은, 게다가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어 사랑받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루저, 왕따, 사이코패스 또는 분노조절 장애를 지닌 이들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보편적인 울림을 갖게 되었다.

미래를 꿈꾸지 않는, 꿈꿀 수조차 없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 불온한 삶은 지속되리라고 본다. 세상을 향해 ‘엿이나 먹어라’고 외치고픈 청춘이 많다. 그렇기에 이토록 단순한 플롯의 그림책과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림책은 잔인하고 다소 충격적이라 청소년에게 딱히 권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10대를 이해하고 그들과 가족을 이룬 (여전히 미완인) 어른들에게 더 많은 이해와 소통을 위해 일독을 권한다. 길 위를 쓸쓸히 떠도는 10대가 있다면 그 책임은 바로 어른들, 기성세대에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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