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를 밟자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567
  • 승인 2018.07.2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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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버스인 줄 알았다. 9인승이었다. 어린이 9명이 탔다. 운전기사도 인솔 교사도 살피지 못했다. 네 살 아이는 32℃ 더위 속에서 생명이 꺼져갔다. 동두천 어린이집 사고 뉴스를 보다가 성우제 편집위원의 원고가 떠올랐다. 지난 1월 토론토에 사는 성 편집위원이 캐나다 아동보호 시스템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캐나다에서는 어린이 보호에 앞서는 가치란 없다. 예를 들어 스쿨버스가 멈춤 표지판을 올리고 서 있으면 주변의 모든 자동차는 정지해야 한다. 실수로라도 움직였다가는 교통 위반 가운데서도 가장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제541호 아동 학대와의 질 수 없는 싸움 기사 참조).


2013년 청주 어린이집 사고가 있었다. 통학 차량에 세 살 난 세림이가 치여 숨졌다. 세림이 아빠는 청와대에 편지를 보냈다.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었다. 2015년 1월부터 13세 미만 어린이 통학 차량에 대한 승하차 확인을 의무화한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다. 캐나다 사례와 비슷한 조항도 신설되었다. ‘통학 버스가 정차하면 같은 차로나 옆 차로 운전자는 일시 정지해 안전을 확인한 후 서행해야 한다.’ 반대 방향에서 진행하는 차도 서행해야 한다. 통학 버스 앞지르기도 금지됐다. 세림이법 시행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이 조항을 잘 알지 못한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어린이집 통학 차량을 앞지르기하는 운전자를 적지 않게 보았다. 조항을 어겨도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캐나다의 엄중한 처벌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는 법보다 엄마들이 앞서간다. 소아 당뇨를 앓는 아이를 위해 해외 당뇨병 사이트를 뒤져 24시간 연속 혈당측정기를 찾아낸 ‘1형 당뇨 환우회’ 김미영 대표, 소아뇌전증을 앓는 아이 치료를 위해 해외 논문을 뒤져 CBD 오일을 찾아낸 황주연씨 사례가 잘 보여준다(제561호 ‘의료용 대마 합법화 길 열릴까’ 기사 참조). 하지만 한국의 두 엄마는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두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에도 엄마들은 ‘슬리핑 차일드 체크 제도’라는 대안을 찾아냈다.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2013년 세림이 아빠가 청와대에 보낸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이번 차량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 아빠는 노란색 통원 차량만 보면 떠난 아이가 떠오를 것이다. 그 죽음이 헛되지 않게 바꿔야 한다. 나부터 통원 차량을 보면 먼저 브레이크를 밟겠다. ‘세상 아이는 모두 내 아이’라는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바꾸고 실천하자. 변진경·임지영 기자의 ‘아이를 위한 나라, 무엇을 해야 하나’ 연재 기사가 이번 호로 끝난다. 이번 기사에도 밑줄 그으며 읽을 대목이 많다. ‘아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스웨덴 아동 옴부즈맨 제도가 유독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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