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가 나와 첫 곡을 플레이하고는 기절할 뻔했다. 주인공을 소개한다. 이름은 카마시 워싱턴. 노래 제목은 ‘Fists of Fury’. 재즈 음악가이고 한국에서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이 곡 ‘Fists of Fury’를 포함한 그의 새 앨범 〈Heaven and Earth〉의 총 러닝타임은 144분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작 지향의 작품인 셈이다.
요즘 세상에 2시간24분을 고스란히 음악 듣기에 투자하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Fists of Fury’ 한 곡만 감상하면 된다. 이 곡 하나에 녹아 있는 세계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곡은 100% 창작이 아니다. 바로 리샤오룽(이소룡) 주연의 1972년 영화 〈Fist of Fury(‘정무문’)〉의 오프닝 트랙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사전 지식 없이 이걸 눈치 챌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카마시 워싱턴의 재해석은 파격을 넘어 파괴적이다. 원곡의 뼈대만을 취한 뒤 완전히 다른 세계를 창조해버렸다.
곡의 테마는 최근 미국 사회의 이슈 중 하나인 흑인의 자긍심으로 수렴된다. “희생자로 보내야 했던 시간은 끝났어/ 우리는 더 이상 정의를 구하지 않아/ 대신 응징할 거야”라는 선언적인 수사가 이를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빰빰빠바밤!”을 반복하며 역동적인 톤으로 연주되는 혼 섹션과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보컬의 조화를 주목하기 바란다. 여기가 곡의 구심점이다.
곡이 선연한 분노로 가득 차 있을 거라 짐작할 수도 있겠다. “난 내 손을 동료들을 돕기 위해 사용해/ 그러나 부당한 상처를 입게 되면/ 난 분노의 주먹을 쥘 거야”라는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카마시 워싱턴은 이 곡을 포함한 앨범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머무는 세상은 내 정신 속에 살아 있다. 이것이 〈Heaven and Earth〉를 만드는 영감이 되었다. Earth 파트는 내가 바깥에서 바라보는 세계를, Heaven 파트는 내 안에 존재하는 세계를 나타낸다.”
‘Fists of Fury’는 Earth 파트 수록곡이다. 그는 바깥에서 바라본다고 말했다. 관찰은 무분별한 에너지를 지긋이 억누르는 힘을 지녔다. 그는 적절한 통제가 발휘할 수 있는 미덕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음악가다. 그런 만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그의
시야는 넓고 시선의 가시거리는 길다.
이 곡만으로 부족하다면 2015년 리더작 〈The Epic〉의 수록곡 ‘The Rhythm Changes’를 들어보기 바란다. 이 두 곡이면 카마시 워싱턴의 세계를 파악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재즈 이론을 기초로 힙합, 알앤비까지
카마시 워싱턴은 재즈라는 과거에 기대어 있으면서도 재즈의 현재에 발을 딛고 재즈의 미래를 꿈꾼다. 재즈와 클래식 이론을 기초로 힙합, 알앤비 등 현대적 장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녹여낸다. 그가 재즈를 즐기지 않는 타 장르 팬들의 주목도 함께 이끌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바탕이다.
몇 년 전, 한 유명 재즈 뮤지션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재즈가 죽었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대답. “그럼 내가 죽은 사람이냐?” 누가 감히 재즈를 죽었다 말하나. 카마시 워싱턴이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 시대의 재즈 거장이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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