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복원’ 위한 소설가 김숨의 질문
  • 임지영 기자
  • 호수 571
  • 승인 2018.08.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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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씨(사진)가 책 세 권을 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장편소설 <흐르는 편지>와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두 권이다. 2년 전에도 같은 소재를 다룬 소설 <한 명>을 낸 바 있다.

소설가의 질문은 좀 달랐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묻는 게 아니라 장소의 향기나 계절의 감각을 묻는 식이다. 김숨 작가가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인간이 착하다고 생각하는지’ ‘돈 벌러 가는 줄 알고 평양을 떠났던 봄, 처음 도착한 만주에서 어떤 꽃이 피었는지’ ‘위안소에서 사용하던 비누에선 어떤 향기가 났는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스무 차례, 두 사람을 만나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엉뚱한 걸 물으니 할머니 중 한 명이 머리를 좀 쓰라고,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 그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의 주선이었다.


ⓒ윤성희


그즈음 김숨 작가는 장편소설 <흐르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두 번째 작품이다. 2년 전 출간된 <한 명>을 쓰고 나서 미흡하다는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다.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사람만 남은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던 할머니가 남은 생존 피해자가 둘에서 한 명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여기도 한 명 더 있다고, 자신의 삶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300여 개에 이르는 증언을 토대로 다큐멘터리를 기록하듯 써내려갔다. 각주 316개가 달렸다. “<한 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나름대로 많이 찾아봤는데 내가 모르던 부분이 많았다.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내 있었는데 2년이 지나서 쓰였다. 지식으로는 습득이 됐지만 이해되지 않은 게 많았다. 위안소의 풍경이 내가 살던 집처럼 그려져야 하는데 잘 안 되다 어느 순간 그려졌다.” 위안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번에 출간된 <흐르는 편지>를 시작으로,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증언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가 연달아 나왔다.  

<흐르는 편지>의 주인공은 만주 낙원위안소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녀다. 전작이 지나온 과거를 서술한다면 이번 작품은 현재를, 지금의 고통을 직접 서술한다. 작가의 용기가 느껴진다. 그는 “읽었던 증언들이 정리가 되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한 명>을 쓸 때 증언을 읽으면서도 사실일까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증언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다른 증언들이 증명했다. 서로에게 증인이 되어준 셈이다. 그렇게 실제 있었던 경험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는 혹시 과장할까 봐, 내 상상력으로 쓸까 봐 견제를 많이 했는데 이후 내 안에서 체화되어 정리가 되었다. 선을 넘지 않고 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김숨 작가는 길원옥(왼쪽)·김복동(오른쪽) 할머니를 스무 차례 만나며 많은 질문을 던졌다.

소설은 소녀가 강물에 ‘삿쿠’를 씻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엔 쌀가루를 반죽해 찐 일본 떡인 줄 알았던 삿쿠는 일제강점기에 쓰인 군용 콘돔이다. 미끌미끌하니 죽은 개구리를 만지는 느낌이 나는 삿쿠의 개수를 세며 간밤에 군인을 몇 명이나 받았나 헤아렸다. 소녀는 어머니에게 닿길 바라며 흐르는 강물에 편지를 쓴다. 비단 짜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고향을 나서던 길, 소풍 가는 것처럼 설레는 심정이었다. 어머니는 치마저고리라도 한 벌 해 입혀 보낼걸 그랬다고 울상이었다. 소설은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라는 편지로 시작한다.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던 소녀는 마지막에 가서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한다. 아기가 죽기를, 아기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내 지속된다. 따라 읽어 내려가는 마음도 갈팡질팡한다. 저 아이가 태어나지 말길, 죽지 말길.

왜 하필 임신한 위안부를 주인공으로 했을까. 극중 주인공은 생리를 시작하기 전 위안소에 갔다가 초경을 겪으며 병에 걸린 줄 알고 놀란다. “위안소에서 임신했던 분들이 많았다. 아이를 실제로 낳기도 했다. 끌려갈 당시에는 생리도 안 하고 아이의 몸이었는데 그곳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된 거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던 증언들이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고향에 돌아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사는 피해자도 있지만 그때 얻은 불임으로 자식을 갖지 못한 이도 있었다. 그중 일부는 아이 낳는 게 큰 소원이었다. 그 시절 ‘보통 여성의 삶’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었다. 그런 삶이 박탈된 것이다.

“그들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소설을 썼다”


소녀는 매일 밤마다 송장놀이를 한다고 상상한다. ‘오늘은 군인을 몇 명이나 받아야 하나.’ ‘나는 죽어서 땅속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군인과 자신의 몸에선 내장과 개구리 썩는 냄새가 났다. 위안소에서는 조선 여자를 ‘조센삐’라 불렀다. 주인공의 이름은 금자였지만 후유코라 불렸고 어느 날은 유키코가 되었다. 여자 중에서도 어리고 가난한 집안의 딸들이 끌려왔다. 이들은 군인들에게 덜 시달리기 위해, 맞아 죽지 않으려고, 더 먼 데 팔려가지 않으려고 일본 군인의 애인이 되거나 독한 중국술을 마시거나 아편에 취해갔다. 조센삐라는 걸 잊으려고 할 때마다 자신도 잊어버렸다. 소설 안에 극적인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현장의 참혹함에 집중한다. “나날이 극적이니까. 거기에 또 다른 극적 서사를 넣으면 오히려 너무 허구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작가는 성적인 묘사가 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 군인에 대한 감정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 속 위안부들은 군인을 증오하다가도 전투를 앞둔 그들에게 살아 돌아오라고 빌어준다. 살아 돌아온 그들이 또다시 저지를 일을 알면서도 반복되었다. “군인들도 고향을 떠나왔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갖고 있었다. 군인도 인간이니까 이들을 대하는 감정 역시 한 가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감정을 갖거나 아이를 낳기도 했고, 어떤 약속을 그 안에서 하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다룬 증언 기록들이 있다. 관련 연구 자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왜 문학인가. 김숨 작가는 그들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들이 위안소에서 겪은 경험뿐 아니라 살아 돌아온 이후 왜곡된 삶에 관심이 갔다. “소설가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들에게 시선을 주고 그에 대해 쓰는 사람인 것 같다. 의미를 찾자면 과거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선 여전히 소녀가 강간을 당하고 성노예로 팔리기도 한다. 김복동 할머니도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손녀뻘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훼손된 존엄성과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신다. 전쟁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위안부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딸, 손녀가 되어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내내 참혹한 이야기다. 쓰기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위안부의 경험을 가진 두 할머니를 만났을 때 받은 강렬한 느낌이 계속 쓰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한 명>을 쓸 때는 자료를 통해서만 접했다. <흐르는 편지>를 쓰며 할머니들을 만났고 힘든 감정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들이 갖고 계신 존엄한 면들이 있다. 그런 일을 안 겪은 분들 같았다. 품위가 있고 품도 넓었다. 길원옥 할머니는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고 김복동 할머니는 학력이 높은 분같이 느껴진달까, 지적인 부분들이 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복원력에 대해 느끼고 감탄하면서 치유되는 면이 있었다.”

할머니들에게는 위안소의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증언하는 데 집중하느라 잊고 있던 자신에 대해 말하길 바랐다. 그래서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가 무엇인지 묻자 길원옥 할머니는 밥 냄새라고 답했다. 그는 기억력이 흐릿해 방금 먹은 과일이 뭐였는지 대답을 못했다. 사과가 생각나지 않아 ‘빨간 거’라고 말하면서도 노래 가사는 다 외웠다. 1박2일 머물며 인터뷰를 하는 날도 있었다.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던 어느 날, 작가가 집에 가려고 하자 비몽사몽 중에도 가지 말라고 붙들었다. 자기 옆에 붙어 자라고. 그 장면이 많이 생각난다. 증언 소설을 쓰면서도 가장 슬펐던 장면이다. 할머니와 나눈 대화는 즐겁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작가에게 튀긴 닭과 과자를 사주었다.

2016년 출간된 <L의 운동화>는 이한열 열사가 신었던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위안부 소재의 소설도 그렇고 역사적 사건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김숨 작가는 둘의 연결점이 ‘복원’이라고 말한다. 복원에 관심이 있어 관련 소설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한 수업에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가 복원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운동화가 물질의 복원이라면, 위안부 이야기는 기억의 복원이다. 증언 활동 자체가 훼손된 존엄성과 삶을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스스로 역사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역사를 소설로 써달라는 제안이 오기도 하지만 다 거절했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거나, 쓰고 싶지 않은 소재였다.

차기작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 이야기

<흐르는 편지>는 김숨 작가의 열한 번째 장편 소설이다. 소설집과 두 증언 소설까지 합하면 20권을 냈다. 1997년 <대전일보>,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꾸준히 쓰는 삶이었다. 김 작가는 ‘쓰고 싶어서’ 쓰고 ‘쓰여야 쓴다’고 말했다. <한 명>을 쓰면서 강하게 느꼈다.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소설이 있는데 <한 명>이나 < L의 운동화>는 써졌다. 주로 오전 시간에 집중해서 쓴다. 기복이 없는 것 같지만 작가에게 슬럼프는 매일 오는 것. 마구 써내려가다가도 순간순간 막히는 경험을 한다. 주로 집에서 작업하는 그가 요즘 사는 동네는 서울 흑석동이다. 지형의 굴곡이 좀 심한 편이지만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다. 가끔 가까운 중앙대학교를 산책한다.

초창기 장편소설을 발표할 때 그에겐 그로테스크, 우울, 공포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여전히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공포는 기질적으로 잘 느낀다. 그런 성향이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어떤 장면을 보고 공포감을 느끼면 그 장면이 강렬하게 기억되고 그게 자기 안에서 편집, 재구성되어 소설 속 어떤 장면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김숨 작가는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규모 있는 문학상을 많이 받았다. 그중 2013년에 받은 현대문학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계속 이렇게 쓰면 되는구나 싶어 격려가 많이 되었다. 책을 많이 냈지만 낼 때마다 무섭다. 남들의 평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반응을 살피는 데 게으른 편이다. 소설을 낼 때마다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 있다. 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보일 때 드는 부끄러움이나 자책감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소설 쓰기는 그렇게 작가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해방시켜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필요할 땐 취재를 한다. 조선소 노동자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쓸 때는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3박4일 울산에 머물며 일정이 맞기를 기다렸다. 작품에 대해 ‘듣기 싫은 이야기’를 직설해주는 친구도 소설가의 삶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숨 작가의 차기작은 문예지 <악스트(Axt)>에 연재했던 <떠도는 땅>이다. 강제 이주를 당했던 고려인들 이야기를 다뤘다.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공들여 퇴고하려 한다. 이번엔 ‘소설가의 질문’이 어디에 가 닿았을까. 또다시 역사적 사건이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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