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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섬 우폴루 남단에 위치한 토 수아 오션 트렌치. 용암이 흘러나간 자리에 거대한 L자형 튜브가 생겨 천연 해수 풀장이 만들어졌다.

좀 색다른 여름휴가 여행지를 소개한다. 인도의 라다크, 남태평양의 사모아, 탄자니아의 초원과 잔지바르 섬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는 하다. 시간이 꽤 필요하고 비용이 제법 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이 아니라도 언젠가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색다른 여행가들이 이 색다른 여행지를 소개한다. 라다크를 안내하는 여행 작가 환타(〈시사IN〉 ‘소소한 아시아’ 필자)는 여행지를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가다. ‘귀로 떠나는 세계여행’을 표방한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의 진행자, 최고의 여행 입담꾼 탁재형 PD가 남태평양 사모아의 수평선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디스이즈아프리카’를 운영하는 젊은 여행가 박다애씨는 우리를 킬리만자로로 안내한다. 


3500여 년 전부터 세계지도에 편입되었다. 이곳은 인간이라는 모험심 강한 종(種)의 역사에서도, 새로이 등장한 영역이다. 그만큼 인간의 항해술이 발달할 시간이 필요했고, 한 민족의 모험심 총량이 민족 전체를 망망대해로 몰아넣을 만한 임계점을 넘겨야 했다. 익숙한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건 역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 끝에, 아시아를 뛰쳐나와 해류와 바람을 거슬러 항해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폴리네시아 사람들이다.  

사모아는 이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땅이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는 사모아를 남태평양 정복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로 지목한다. 아시아에서 파푸아뉴기니를 거쳐 사모아에 도착한 이들은 차츰차츰 폴리네시아 전역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그때 이야기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잘 드러나 있다. 이들은 해류의 온도와 별의 높이를 GPS 삼아 타히티에서 하와이, 뉴질랜드에서 이스터 섬까지를 자신들의 거주지로 만들었다. 사모아는 이렇듯 강인하고 긍지 높은 바닷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자신들이 ‘하와이키’라고 하는 섬에서 왔다고 믿었다. 사모아 언어에서 하바이키(Havaiki)는 서쪽을 뜻한다. 여기서 서쪽이라 함은, 지리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조상들의 땅’이라는 뜻이 더 강하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죽으면 영혼이 해가 지는 서쪽의 섬으로 가, 바다에서 뛰어올라 하늘로 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모아에서 가장 큰 섬의 이름은 사바이(Savai’i)다. 이 섬은 물론 가장 서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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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사바이 섬의 알로파아가 블로홀은 파도가 치면 2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사모아의 자연은 영혼의 고향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영적(靈的)인 감성으로 충만하다. 일단 섬 전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날짜변경선 바로 서쪽에 위치하기에, 그 어느 곳보다도 시간이 빠르다. 불과 160㎞ 동쪽에 위치한 미국령 사모아는 그런 이유로 이곳보다 시간대가 하루 늦다. 비행기로 이동하면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하루를 두 번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1년에 한 번뿐인 것이 아쉽다고? 여기에 당신이 찾던 장소가 있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격렬한 지각운동인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이 대부분이어서, 낯설기 그지없는 풍광을 자아낸다. 개중에는 한 번 봐서는 결코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한 것들도 많다. 동쪽 섬 우폴루의 남단에 위치한 ‘토 수아 오션 트렌치(To Sua Ocean Trench)’가 그런 곳이다. 주변보다 흐르는 속도가 빨랐던 용암이 흘러나간 자리에, 거대한 L자형 튜브가 만들어진 이곳은 천연 해수 풀로 유명하다. 하늘에서 보면 깊이 50m 정도의 구멍 밑바닥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형국이다. 아직도 지하로는 바다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 떠 있으면 물살의 오르내림이 느껴진다. 올려다본 새파란 남국의 하늘은, 주변 시야가 동그랗게 잘려 나가 더욱 아늑하고 오붓하다. 연인과 함께라면 하늘 아래 둘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서쪽 섬 사바이에 존재하는 알로파아가 블로홀(Alofaaga Blowholes) 역시 화산활동이 빚어낸 걸작이다. 파도가 해안절벽을 때리면, 그 압력에 의해 바위 구멍에서 20m 높이의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화산지형에서 만날 수 있는 간헐천과는 또 다른 박력을 느낄 수 있다. 매번 다른 높이의 물기둥을 뿜어 올리기에, 어느 파도에 최고의 풍경을 보게 될지 기다리는 맛도 쏠쏠하다. 

애니메이션 〈모아나〉로 폴리네시아 문화에 대해 예습을 하고 간 여행자라면, 사모아 컬처럴 빌리지를 꼭 방문해보길 권한다.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식생활과 전통 공예, 노래와 춤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300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유럽인들과 동일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아바(Ava)’라고 불리는 의식은 부족 지도자들의 토의를 거쳐 외부인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많이 마시면 취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카바 나무뿌리 즙을 돌려 마시며, 마을 사람들과 방문자들은 적이 아님을 확인한다. 환대의 음식은 불에 달군 돌 위에 각종 재료를 놓고, 코코넛 잎으로 덮어 조리하는 우무(Umu)다. 우무는 완성하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코코넛밀크로 양념을 한 바닷가재 향을 완벽히 보존하는 데 이것보다 더 적합한 조리 방법은 없다. 빵나무 열매와 얌을 곁들여 한 끼 든든히 먹고 나면, 바다를 정복했던 사모아 사람들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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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의 전통 문신을 한 남성들이 불에 달군 돌을 이용해 전통 요리 우무를 만드는 모습.


컬처럴 빌리지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통 타투(문신)다. 타투라는 말 자체가 사모아 말 타타우(Tatau)를 어원으로 삼는다. 말하자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패션 타투의 종주국인 셈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작은 타투 하나쯤 기념으로 새기고 가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은 사절이다. 텅스텐 빗(과거에는 멧돼지 어금니를 썼다고 한다)에 잉크를 묻혀, 작은 망치로 일일이 때려가며 새기는 사모아 전통 타투는 일생일대의 고통과 싸워 이긴 한 인간의 흔적이다. 시술받은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모든 타투를 완성한 사람은 시련과 도전을 이겨낸 용사로 대접받는 반면,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은 가문의 수치로 취급 받는다고 한다. 

뉴질랜드와 미국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바람에 결코 싼 편이라 할 수 없는 남태평양의 물가 사정을 감안할 때, 200달러 정도면 최고급 리조트를 이용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 역시 사모아의 매력이다. 밤마다 해변에서 펼쳐지는 건장한 사모아 청년들의 ‘파이어 댄스’를 지켜보다 보면, 3500여 년 전 바다를 건너와 천국을 발견한 사람들의 안도감과 환희가 고요하게 가슴속을 채울 것이다.

기자명 탁재형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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