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방대생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우선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대생은 소수자다.” 지방대생의 삶을 연구한 〈복학왕의 사회학〉(오월의봄 펴냄)에서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지방대생을 소수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비판의 칼끝은 ‘들어주지 않는’ 사회만을 향하지 않는다. 알지 않으려는 의지, 적당주의 집단 습속, 가부장적 가족주의, 확장성 없는 사회자본과 상징 권력 없는 문화자본 등 지방대생을 둘러싼 답답하고 무기력한 공기에 짓눌리면서도 스스로 그 문화를 옹호하고 전승해나가는 지방대생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최 교수가 “상처 좀 받으라고 썼다”는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어떤 독자는 “지방대 졸업생으로서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되었다”라고 남겼고(‘예스24’ 서평), 어느 고등학생은 “솔직히 ‘지방대에 가면 안 되겠구나’ 생각부터 든다”라고 말했다(7월24일 북토크). “저자 자신은 교수라는 안전한 지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지방대생들한테 왜 너희는 서울 애들과 달리 꿈도 없고 경쟁도 안 하고 패배주의에만 젖어 있냐며 꼰대질하는 내용”이라고 혹평하는 독자도 있다(‘알라딘’ 서평).
 

ⓒ시사IN 조남진〈복학왕의 사회학〉을 쓴 최종렬 계명대 교수와 지방 청년 노주비(원주), 김태우(대구), 권화담 (전주), 엄창환(부산)씨 (왼쪽부터).

책 내용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갈리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복학왕의 사회학〉은 정부나 언론에 의해 일종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동정받거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루저의 상징으로 조롱받기만 하던 지방대생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내보낸 최초의 시도이다. 지방대 재학생 6명을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시사IN〉 제511호 ‘지방 청년도 다른 세계를 꿈꿔야’ 기사 참조)에 지방대 졸업생 17명, 지방대생 부모 6명의 이야기를 더했다. 졸업생의 경우 졸업 후 지역에 남은 사람, 서울로 간 사람, 서울로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을 나누어 살폈다.
 

〈복학왕의 사회학〉

〈복학왕의 사회학〉은 대구·경북 지방대생들의 이야기다. 연구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검증하는 ‘경험적 일반화’ 방식이 아닌 지방에 대한 일종의 ‘분석적 예시’를 추구하는 연구라고 저자는 밝혔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를 준거로 하여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의 삶을 이해·해석·분석·설명할 수 있다”라는 설명처럼, 이 텍스트는 전국 어느 지역 청년이라도 지금 현재 그곳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하나의 틀로 사용할 수 있다.  

〈시사IN〉은 대구, 부산, 원주, 전주에 살고 있거나 살았던 청년 네 명과 〈복학왕의 사회학〉을 쓴 최 교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극복해야 하지만 결국은 도착지로 설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적 장소’ 서울역에서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지난 7월25일 해 질 녘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청년 문제와 지방 문제, 그리고 그 둘이 합쳐져 만들어진 지방 청년과 지방대생 문제는 뒤집어 말하면 그것을 낳은 서울과 기성세대의 문제이기도 했다.

“지방에는 문화시설이 워낙 열악해서 여간한 노력이 아니면 객체화된 문화자본을 접할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술 마시고, 먹고, 게임할 수 있는 시설만 잔뜩 있다(〈복학왕의 사회학〉 283쪽).”

대구 출신 청년 김태우(37):서울에 직장을 잡은 뒤 가장 좋았던 점이 주말마다 가까운 미술관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에서는 큰마음 먹어야 미술관에 갈 수 있다. 주변에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미술관이 넘친다.

전주 청년 권화담(23):얼마 전 〈절망의 인문학〉(이매진, 2013)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나오더라. 서울과 지방은 중심과 주변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라고. 동감했다. 경기도에 사는 친구들조차 뭔가 문화생활을 하고 새로운 활동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하는데 왔다 갔다 대중교통도 불편하다고 한다. 당장 오늘도 나는 전주에서 여기 올 때 KTX 탈까, 무궁화호 탈까 고민했다. 교통비를 들여 서울에 와서 활동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 뒤 다시 전주로 내려가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늘 생각했다. ‘전주 정말 별로다. 전주 왜 이러지? 재밌는 사람들은 왜 전주에 없지? 난 왜 만날 왔다 갔다 해야 해?’ 비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안정적이고… 평범한 가정을 꾸밀 수 있고… 위험한 일을 안 하고…(같은 책 62쪽, 공무원을 이상적인 자아 이미지로 제출하는 지방대생 영택(가명)에게 ‘공무원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최종렬 교수:지방대생과 그 가족이 공무원에 부여하는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지방에서 공무원이 되면 독립하고 결혼해서 가족을 꾸려 살 수 있다. 지방대생 입장에서 대기업은 서류에서 다 떨어지지, 그나마 제일 공정한 시험이 공무원 시험이다. 사실 공무원 시험은 입시 경쟁에서 낙오한 지방대생들이 잘하는 종류의 경쟁이 아니다. 대개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는데 만약 10급, 11급 시험이 있으면 거기로 갈 거다. 서울에서 제약회사를 다니며 ‘을’로 살다가 작심하고 공부해 경찰공무원이 된 형식의 사례를 보라. 모든 문제가 다 풀렸다. 결혼하고, 집 사고, 부동산 투자하고…. 지역에서 유일하게 가족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공무원이다. 그래서 모두가 바라지만 막상 붙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
 

김태우:다들 공무원이 무조건 인생의 성공을 뜻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 번도 인생의 목표를 고민해볼 기회가 없었지 않나, 교육 자체가. 무조건 통과, 1등에만 접근했지 진짜 내 꿈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보니까…. 지방대생에게 공무원 시험 준비는 일종의 도피 같기도 하다.

부산 청년 엄창환(34):공무원 시험 준비가 도피처가 될 수 있나? 노량진만 봐도 치열하다. 올해 9급 공무원 4953명을 뽑는데 20만2978명이 지원했다. 공시족은 이 경쟁률을 알고서 시험장에 간다. 나는 이게 실패를 용납하지 않거나 계층 사다리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완벽한 성공을 위해 ‘몰빵’해서 경쟁하는 걸로 보인다. 기업의 불공정한 채용 구조와 불합리한 노동환경을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거나 혹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거나.

원주 청년 노주비(24):창업혁신센터, 이런 데 통해 창업하는 청년들 보면 처음에 너무 신기했다. 어떤 지역의 특성을 살린 디자인으로 의류를 만든다든가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고 ‘우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했는데 알고 보면 그 부모가 그 지역에 큰 의류 매장을 갖고 있는 식이다. 누군가는 사무실에서 어떤 사업을 하는데 알고 보면 그 건물이 다 친척이나 부모 건물이다. 아, 부모의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만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도전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런 자원을 갖지 못한 지역 청년들은 다른 건 떠올리지 못하고 공부만 해왔기 때문에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도 공부해서 붙는 공무원밖에 생각 못하는 거다.  

“부모님들이 여자아이니까 멀리 가는 걸 원하지 않으셨고, 대구·경북 안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 하셔서(같은 책 93쪽, 지방대 졸업생 진희가 A대학을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하며).”

노주비:저도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합격했는데 부모 집에서 너무 멀다고, 집 근처 있는 데 가라고 반대했다. 내가 미국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안에 왕복이 가능한데 왜 못 가게 하냐고 싸우다가 경제적 능력이 없으니 부모에게 졌다.

 

 

ⓒ시사IN 신선영2017년 11월23일 행정안전부 사회혁신추진단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개최한 ‘청년1번가’.

권화담:지방에 사는 여자들이 겪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지방에서 여학생이 휴학한다 하면 집에서 ‘미친X’ 소리 듣는다. 빨리 취업해서 돈 벌다가 빨리 결혼하고 애 낳아야 하는데 왜 휴학하냐고. 남학생들은 휴학하고 싶으면 그냥 한다. 전주에 있는 대학교에도 더 작은 소도시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많다. 남학생들은 전주에서 쉽게 자취하는데 여학생들은 한두 시간 걸려서 집에서 통학한다. 오빠나 남동생이 서울에 가야 하니까 누나나 여동생인 네가 생각 다시 해주는 게 어떻겠냐?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많고.

“각자도생으로 돌변한 서울과 달리 지방에서는 가국체제(家國體制)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국가가 만들어놓은 사회 안전망은 없지만 미약하나마 가족 안전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집! 그 문제적 집이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지방 청년들은 아직 생존주의자나 좀비로 전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지방의 빈곤이 가족 사회를 통해 일시적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서울처럼 생존 투쟁의 장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같은 책 382쪽).”

최종렬:지방 청년에게 부모가 사는 집은 (아직 가부장의 부당한 권위가 작동하는) 문제적인 집이지만 이게 어떤 면에서는 지역에서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 필요가 뭐 있냐는 부모 말도 일리가 있다. 여기 있으면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았을 텐데 왜 독립한답시고 밖에 나가서 고생하냐는 거다. 아직 일정 정도 부모 지원이 제공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온전한 해결책이 아니라 일시적인 미봉책이다. 부모가 앓아누우면, 혹은 부동산 자산이 증발하기 시작하면 부모들이 자기 먹고살기도 힘들어지는데 청년들까지 뒷바라지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문제적이라는 거다. 청년들이 빨리 가족 밖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가 공적인 책임을 져야 하고 청년 주거 독립을 위한 제반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노주비:주변을 보면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지방에도 비혼이라든가, 가정을 꾸리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에선 이미 해체됐고 지방도 점차 가부장적 핵가족의 해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복학왕의 사회학〉 배경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기존의 가족주의가 더 이상 불가능함에도 그걸 유지하려 하면서 누가 희생을 하고 고통받는지가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결국 집으로 회귀하는 세계에서는 지방대생이 인간으로 현상하기 어렵다. (중략) 이 집의 수명도 다해가고 있다. 얼마 안 있어 가부장과 가모장이 늙고 병들어 집 안에 드러누울 것이다.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데 과연 누가 돌볼 것인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방대생이 인간으로 현상할 수 있도록 사회의 모든 영역에 미학적 폴리스를 세워야 한다. 집 밖의 세계가 좋은 삶을 허락한다면 누구나 거리낌 없이 밖으로 나올 것이다(같은 책 389쪽).”

최종렬:지방정부가 앞으로 계속 돈을 쓸 거다. 지방이 소멸되고 청년들이 빠져나가니까.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된다. 청년 스스로의 문화적 역량이 필요하다. 말할 수 있는 능력. 이제까지는 경제적 언어, 가족주의 언어, 심리적인 언어로만 한정돼 있었다. 성공해야지, 아프지 말자, 우리 가족 행복하자,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등. 여기에서 벗어나 가치론적 질문을 통해 자기 삶을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삶, 좋은 사회가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지역사회, 대학이 그것을 위한 공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노주비:청년이 지방을 떠난다고 하면 일자리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설문 결과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강원도 지역 20~30대 비혼 남녀에게 왜 지역을 떠나고 싶은지 물어봤더니 첫 번째가 ‘문화 및 서비스 여가생활이 부족해서’이고 일자리는 두 번째였다. 여성은 특이하게 ‘지역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서’라는 답변 비율이 높았다. 부당함을 겪어도 말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인 것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라는 부모 권유를 뿌리치고 원주 지역에서 문화기획 일을 하고 있다. 기존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소모임, 축제 등을 만들도록 돕는다. 작년에는 세대 문화교류 사업으로 청년과 중년이 만나는 ‘딴짓하는 중년’이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지방이 살려면 이런 식의 세대 연대도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권화담: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지방 청년들이 한 지역에 머무르지 말고 많은 곳을 다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확실히 한 지방에만 있으면 비슷한 것만 보고 자란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사람, 비슷한 생각들. 지방이란 것도 범위가 넓지 않나. 광역시가 있고 소도시가 있고 시골도 있고. 이런 지역들 간의 교류가 많아야 한다. 지금 모든 지방들이 서울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인데, 그 다리들끼리 통하고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엄창환:서울로 가면 성공한다는 신화 같은 것, 이젠 통용되지 않는다. 청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어렴풋이 알고 있지 않나. 많은 지방 청년들이 이제 ‘나고 자란 데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데에서 살 수 있으면 거기 살고 싶다는 마음은 당연하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서울 중심 사고에서 지방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진단하다 보니 지역 청년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과 지방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지방 가운데에서도 광역, 더 들어가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각자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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