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엄마가 무릎을 꿇었다. 다른 엄마가, 또 다른 엄마가 줄지어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9월5일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 토론회’에서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이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장애인들이 처한 교육 환경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지난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부끄러움을 일깨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월7일 그 강서구 특수학교가 우여곡절 끝에 첫 삽을 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특수학교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정숙씨와 발달장애인 아들 전민우군은 서울시 중랑구에 산다. 중랑구는 현재 서울시 자치구 중 특수학교가 없는 8곳(중랑·동대문·성동·용산·영등포·양천·금천·중구) 중 하나이다. 서울시 학교 배치는 ‘학군’이라 불리는 교육지원청 단위로 이뤄지는데, 중랑구와 동대문구를 관할하는 동부교육지원청은 서울시내에서 특수학교가 없는 유일한 교육지원청이다.

2011년 봄, 김씨의 아들 민우군을 포함한 중랑구 예비 중학생 15명은 중랑구와 인접한 특수학교인 노원구 동천학교와 광진구 광진학교에 입학을 신청했다. 결과는 전원 탈락이었다. 어머니 김씨는 장애아를 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중랑통합부모회를 통해 서울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2012년 5월, 행정심판위원회는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배치 명령에 따라 15명 가운데 4명이 중랑구 인근 특수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민우군은 선발되지 못해 일반학교에 갔다. 노원구와 광진구의 특수학교 역시 과밀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수교육법에 따라 초·중학교는 학급당 6명, 고등학교는 학급당 7명으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특수학교 신설 없이는 기존 특수학교에 과밀 학급만 늘어날 뿐이다.

ⓒ시사IN 신선영8월2일 서울 중랑구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한 교사가 학생과 대화하고 있다.

일반학교에 진학한 민우군의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특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민우군의 ‘도전적인(공격적인) 행동’이 심해졌다.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던 민우군은, 고등학교 2학년 체육 시간에 친구를 때렸다. 곧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되고 강제 전학이 결정됐다. 김씨는 “가슴 아프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특수학교에 배치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한 시간 거리의 일반학교에 배치됐다. 또다시 특수학급과 일반학급 생활을 병행해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일반학교에는 장애 학생을 위한 ‘자리’가 없다. 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특수교육 대상자들은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은 환경에서 교육받는 이른바 통합교육이다. 물리적 통합에 불과하다. 중랑구의 한 일반고에 재학 중인 민주한군(가명·18)의 어머니 임은화씨는 학교 체육대회 사진에서 아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체육대회를 즐기는 사이 특수학급 아이들은 교실에서 동영상을 시청했다. 특수학급을 인솔해야 할 특수교사는 체육대회 사진 촬영에 투입되었다.

2012년 5월 행정심판위원회는 재배치 명령과 함께 특수학교를 더 지으라고 서울시교육청에 권고했다. 이 행정심판을 계기로 중랑구에도 특수학교를 새로 짓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민우씨(현재 20세)와 친구들이 ‘더는 학교가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될 때까지도 특수학교는 생기지 않았다. 처음 행정심판을 청구하던 2011년부터 따지면 7년이 지났다. 중랑구는 아직 특수학교를 지을 ‘땅’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고려 중이라는 부지만 여덟 번 바뀌었다(열세 번이라고 기억하는 부모도 있다. 반면 중랑구청은 검토한 부지가 4~5곳이라고 설명한다). 육사 근처 개인 부지는 매각 의사가 없어서, 경춘선 근처 부지는 용도 변경이 불가능해서, 또 다른 부지는 그린벨트가 낀 지역이어서, 인근 주민 반대가 심해서, 향후 ‘중랑의 미래’가 될 지역이어서….” 현직 또는 후보 시절 구청장들은 특수학교 설립 협조를 약속했다. 그러나 누가 당선되어도 변화는 없었다.

교육청과 구청의 ‘핑퐁 게임’

‘운 좋게’ 중랑구 근처 특수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 학교에 보내려면 새벽 5~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중랑구에 살면서 인근 광진학교에 다니는 발달장애인 김지원군(18)의 어머니 이순식씨는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노력한 지난 7년을 ‘핑퐁 게임’에 비유한다. “서울시교육청이 부지를 ‘여기?’ ‘여기?’ 식으로 찌른다. 그럼 구청에서 안 된다고 한다. 그럼 교육청이 또 ‘그럼 여기?’ 한다. 구청은 거기도 안 된단다. ‘부지 찾다 애가 죽으면 애 묘지에나 지을 수 있으려나’ 생각할 정도다.”

중랑구 특수학교는 ‘가칭’ 동진학교라는 이름만 정해졌을 뿐이다. 2018년 현재 설립 첫 단계인 부지조차 확정하지 못했지만 서울시 특수교육 운영계획상 동진학교의 개교 시기는 2020년으로 잡혀 있다.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는 “올해 안에는 부지를 확정한다고 해도 건설을 위한 물리적 기간을 고려하면 2020년 개교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내 특수학교 설립 담당자는 단 한 명이다.

기자명 전범진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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