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것들’의 결혼 이야기
  • 임지영 기자
  • 호수 572
  • 승인 2018.09.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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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정현우 부부는 결혼 제도에 질문을 품고 각자의 방식을 추구하며 사는 10쌍의 부부를 인터뷰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프로젝트다. 이들 이야기에 다른 ‘요즘 것들’의 관심이 높았다.

부부가 된 지 3년째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900㎞를 함께 걷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한 지 3년이 되어간다는 의미였다. 이혜민(31)·정현우(32) 부부는 둘만의 방식으로 결혼식은 치렀지만 여러 가지 ‘미션’이 산적해 있었다. 안정적인 벌이, 번듯한 집, 2세 계획까지. 지금 사는 원룸에서도 언젠가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언제 낳을 거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기분이 별로인데, 내가 이상한 건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결혼이라는 제도에 질문을 품고 사는 ‘요즘 것들’을 찾아 그 나름의 사정과 대책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둘은 2017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10쌍의 부부를 인터뷰했다. 결혼식, 제사, 명절, 아이, 육아, 경제생활 등 각 생활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빠른 속도의 결혼식이 불편해 웨딩 장식부터 드레스까지 손수 준비하고 해변에서 식을 올린 부부, 동거를 하다 대출을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한 부부, 살림과 육아를 자로 잰 듯 정확히 5대 5로 나누는 부부, 각자의 앞가림을 하며 셰어하우스처럼 공간을 공유하는 부부, 100년 된 빈집을 고쳐 신혼집을 마련한 부부, 둘이 누우면 꽉 차는 신혼집을 벗어나 여행하며 사는 부부 등 다양한 커플을 만났다. 이들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들 젊은 부부의 이야기에 다른 ‘요즘 것들’의 관심이 높았다.  

ⓒ윤성희이혜민·정현우 부부(왼쪽부터)는 산티아고로 신혼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위 공간은 이씨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 ‘900km’의 작업실.

영상 속 한 남편은 말한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의 거의 모든 요소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과연 이상한 점투성이다. ‘혼주’라는 말부터 그렇다. 왜 결혼의 주인이 양가 부모일까? 결혼식에 신부가 혼자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드레스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모두들 그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여동생을 아가씨, 시동생을 도련님으로 부르는 ‘고릿적’ 호칭도 부자연스럽고 고부 갈등을 여자들끼리의 싸움으로 치부하는 문화도 이상하다. 그냥 따르면 오히려 편할 수도 있지만 그 짐은 또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누군가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안 살아도 불안해.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불안한 게 좀 더 낫지 않나?”

인터뷰는 주로 혜민씨가 진행하고, 현우씨는 동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았다. 공감대가 큰 부부들과 짧은 시간, 금세 친해졌다. 혜민씨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부부가 인상적이었다. 결혼 후 가부장제의 현실과 맞닥뜨린 ‘오란씨’ 부부에게 페미니즘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한 소외감을 여자들이 많이 느끼는데, 왜 페미니즘이 이슈인지 여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려 하는 남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우씨는 여행하며 사는 김미나·박문규 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20대 초반부터 각각 집안의 가장이었던 두 사람은 전 재산을 털어 2년 반 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돌아와서 1년간 제주도에 머물다가 얼마 전 타이로 떠났다. 아이를 갖지 않거나, 명절에 각자의 집에 가거나, 통장을 따로 관리하는 사례는 이따금 들려오지만 이들 부부는 또 낯설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삶의 양식이 똑같으면 결국 변화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인식을 바꾸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이혜민·정현우 부부도 1~2년간 여행을 한 뒤 함께 어떤 공간을 꾸려나가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이 프로젝트도 ‘소속 없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시즌 2 주제는 ‘일’


둘에게도 ‘결혼 이후’는 충격이었다. ‘고리타분한 관례와 조선 시대 호칭까지 결혼 안에서는 여전히 실화’였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걸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이상한 건가?’ 현우씨도 결혼 후 30평(99㎡)대 집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라고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두더니 ‘이제 어른이니까 어른의 행동양식에 맞추라’고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결혼식 말고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만 넣으려고 했다. 인터뷰를 해나갈수록 ‘나의 방식’대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한 시작이 결혼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인터뷰를 접한 누군가가 ‘일반적인 요즘 것들은 이렇지 않다’는 소감을 남겼다. 일반적인 부부를 그리려고 한 건 아니다. ‘요즘 것들’이라는 명칭에 조금 다른 삶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다만 그렇게 살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가 있구나’ 하고 인식하길 바랐다.

다른 부부들을 만나며 두 사람도 조금씩 바뀌었다. 현우씨는 특히 몰랐던 걸 알게 되었다. “며느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긴 어려웠는데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나도 역할을 좀 바꿔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집안 행사는 각자 알아서 조율한다든지, 고부 갈등을 단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을 새겨들었다.

두 사람은 결혼 전부터 소소하게 기획성 프로젝트를 자주 구상했다. 혜민씨는 자칭 ‘기획병 환자’다. 둘의 결혼식 이야기도 기념 삼아 책으로 만들었다가 상업 출판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은 두 사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나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취직한 뒤에는 잘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야근도 많이 했다. 견디다 보면 언젠가 빛이 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는 동시에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살지 말고 다르게 살아봐야겠다’ 싶어 산티아고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같은 생각을 가진 배우자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여행 후 현우씨는 게임 회사에 취직했고 혜민씨는 잡지 에디터와 기획 편집자 경력을 살려 1인 출판사 ‘900㎞’를 차렸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도 책으로 냈다.

결혼을 장려하거나 꼭 해야 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른 정답을 제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이 너무 많은데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고 결혼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시즌 2의 주제는 ‘일’이다. ‘나’답게 살고 싶은 젊은 세대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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