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3일 낮 태풍 솔릭이 제주도 서쪽 바다에서 멈췄다. 초당 1.1m를 움직였다고 하니 성인이 걷는 속도다. 태풍을 사람 크기로 환산하면 머리카락 두께 정도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상 멈춰 있는 것이다. 아무 곳에도 의지하지 않은 수백㎞ 크기의 거대한 공기의 소용돌이가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런 놀랍고 신기한 현상만큼 놀라운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상청에서 예보관들은 태풍이 머무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전날 밤을 새우면서 태풍이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자연은 언제나 경외 대상이다. 거대한 구름을 볼 때도 비바람을 맞을 때도 그 안에서 규칙을 발견할 때도 자연은 신비롭기만 하다. 태풍은 언제나 위도가 낮은 데서 생기며 바람은 언제나 북반구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들어 간다. 과학자들은 태풍이 생기지 않는 지역도 알아냈으며 그 이유도 밝혔다. 복잡한 자연현상 안에도 규칙이 숨어 있다.
 

ⓒ연합뉴스8월23일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예보관들이 태풍 솔릭의 이동 경로를 보고 있다.

역으로 자연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도 인간을 놀라게 한다. 분명히 규칙이 있음에도 인간은 자연을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의 능력 부족 탓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 자체가 바로 자연의 성질이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 상당수는 정확한 예측을 불허한다. 과학자들은 어떤 경우에 예측이 어려운지 잘 이해하고 있어서 이에 대해 연구도 했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혼돈이론’이라고 한다.

혼돈이론에 따르면 복잡한 몇몇 시스템은 아주 작은 초깃값의 차이가 나중에 매우 큰 차이로 귀결된다. 흔히 ‘나비효과’라고 부르는데, 어떤 지역에서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다른 곳에 태풍이 분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이렇듯 인간은 자연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측정 시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차이라 해도 시간이 흐르면 크게 다른 예측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예보라는 기술에는 조금 더 거창한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예를 들면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술’이라든가 ‘자연의 한계에 부딪치는 기술’이라든가 말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그 가치를 모르는데 일기예보가 바로 그런 경우다.

지난해 9월 부산 지역에 쏟아진 기록적 폭우는 9월 강수량으로서는 부산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댓값이었다. 기상청은 엄청나게 많은 비가 올 것을 예상해 내부에서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올 것인가. 기상청은 150㎜ 넘게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 전날 예보하고 호우 예비특보를 발령했다. 새벽이 되어 호우주의보와 경보를 순차적으로 발령했다. 하지만 비는 200㎜ 이상 쏟아졌다. 마치 자연이 인간의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보수적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합뉴스2017년 9월11일 폭우로 부산 동래구 온천천 일대가 물에 잠겼다.

자연의 성질에 도전하는 기술 개발이 늘 높게 평가받을 일은 아니다. 자연의 성질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무모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1세기에, 에너지보존법칙에 위배되는 일을 시도하려고 하면 무모하다는 말을 넘어 무지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기술적 무모함과 과감함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다. 20세기에 성인이 된 많은 사람은 21세기가 되면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비행기를 타듯이 우주여행을 할 줄 알았다. 질병을 완전히 정복하고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21세기인 현재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상이다.

2017년 기상청 일기예보 정확도는 92%

그렇지만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다고 기술자들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성까지 가는 로켓은 아직 무모해 보이고 완전한 자율주행차도 어려워 보인다. 일기예보 기술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왜 완전한 예보를 하지 못하느냐고 질타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단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하면 금방 완전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2017년 대한민국 기상청의 일기예보 정확도는 92%다. 자연이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데도 열 번 중 아홉 번을 맞히고 있다. 비 예보도 정확도만 따지는 적중률이 46%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일의 절반을 맞히는 셈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중에 가장 성공률이 높다. 화산도, 지진도 이렇게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금융공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주식시장 역시 말할 나위 없다.

대기과학자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기술을 개발했다. 여러 가지 측정 장비를 개발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한다. 위성을 띄우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모델을 만들고 계산하는 것도 기상학자들 몫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연은 완전한 예측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확률적으로 예상하는 것이 최선이다.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확률을 조금씩 높일 뿐이다. 자연의 성질 앞에 인간의 기술은 한낱 잔재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예보 기술은 발전했다. 임의로 변화를 줘서 여러 결과를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앙상블 기법도 사용한다. 위성에서 보내는 수많은 데이터를 모델에 어떻게 적용해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지 일상적으로 연구한다. 기상청은 전 지구의 데이터와 대한민국 주변의 데이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맞춰본다.

일기예보 기술은 지금도 활발히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는 떨어지는 빗방울의 증발량까지 고려해 강수량을 예상하는 방식을 발표했다. 비가 구름에서 내리긴 하는데 중간에 얼마나 증발되는지에 따라 땅에 도달하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레이더로 빗방울과 구름의 양을 알아내는 것은 이제 기본 중에 기본인 세상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일기예보에서 인간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해 정확도를 더 높이려고도 노력하고 있다. 일기예보의 7할은 기상학자들이 만들어낸 수치 해석 결과가 차지한다. 수많은 기술자들은 이 능력을 개선하려 애쓰고 있다. 최종적으로 인간이 개입해 예보를 완성하는 부분까지 더욱 개선하려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기상 데이터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딱히 정형화되어 있지도 않다. 가로세로 19칸짜리 바둑의 경우의 수는 기상 데이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란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작다. 이런 노력 덕에 일기예보 정확도는 조금씩이지만 나아지고 있다.

한국도 인류가 발전하는 만큼 같이 발전하고 있다. 190개가 넘는 세계기상기구(WMO) 회원국 중 전 지구 수치예보 정확도를 보고하는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한데, 한국도 그중 하나다. 이 중에서도 한국은 2017년 당당히 6위를 차지했다. 기상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비 예보 적중률은 우리보다 12% 정도 높은 58%다. 차이가 적지 않지만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기자명 이진오 (〈밥벌이의 미래〉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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