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희씨(38·활동명)의 본업은 베이시스트다. 성공한 케이팝 스타라면 기획사의 관리 아래 군 입대를 미룰 수도 있지만, 인디 뮤지션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안씨는 20대 초반 군대에 다녀왔다. 제대 후 밴드 투어를 다니면서 해외 뮤지션들은 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봤다. 한국처럼 군대로 인해 그동안의 삶과 ‘단절’되는 곳은 없었다. 투어 이후, 풀지 못한 숙제처럼 징병제에 대한 의문을 품고 다녔다.

ⓒ시사IN 조남진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2014년 안씨가 일본 도쿄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법률을 제·개정하면서 논란이 한창이었다. 안씨는 한인 유학생들이 만든 토론 모임에 참석했다가 이예다씨를 만나게 된다. 이씨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2013년 프랑스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아, 이런 방법이 있구나, 한국에서 전과자로 살아가야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이 방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해 한국에 돌아와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JPD)’을 꾸렸다. JPD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상담하고 지원한다. 매년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한다. 이 중 타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한국인은 7명뿐이다. 그중 3명이 JPD의 도움을 받았다. 준비를 철저히 해도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JPD를 찾은 병역거부자 중 한 사람은 영어와 용접 기술까지 배워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지만 결국 그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게 인터뷰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평화’와 관련된 질문에 유독 답변을 잘 못한다. “한국에는 평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다루는 교육이 없잖아요. 신념이 있어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거든요. 평화의 언어를 빼앗긴 상태라고 생각해요.”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 조항이 없는 병역법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 이후 난민이나 전과자가 되는 것 이외에 대체복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 2019년 12월31일까지 국회는 구체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마련해 병역법을 개정해야 한다. 징병제 폐지를 주장하는 안씨가 보기에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우리에겐 ‘전쟁 영웅’이라는 말만 있잖아요. ‘평화 영웅’이 나오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겁니다.”

기자명 강은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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