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뉴스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조현철씨(27·가명)의 주변에서도 직장을 찾아 일본으로 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국내의 한 대기업 입사 시험에서 탈락한 지난해, 조씨는 해외 취업알선 회사를 통해 이력서를 넣었다. 구인공고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얼마 뒤, 조씨는 컨설팅 업체인 일본 M사의 면접 요청을 받았다. M사는 일본 내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중견 기업이다. 조씨에게 판매 업무를 제안했다. 고민 끝에 면접을 고사했다.

해외 취업알선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서류 전형 합격했던 M사에서 현재 통역 업무를 구하고 있으니 지원해달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였다. 전형이 진행되는 동안 웹사이트 ‘야후 재팬’에서 블랙 기업(악덕기업) 여부도 나름 알아봤다. 준비를 마친 지난해 10월, 조씨는 일본 도쿄 신주쿠로 향했다.

ⓒ시사IN 신선영일본 취업을 준비했던 조현철씨(가명)가 취업 관련 서류 목록이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업무가 시작됐지만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애초 약속했던 통역이 아닌 판매 업무가 맡겨졌다. M사는 한국인 사원들에게 면접도 다시 보게 했다. 한국인 사원들은 일본 내 인력파견 업체 U사와 재면접을 통해 U사 소속으로 가전제품 매장에 파견됐다. M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업체였다. ‘취업비자에 명시된 소속은 M사, 실제 소속은 U사, 근무지는 D사’인 셈이었다. 조씨의 동료들은 혹시나 업무 중 다쳤을 때 보상을 어디에서 받아야 할지도 듣지 못했다.

한 층에 여섯 명이 함께 사는 숙소는 회사가 구해줬다. 월 4만 엔(약 40만원)을 내야 했다. 세면대, 화장실, 샤워실이 하나씩밖에 없었다. 출퇴근 시간만 두 시간이 걸렸다. 오전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에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됐다. 조씨보다 먼저 입사했던 한국인 동료는 연차를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보름 후, 퇴사를 통보한 조씨에게 M사는 10만 엔(약 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조씨의 취업비자 발급을 위해 회사가 고용한 행정사(기업이나 비자 신청자의 의뢰를 받아 서류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에게 지급한 돈이라고 했다.

조씨는 한국인 동료와 상의 끝에 일본 노동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계약서에 없는 벌금 요구는 불법이라는 조씨의 지적에 회사 관계자는 “정말 벌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 해외 취업알선 회사는 올해부터 일본 M사 취업알선을 중지한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퇴사했지만 이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본 취업비자는 퇴직 후 3개월 동안 유효하다. 그 안에 새로 취업을 하지 않으면 비자 발급이 복잡해진다. 3개월간 취업박람회를 모두 쫓아다니며 스무 곳이 넘는 회사에 서류를 넣었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한국계 기업이 하청받은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취업비자 소지자는 퇴직 후 재취업 기간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다. 사정을 알고 있는 공사 현장에서는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해줬다. 조씨는 결국 지난 2월 한국에 돌아왔다.

ⓒEPA일본 내 한국인 노동자 수는 지난해 5만명을 돌파했다. 위는 일본의 한 가전제품 판매점.
이민호씨(26·가명) 역시 조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일본어를 전공한 이씨는 2학기 연속 전액 장학금을 받고, 2015년에는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취업을 고려했다. 마침 지도교수가 국내 해외 취업알선 회사의 CEO였다. 이씨는 공채 과정을 거쳐 일본 오사카의 한 면세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호텔리어를 꿈꾸던 이씨에게 지도교수가 추천한 일자리였다.

“취업 위한 과목 있어도 노동법 교육은 없어”

면세점 업무는 이씨의 기대와 달랐다. 면세점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주로 상대했다. 매니저 역시 한국인이었다. 출근 첫날, 두꺼운 상품 안내책자 한 권을 받았다. ‘내일까지 외워오라’는 지시였다. 어떤 건강식품이 몸에 어떻게 좋은지 한국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판매직 특성상 주말에 쉬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루 12시간 가까이 서서 손님을 응대했다. 일본 노동법은 주 40시간 이상의 근무를 금지하고 있다.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노사 합의가 있을 경우에만 연장 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씨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무에 비전이 없다고 판단한 이씨는 한 달여를 버티다 결국 퇴사했다.

조씨나 이씨처럼 일본 취업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경기 개선 효과와 인구 감소가 겹치며 일본은 실질적인 완전고용 상태가 되었다. 자국 대학 졸업생들에게 ‘우리 회사에 지원해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이 된 일본 기업들은 해외 인력에 눈을 돌렸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내 한국인 노동자 수는 지난해 5만명을 돌파했다. 일본으로 출국하는 구직자들은 대체로 ‘전공을 살리고 싶어서’ ‘한국보다 노동환경이 좋다고 들어서’ 일본 취업을 결정한다. 그러나 일본 현지에 지사를 둔 IT 업체 사장 서 아무개씨의 평가는 다르다. 서씨에 따르면 한국인 프로그래머들은 일본의 파견회사에 소속되어 프로젝트별로 다른 곳에 배치된다. 전공 관련 경력을 쌓을 수 없는 업무를 맡게 되는 경우도 잦다.

업무 중 문제가 발생할 때 구제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도 드물다. 조씨는 “만약 일본어가 미숙하거나 일본 자체가 낯선 사람이라면 나처럼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노동문제를 상담하는 나카무라 이치로 노무사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노동법에 대한 전반적 지식이 없는 상태로 입국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근로기준법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일본에 왔다면 말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부당함을 느낄 텐데, 한국의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한 과목은 개설하면서 노동법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고용노동부와 외교부는 지난 6월17일 2023년까지 일본 기업에 한국 청년 1만명의 취업을 지원하는 ‘한·일 이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지원하기 위한 케이무브(K-move) 사업의 연장선이다. 정부는 2013년부터 각 부처의 해외 진출 프로그램을 케이무브 사업으로 통합하고 해외 취업알선, 진출 희망자 멘토링, 구직자 홍보 등을 지원했다. 당시 노동부는 해외 취업자에게 현지 정착지원금을 제공하고 지급 기간 확대 등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의 평균 근속기간이나 업무 만족도에 대한 기본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케이무브 센터 관계자는 “해외 취업은 국내와 달리 고용시장이 유연하여 이직이 잦으며, 취업자의 연락 단절,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 부재 등의 이유로 전체 취업자에 대한 정확한 근속기간 파악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기자명 장용준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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