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은 남성의 50%라고 생각한다.” 서지현 검사가 부임 첫날 부장검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서 검사는 지난 1월29일 검찰 조직에서 여성 검사로 살아온 내용을 검찰 내부 전산망 ‘이프로스’에 올렸다. 그리고 같은 날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안태근 전 검사장의 8년 전 성추행과 그에 따른 인사 불이익을 알렸다. 서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은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그날 이후 본격적인 ‘미투’ 국면이 펼쳐졌다.

서 검사 폭로 이후 검찰은 뒤늦게 수사에 나섰다. 조희진 당시 검사장을 단장으로 한 ‘성추행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조사단(이하 검찰 조사단)’을 꾸렸다. 법무부는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위원장으로 위촉한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이하 법무부 대책위)’를 출범시켰다.

‘셀프 조사’라는 한계를 안고 시작한 검찰 조사단을 두고 당장 내부에서 반발이 나왔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는 조희진 검사장이 단장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과거부터 안태근 성추행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다고 임 검사는 비판했다.

ⓒ연합뉴스안태근 전 검사장이 5월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검찰 조사단은 서 검사의 폭로 77일 만에야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다. 결국 4월25일 안 전 검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7월12일 현재 안태근 사건은 2차 공판까지 진행되었다. 재판에 나온 안 전 검사장 쪽은 “만취 상태라 강제추행을 한다는 의식도 없었고 따라서 인사 불이익을 줄 동기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단은 강제추행 혐의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소속 김 아무개 부장검사를 비롯해 전·현직 검사 4명과 검찰 수사관 3명을 기소한 뒤 활동을 끝냈다.

‘법무부 장관 직속 성평등위원회 만든다’

법무부 대책위는 조직 점검과 제도 개혁에 주력했다. 먼저 법무부 본부와 산하기관, 검찰청에 근무하는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성희롱·성범죄 피해 경험을 설문조사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1.6%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신체 접촉으로만 좁혀도 피해 경험 비율은 22.1%에 달했다. “넌 남자 검사의 0.5야”를 비롯해 “너는 0.7이야” “너는 0.3이야” 같은 말을 들었다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서지현 검사의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법무부 대책위는 결국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와 소수의 수뇌부가 인사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인권침해와 성폭력이 더 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대책위는 구체적으로는 법무부 장관 직속으로 성평등위원회를 만들고, 법무부 내 성평등 정책관을 둬 관련 업무를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인사와 관련해서도 ‘여성 검사는 여성·아동·성폭력 담당’이라는 고정관념으로 업무를 배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녀 모두에게 균등한 순환 보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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