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명 중 3명이 남자다. 내가 진행하는 글쓰기 강좌의 성비다. 여대남소의 성비는 수년째 무너지지 않고 있다. 일회성 강연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거의 여탕 수준이다. 지난번 개강 때 넌지시 물었다. “이번에도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남자들은 다 어디 간 거죠?” 이에 60대 여성 한 분이 말하기를, 여기만이 아니라 어느 강좌를 가도 그렇단다. “수강생은 다 여자인데 강사는 또 거의 남자예요.”
영국도 상황이 비슷한가. 〈남자는 불편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총장으로 있는 런던 예술대학교에서는 시각예술을 공부하는 1만8000명의 학생 중 70%가 여성이다.” 저자는 이유를 분석한다. “남자아이들은 가정의 부양자로 길러질 뿐 아니라, 의사소통에도 서툴고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되기 때문에, 예술은 자신들에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193쪽)
자신의 감정에 무관심하도록 ‘조건화’됐다는 말을 내 식대로 풀어본다. 적극 소통이나 자기 의심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는 뜻 같다. 화장실부터 여행지까지 곳곳이 돌부리인 터라 여자는 자기감정과 행실을 점검하는 게 ‘생활화’됐다. 여성 학인들의 글만 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음식 소리 내서 먹지 마라, 다리 오므리고 앉아라, 밤늦게 다니지 마라, 쓸데없이 공부 많이 하지 마라, 애 잘 키우는 게 남는 거다 등등 몸의 소리부터 움직임, 마음 상태, 진로까지 통제를 당한다. 그렇게 성장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사 자기감정은 누르고 남의 기분을 살피며 셀프 처벌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의 저자 그레이슨 페리는 남자인데, 이성의 복장을 입는 ‘크로스드레서’다. 그는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도 남자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여성 전용 공간을 존중해서이기도 하지만 주된 이유는 남자 화장실에서는 줄 설 일이 거의 없어서란다. “공공장소에 여자 화장실 수가 충분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왜 그럴까? 건축가들이 거의 다 남자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기준’은 자연스레 남자가 되며, 이런 식으로 “남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자신들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반영한 세계를 건설했다”(60쪽)고 본다.
이것이 꼭 성별 권력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나는 여성이지만 이성애자로서 남자들이 남성성을 향유하듯 이성애자의 언어를 무심히 구사했다. 30대 총각에게 ‘여자친구 있어요?’라며 대상 성별을 지정해 물었다. 그건 상대가 성소수자일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제 그런 질문이 꼭 필요할 땐 ‘애인 있느냐’고 묻는다.
‘디폴트맨’ 자리의 탈환 아닌 제거를 위해
남성, 이성애자, 대졸자, 비장애인, 기혼 출산자 등 “디폴트맨”에게 세상은 수월하다. 여성보다 남성이,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화장실도 충분하다. “남성의 권력이 언어 자체에 깃들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43쪽)하므로 ‘말의 민감성’을 기르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래서 남자에게 남성성을 설명하려면, 비남성이 겪는 존재의 제약을 설명하려면, “물고기들을 상대로 물에 관해 이야기”(63쪽)하는 것처럼 애를 먹게 된다.
생존의 문제다. 글쓰기부터 타로점까지 배움의 자리에 여자가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언어가 절실하다는 증거다. 그 배움의 종착역은 ‘디폴트맨 자리’의 탈환보다는 제거가 됐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언제나 옳아야 하고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하는 데서 오는 심장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떨쳐내”고 “자기를 잘 드러내고 감정을 잘 인식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누리”는 복락을 누려야 하니까. 동시에 “여성과 소수 집단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인생 경험을 정책 결정에 반영”(45쪽)하려면 우선 ‘여탕의 언어’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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