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미국 뉴욕 당구공협회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1만 달러 현상금을 내걸었다. 당구공의 재료인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발명하는 이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남획으로 코끼리 수가 줄고 피아노 건반이나 고급 장식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아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져서였다. 여기에 아마추어 발명가인 존 웨슬리 하이엇이 도전했다. 그는 몇 년간 고심한 끝에 천연 유기화합물인 셀룰로오스와 질산과 황산을 섞어 만든 니트로셀룰로오스에 장뇌(녹나무에서 추출한 고형 물질)를 혼합하면 당구공을 만들 만큼 단단한 물체를 합성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플라스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이 물질에 셀룰로이드란 이름을 붙이고 1869년 특허를 받았다.

셀룰로이드가 간혹 폭발을 일으키는 등 당구공 재질로는 결함이 많아 하이엇은 상금을 일부밖에 받지 못했지만, 이 물질이 안경테, 틀니, 주사위 등에 널리 쓰이면서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플라스틱이란 물건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사람들은 짐작도 못했다.

혁명은 20세기 초반에 일어났다. 과학자들은 석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거저나 다름없는 에틸렌 가스로부터 모든 종류의 새로운 중합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미 자연에 존재하던 중합체만을 이용하던 플라스틱 생산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원하면 무엇이든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었다. 1955년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에는 ‘쓰고 버리는 생활용품’이란 제목 아래 접시, 포크, 숟가락 따위를 집어던지는 가족의 사진이 실렸다.

ⓒ한성원 그림

인간의 삶을 뒤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이 다 그렇듯 처음에는 플라스틱의 좋은 면만 보였다. 플라스틱(나일론)으로 만든 낙하산은 연합군 공수부대가 유럽 본토에 상륙해 나치 독일을 제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구를 귀족 놀음에서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 게임으로 바꿨듯이 비행기 여행 역시 대중화하는 마술을 부렸다. 비행기 중량을 줄이고 제작비를 떨어뜨렸으며 연료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덕분이다. 식품을 공기 같은 가벼움과 점착성으로 감싸 신선도를 높였다. 에어백, 인큐베이터, 헬멧, 그리고 인공심장까지 모두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물건이다.

하지만 손쉬운 포장재로 사용되면서 플라스틱은 타고난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0% 이상의 플라스틱 제품이 단 한 번만 쓰이고 버려지는 운명에 처했다. 신문지와 종이봉투를 밀어낸 비닐봉지가 일하는 평균 시간은 고작 15분이다. 커피 전문점이나 던킨 도넛, 피자헛 등에 수북이 쌓여 있는 빨대나 젓개야말로 플라스틱 제품 가운데 단연 신흥 강자라고 할 수 있다. 두 번도 사용하기 힘들 이 두 제품의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전체 플라스틱 쓰레기의 7.5%를 차지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플라스틱 생산량의 증대는 눈부시다. 1950년 230만t에서 1993년 1억6200만t, 2015년 4억4800만t으로 늘어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라스틱 병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진 코카콜라 회사 한 곳에서만 지난해 1억2800만t을 생산했다. 코카콜라 사는 내내 함구해오다 지난해 처음으로 숫자를 밝혔다. 코카콜라 병뚜껑은 유비쿼터스,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나 있다. 영국의 사진작가 맨디 바커가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에게 자국 해안에서 코카콜라 병뚜껑을 주워서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순식간에 3000개가 모였을 정도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해변에서 심심치 않게 아주 먼 나라에서 온 듯한 쓰레기를 발견하고 나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과학자들조차 도대체 그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부분의 비닐 중합체가 화학반응이 활발하지 않은 비활성 물질이어서 생태계를 교란할 리 없다고 믿었다.

바다 쓰레기 연구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영국 플리머스 대학의 리처드 톰슨은 1993년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 삿갓 조류를 연구하는 박사 과정에 있었다. 그는 해안가 청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가 모래사장 파도 라인을 따라 늘어선 이물질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못했다. 화학 감식을 의뢰하고 나서야 플라스틱 조각이란 걸 알았다. 그는 대개 0.508㎝ 안팎의 이 작은 조각에 마이크로 플라스틱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붙였다. 그제야 과학자들은 바다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지난해 가을 리처드 톰슨은 대학원생 두 명과 함께 플라스틱을 잘게 쪼개는 것은 햇빛과 염분, 그리고 파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럽 바닷가에 흔한 작은 새우 모양의 갑각류는 비닐봉지 하나를 170만 개에 이르는 마이크로 플라스틱으로 분해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생물은 비닐을 빠르게 씹어 조각낸 뒤 주식인 점액질의 미생물이 이 마이크로 플라스틱을 코팅하면 빠르게 삼켰다가 미생물만 빨아먹고 뱉어버렸다.

마이크로 플라스틱은 바다 어디서나 발견된다. 심해의 침전물에서부터 극지의 유빙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바다에 유입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류를 따라 돌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하치장을 만든다.

프랑스 3배 넓이의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

세계에서 쓰레기를 많이 운반하기로 이름 높은 5대 해류 중 하나인 북태평양 해류가 지나가는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GPGP)’이 있다. 이곳에는 7만9000t, 1조8000억 조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엉켜 떠 있다. 프랑스 3배 넓이의 이 거대한 섬은 중앙으로 갈수록 배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쓰레기 밀도가 높아진다. 이 쓰레기들은 해류를 따라 서서히 이동하면서 잘게 쪼개져 일부는 심해로 가라앉고, 일부는 극지까지 이동한다. 북태평양 해류가 지나는 하와이 빅아일랜드 섬의 해변 모래 가운데 15%가 플라스틱 조각이다. 하와이의 카밀로포인트 비치는 쓰레기의 국적이 다양하기로 이름이 높다.

지난해 4월, 8개국 11명으로 구성된 북극해 연구팀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년에 3000억 조각의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극지로 유입된다. 심해에는 더욱 많은 양이 쌓여 있다. 고래에서부터 대구, 정어리, 작은 갑각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극지 생물의 내장에서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연구팀은 지금 당장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수십 년간 계속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극지로 유입되리라고 내다봤다.

마이크로 플라스틱은 바다 생물에, 궁극적으로는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과학자들은 114개 해양 생물종에서 플라스틱을 관찰했으며 그 절반 이상이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 우리가 즐겨 먹는 조개류나 생선 가운데 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하는 종은 의외로 많다. 그 경우 식욕을 떨어뜨리고 번식률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는 꽤 나와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아직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물고기 숫자를 줄이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좋은 소식은 또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이크로 플라스틱은 바다 생물의 내장에서 근육조직으로는 이동하지 못한다. 사람이 내장까지 한꺼번에 삼키지 않는 한 플라스틱을 먹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수로 넘겼다고 해도 세포조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배설될 것이다.

아직 플라스틱 쓰레기가 직접 인간을 위협한다는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과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이 플라스틱 조각은 결국 나노 단위(10억 분의 1m)로 쪼개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플라스틱은 바다 생물의 소화기관에서 세포로, 다른 조직으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 당연히 인간의 몸에도 축적될 것이다. 마이크로 단위에서는 비활성이었지만 나노 수준에서는 어떤 심술을 부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리처드 톰슨에 따르면 나노 플라스틱은 우리의 분석 능력 밖에 있으며, 그것은 끔찍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각국이 지금처럼 플라스틱 쓰레기를 방치하면 2050년 바다 쓰레기 총량은 바다 생물 전체 중량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한다. 수세기 안에 결국 바닷물은 플라스틱 수프로 변하고 말리라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UNEP)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이를 ‘오션 아마겟돈’이라고 부르며 경고했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사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기후변화보다는 덜 난해하다. 적어도 인간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우기는 세력은 없다. 무엇보다도 세계 전체의 에너지 시스템까지 흔들어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좌우익과 그보다 까다로운 왕실의 단합까지 이루어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우파 신문인 〈데일리메일〉, 좌파 신문인 〈가디언〉, 근엄한 왕실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고 한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싼 물건을 만들어 함부로 내다 버리는, 산업화 시대에 몸에 밴 못된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국가·기업·개인이 플라스틱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쌓여 있는 쓰레기를 함께 치워야 길이 보일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일조차 해낼 수 없다면 우리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란 어렵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기후변화라는 막장 속의 카나리아다.

참고한 활자:〈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김영사),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코노미스트〉 〈워싱턴포스트〉

기자명 문정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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