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공장 정문을 서성이다 돌아왔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경찰 폴리스 라인 너머는 접근 불가. 무기력한 취재의 반복이었다. 이른 아침 경찰을 피해 공장 안으로 잠입했다. 누군가의 아들, 아버지, 남편을 만났다. 그들에게 공장은 삶의 버팀목이었다. 나는 취재를 끝내고 빠져나왔다. 당시 〈노동과 세계〉 사진기자는 그들과 함께 남았다.
2009년 8월5일은 더 무기력했다. 경찰 특공대가 진입한 날이다. 경찰은 이날 기자들을 더 멀찌감치 통제했다. 다목적발사기·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로 무장한 특공대의 진압 과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목격자가 있었다. 옥쇄를 함께 다짐한 사진기자는 아비규환 현장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명익 기자다. 진압 작전 다음 날 노동자들은 회사와 무급 휴직 1년 등에 합의한 뒤 파업을 풀었다. 지도부는 구치소로 향했다. ‘단순 가담자’는 경찰 버스에 태워진 뒤 평택역 앞에서 풀려났다. 그날 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77일 만에 식구들을 만난 ‘무뚝뚝한’ 아빠들의 얼굴에 눈물과 빗물이 흘러내렸다.
그땐 몰랐다. 그들이 또다시 피눈물을 흘리게 될 줄을. 1명, 9명, 13명, 25명… 죽음의 행렬, 매번 기사를 써야 했다. ‘번째 죽음’이라는 문구를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었다. 노동자들의 외침대로 ‘해고는 살인’이었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도 않을 것 같았다. 구속, 해고, 손배, 가압류… 무기력했다. 그런 나를 〈시사IN〉 독자였던 배춘환씨가, 후배들이 깨우쳤다. 2014년 아이의 태권도 학원비가 담긴 4만7000원과 손편지가 노란봉투 물결을 일으켰다. 후배들은 내게 대들듯이 따졌다. “사람이 죽지 않아도 노동 기사를 쓸 수 있잖아요.” 그래, 원 없이 취재해보자.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사례를 찾았다.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법원 취재에 나선 것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변명 거리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른 번째 죽음을 막지 못했다. “선배, 찾았어요.” 이명익 기자가 2009년 진압 당시 사진에서 고 김주중씨를 찾아냈다. 이 기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파업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문 앞 분향소를 찾았다. 보수 단체가 차린 천막과 김씨 분향소 사이에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었다. 김씨는 이곳에서도 편치 않아 보였다. 그에게 묵상을 하며 두 가지를 바랐다. ‘더 이상 죽지 마시라.’ 간곡한 부탁이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나 자신을 향한 질책이었다. 이 무기력한 추모 칼럼이 제발 마지막이기를 기원한다. 고 김주중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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