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공정한 첫걸음.’ 8월17일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공정’에 강조색이 쓰였다. 공정성을 내건 이번 대입 개편 방안의 골자는 수능 확대다. 교육부는 정시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대학에 권고했다. 국어·수학·탐구 과목 상대평가, 영어·한국사 과목 절대평가 체제는 종전대로 유지했다. 수능 선택과목 수를 늘렸고 수시 전형 시 수능 최저학력 기준 활용은 대학 자율에 맡겼다.

이 결정은 지난 8월3일 발표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에 따른 것이다.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7월10일부터 20일간 시민참여단 숙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은 시나리오 4개를 놓고 토론을 거쳤다. 시민참여단이 가장 많이 선택한 시나리오는 ‘1안’과 ‘2안’이었다. 1안이 내건 교육 비전은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할 때,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이다. 교육과정보다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성적·등수)를 중시하고, 그 결과를 판가름하는 평가 방식의 공정성에 예민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안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장 ‘공정한’ 입시제도로 수능을 떠올린다. 그래서 1안은 각 대학의 모든 학과(실기 제외)에서 수능 위주 전형 비중을 지금보다 늘릴 것을 제안한다. 수능 평가 방식은 현행 (일부 과목 제외) 상대평가를 유지한다.

ⓒ윤성희8월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안이 내건 교육 비전은 다음과 같다. “더 이상 성적으로 줄 세우는 방식에 얽매여 다수 학생을 좌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치열한 경쟁과 줄 세우는 학교 수업보다 다양한 소질과 적성, 배움이 실현되는 학교 수업이 가능해진다.” 교육을 통한 결과(성적·등수)보다 배움 그 자체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안이다. 2안은 학교 수업을 문제풀이 시간으로 만드는 수능의 위상 강화를 경계한다. 수능 비중을 인위적으로 늘리지 않고 대학 자율에 맡기며, 수능 평가 방식을 전 과목 절대평가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두 안의 지지도는 팽팽하게 맞섰다. 1차 조사에서는 2안이 더 높았지만 2~3차 조사에서는 1안이 앞섰다. 리커트 척도 조사(매우 지지한다 5점, 매우 지지하지 않는다 1점으로 평가하는 방식) 결과 그 차이도 0.13점, 오차범위 안이라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핵심 의제에서 결론이 나지 않자 공론화위원회와 국가교육회의는 세부 의제에서 권고안을 작성할 판단 근거를 끄집어냈다. 적정 수능 전형 비율을 묻는 질문에서 나온 수능 확대 의견이다. 현행 20% 정도 수준인 수능 위주 전형 비중을 30~4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이것만 보면 1안의 승리다. 거칠게 요약하면 ‘수능이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냐’ 양자택일에서 시민들이 일단 수능의 손을 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참여단이 택한 ‘중장기적 방향’은 오히려 2안에 가깝다. 중장기 수능 평가 방식을 묻는 질문에서는 ‘전 과목 절대평가’와 ‘절대평가 과목 확대’ 지지가 과반수를 넘었다(수능 절대평가가 되면 수능 위상이 약해진다). 중장기 대입제도 선발 방법에 대해서도 32.3%가 학생부 위주 전형을, 24.3%가 수능 위주 전형을 택했다.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하게 고려한 요인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 지향(4.5점), 선발 과정의 객관성 지향(4.42점), 지역·계층·학교 유형 간 격차 완화(4.21점)’ 등의 순서로 선호도가 높았다(아래 표 참조). 1안과 2안이 내건 교육의 가치 사이에서 시민들은 쉽게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했다. 온라인만 보면 다수 여론인 것 같은 ‘수능파’가 숙의를 거친 시민들에게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30% 이상이라는 기준선을 못 박으며 대학에 수능 전형 비중 확대를 권고했다. 원칙상 대입 전형 방식은 대학 자율이지만 교육부는 수능 전형 30% 이상 이행 여부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에 따른 재정 지원을 연계하겠다고 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 총장들을 만나 “이번 개편안이 교육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대학이 협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공론화가 교육 갈등 해결하는 좋은 방법?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놓고 ‘수능 확대파’와 ‘수능 축소파’ 모두 김상곤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수능 확대파는 교육부가 제시한 최소 수능 전형 비중 30%가 너무 낮다고 불만을 표했다. 축소파는 수능 절대평가와 수능 자격고사화를 추진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공약을 파기하고 오히려 퇴행했다고 반발했다. 박정근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장은 이번 대입 개편안이 현장 교사들의 좌절감을 키우지 않을까 우려했다. “창의·융합·협업을 강조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다양하고 질 높은 수업 혁신을 위해 노력하던 교사들이 이번 대입 개편안을 많이 기대했다가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어차피 수능 범위에 들어가느냐 아니냐만 중요해질 텐데 우리가 왜 (수업 혁신을 위해) 이래야 하나,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 하고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수능 선택과목이 늘고 그 조합의 수가 매우 많아지면서 학생들의 부담이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수학 선택과목에 기하 과목이 다시 추가되면서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양산될 확률도 높아졌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수학 교사는 “기하는 내용도 어렵고 교과서 자체가 한 학기를 온전히 다 써야 가르칠 수 있게 짜여 있다. 학교에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같은 걸 동원해서 미리 수학 진도를 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수학 부담이 늘어나고, 수학 사교육 시장이 번창할 게 뻔하다”라고 말했다.

대학에 수능 전형을 확대하라고 권고하는 방식도 문제다. 교육부는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이라는 대학 재정지원 사업을 당근과 채찍으로 내세웠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은 고교교육 내실화 및 학생·학부모의 대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령상 대학 자율인 대입 전형을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사업이다. ‘고교교육 내실화’를 위해 고교교육 황폐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수능을 대입 전형에서 더 많이 보라고 요구하는 이율배반에 빠졌다. 더욱이 교육부 권고를 따르면 돈을 주고, 그러지 않으면 안 주겠다는 재정 연계형 대학 지원은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 적폐로 크게 비난받았던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교육 공약인 고교학점제도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이 제도는 수능은 물론 내신까지 절대평가가 필수적이다. 교육부는 2022년에서 2025년으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시기를 3년 늦췄다. 그러나 수능 비중이 강화되고 상대평가 환경이 유지되는 한 그때라고 도입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2025년이면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난 지도 한참 뒤다.

시민참여단의 숙의를 통한 공론화 방식이 교육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팩트 체크가 안 된 자료집이 제공됐다’ ‘의제 설정이 편파적이다’ 등 그간 여러 차례 논란이 일었다. 숙의 과정을 참관한 좋은교사운동 김영식 대표는 “대입제도에 대한 설득과 학습의 과정으로서 의미 있는 시간이긴 했지만 일반 시민들이 교육정책의 결정자가 되는 지금 방식이 적절한가는 계속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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