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술이 달린 화려한 관을 쓴 여성 주변으로, 반라의 사내들이 모여 앉는다.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이의 구령에 따라 흙탕물 색을 띤 음료가 준비된다. 마을 젊은이 중 가장 용모가 빼어난 사람이 여인에게서 이 음료가 든 잔을 건네받아 우렁찬 환영의 말과 함께 손님에게 건넨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사모아에서 이루어지는 아바(Ava) 의식이다. 이 의식은 경건함 그 자체다. 여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공동체에서도 가장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입성은 단출하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다. 뽕나무 껍질을 두드려 만든 천을 허리에 둘렀을 뿐이지만, 치장의 핵심은 몸 자체에 있다. 사실 허리를 가리는 천은 오히려 이들의 몸이 지닌 장엄함을 가리는 방해물이다.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부터 무릎 위까지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사모아의 전통 타투 ‘페아(Pe’a)’ 때문이다.

ⓒ전명진 제공사모아의 전통 타투 ‘페아’를 한 남성.

피부에 상처를 내고 색소를 들여 글씨나 문양을 새기는 문신(文身), 즉 타투는 기독교 및 유교 문화권에서 노예나 죄수의 상징으로 쓰인 오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타투는 종교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때론 주술적인 기원을 담아, 때론 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술되었다. 그 집단들 중 하나가 바로 뱃사람이다. 예측할 수 없는 바다 위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맞서, 설령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표식을 새겨 넣었던 것이다. 사모아가 타투의 종주국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모아는 하와이와 뉴질랜드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면, 넓디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미미하게 떠 있는 종이배처럼 느껴진다. 3500여 년 전, 여기에 터를 잡은 것은 카누를 타고 아시아를 출발한 한 떼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모아를 거점 삼아, 피지·통가·타히티를 비롯해 남태평양 각지의 섬으로 퍼져 나갔다. 나침반도 없던 시절, 별을 읽고 해수 온도의 차이를 느끼며 동물적 감각에 의존해 벌인 대정복사업이었다. 이런 사모아 사람들에게는 거센 바다와 맞설 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려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통의 허들을 넘는 행위를 통해 증명한 용기야말로, 수평선 밖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삶과 명예가 통째로 걸린 전투

오늘날도 사모아에는 명예를 위해 살을 찢는 고통을 견디는 사내들이 있다. 지난 6월 사모아의 수도 아피아를 찾았을 때, 마침 전통 타투 시술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타투는 사모아어의 ‘타(Ta:무엇인가를 때리는 모양)’와 ‘타우(Tau:결론을 내다, 결정짓다)’가 합쳐져 만들어진 ‘타타우(Tatau)’가 유럽에 전파되며 변형된 말이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 타투이스트는 무심한 표정으로 물감이 묻은 금속 빗을 망치로 때려 박고 있었고, 그 아래 누운 남자는 한 팔로 눈을 가린 채 온몸으로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둔 타투는 절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며, 그런 타투를 몸에 지닌 자를 가문의 수치로 여기는 것이 불문율인 사모아에서, 그 남자는 전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회적 삶과 명예가 통째로 걸린 전투를.

바야흐로 타투의 계절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염에 녹아내린 옷가지들이 사라진 자리에 타투가 있다. 고통을 감내하며 얻은, 가치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타투는 무죄다. 사모아의 뱃사람들이 그러했듯, 저마다의 타투를 지닌 채 인생의 바다로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기자명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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