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건을 공개한다
  • 김동인 기자
  • 호수 567
  • 승인 2018.08.0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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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대외적으로 청와대·입법부·언론·재계·노동계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대내적으로는 법원행정처에 반발하는 이들에 대응하는 방침을 세웠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안 통과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시사IN> 제561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나머지 문건을 추가로 공개한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그리고 법원 내부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❶ 2015년 3월26일 작성된 ‘상고법원 관련 BH(청와대) 대응전략’이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안 통과를 위해서는 대통령을 설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상고법원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법원행정처는 민정수석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채널을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청와대 특보단을 설득하자고 주장한다.

❷ 법원행정처는 당시 청와대 특보단 성향을 분석했다. 각 인물의 주요 근황도 서술했다. 주호영 당시 청와대 정무특보에 대해서는 인근 지역구(대구 수성갑) 공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다.

❸ 윤상현 당시 청와대 정무특보에 관한 설명에는 유독 ‘풍문’이 많다. “기자들 사이에서 ‘오버한다’는 평가” “자기 과시욕 강해” “VIP(대통령)에게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소문” 이러한 ‘약점’을 파고들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전달하도록 설득하자는 전략이다.

❹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문건을 살펴보면 대법원이 특정 판결에 대해 각계각층과 여론 동향을 주시했다. 2013년 12월18일, 대법원은 일정 조건을 갖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직후 법원행정처는 청와대, 여당, 야당, 재계, 노동계, 인터넷 동향 등을 정리해 보고를 올린다. 이 같은 ‘주요 판결에 대한 외부 반응 보고’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재판,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에서도 이어진다.

❺ 2015년 3월12일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는 첫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다. 사실상 박근혜 청와대가 ‘사정정국’을 밀어붙였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시 국회에는 법원조직법을 비롯해 상고법원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황이었지만, 이 역시 뒷전으로 밀릴 처지였다. 상고법원안 통과가 최우선이었던 법원행정처는 정국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❻ 양승태 대법원이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검찰과 법무부의 득세다. 사정정국에서는 결국 검찰이 칼자루를 쥐고 이슈를 장악한다.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추후 검찰과 법무부가 실책을 저지를 수 있으며, 이 시기를 적절히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❼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내부 단속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15년 8월 <시사IN>은 차성안 판사로부터 상고법원 도입보다 1·2심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기고문을 받아 연재했다(제416~422호).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의 <시사IN> 기고에 대해 “차 판사의 열정을 <시사IN> 편집팀이 악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했다.

❽ 판사회의는 각 법원에서 열리는 일종의 ‘총회’다. 판사회의를 활성화하고, 판사회의에서 모인 판사들의 목소리를 법원 행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일종의 위협으로 여겼다. 판사회의를 없앨 수 없다면, 각 법원장이 판사회의를 주도해서 위협적인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자는 게 법원행정처의 아이디어였다. 판사회의 내 법원장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 연수를 희망하는 판사들을 이용하자는 제안도 덧붙인다.

❾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이른바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을 ‘문제 법관’으로 지목한다. 근무 태만을 막겠다며 ‘빅데이터’로 법관 근무 양태를 감시하자고 제안한다. 판결문을 작성하는 시간, 판결문 개수와 분량, 재판 투입 시간 등을 데이터화해서 개별 법관이 제대로 일하는지 어떤지를 체크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전방위 감시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❿ 데이터를 통한 근무 기록 감시 제도를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비공식적 정보수집’이라 일컬었다. 선별된 요주의 인물만 ‘들키지 않게 데이터로 감시한다’는 의미다. 애초에 이러한 감시 체계가 비상식적이라는 걸 법원행정처도 알고 있었다. 반발을 예상했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 유지”를 강조한다.

⓫ 양승태 대법원에게 법원 내에서 위협적인 존재는 국제인권법연구회였다. 이곳으로 몰리는 젊은 법관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법원행정처는 ‘법원,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법’ 연구회 신설을 제안한다. 구체적인 설립 플랜도 마련했다. 단순히 연구회 설립을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대중매체 속에서 법원이 좀 더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제안한다.

⓬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법관 사회에서 새 연구회의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영화사·방송사·연예기획사 방문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법원행정처가 주도하는 새 연구회가 초반에 안착할 수 있다는 논리다.

⓭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도 이 같은 기획안이 ‘무리수’라는 걸 어느 정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풍81’ ‘3S 정책’ 같은 우민화 정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는 걸 미리 예상한 대목이다. 개별 법관은 물론 문화계 전반을 가볍게 여기는 법원행정처의 인식이 드러나 있다.

⓮ 양승태 대법원의 내부 단속이 가장 철두철미했던 시기가 바로 2015년이다. 상고법원안 입법을 위해 청와대를 설득해야 하는 시점에 내부에서 조직적인 반발이 생길 경우 상고법원 도입 명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안에 반대하는 내부 인사를 추려내고, 이를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방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⓯ 2016년 4월 출범을 앞둔 사법행정위원회를 두고 일선 판사와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 사이에 갈등이 격화됐다.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판사회의 정례화를 주장하는 판사들을 중심으로 조직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 핵심 그룹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⓰ 이 문건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바라보는 판사의 이미지는 ‘소극적이며 단체 일에 나서지 않는다’에 가깝다. 남들 앞에 나서는 판사는 ‘사법행정에 대한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진 게 아니라, 특별한 ‘목적’과 ‘의도’가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⓱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사모’를 폐지하기 위해 보수 언론을 활용해 판사 개인을 매도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판사 개인을 위축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기획한 일종의 공작에 가깝다.

⓲ 판사들의 익명 기반 커뮤니티인 ‘이판사판’에 대한 방안을 담고 있다. 이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익명에 기반을 둔 판사들의 불평·불만이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깎아내릴 것이라 단언한다. 익명 카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법부에 타격이 될 것이라며, 조직적인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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