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대회 최대 이변을 일으켰다. 6월27일(현지 시각)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앞선 두 경기를 내리 패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3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반면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팀 독일은 F조 꼴찌로 대회를 마쳤다. 독일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80년 만의 일이다.

독일과 한국의 전력 차이는 FIFA 랭킹 1위와 57위라는 수치 이상이다. 선수단 이름값부터 차원이 다르다. ‘2014 월드컵 올스타’로 선정된 토니 크로스, 마츠 훔멜스, 마누엘 노이어가 대한민국전에 선발 출전했다. 요아힘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은 팀의 에이스인 토마스 뮐러를 벤치에 두는 여유까지 보였다. 비록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0-1 패배를 당했으나, 한국전에서만은 축구 팬 모두가 독일의 일방적 승리를 점쳤다. 도박사들이 매긴 한국 승리 확률은 5%가량이었다.

ⓒ연합뉴스6월27일(현지 시각)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 리그 3차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 중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국 팀이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 역시 이변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웨덴과 멕시코에 각각 0-1, 1-2로 패했다. 경기 내용도 문제가 많았다. 공을 점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비 조직력도 수준 이하였다. 두 경기 모두 페널티킥을 내줘 실점했다. 스웨덴전에서는 유효 슈팅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멕시코전에서는 후반 막판 손흥민이 중거리 슛으로 골을 넣었으나 전세는 이미 기운 뒤였다. 경기를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이 라커룸으로 찾아갔을 때 눈물을 흘리던 손흥민의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마주한 독일 팀에 한국 대표팀은 수비 일변도로 나섰다. 독일의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를 상대로 맞불 놓을 마음은 전혀 없는 듯했다. 최소 8명, 많으면 10명이 하프라인 아래에서 수비하며 역습 한 방만 노렸다. 독일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했다. 스트라이커들이 몇 차례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골대 안으로 들어가던 공은 골키퍼 조현우가 선방했다. 그사이 전·후반 90분이 어영부영 지났다.

득점은 추가 시간에 나왔다. 추가 시간 1분, 손흥민이 찬 코너킥이 김영권의 발 앞에 떨어졌고, 슛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부심은 오프사이드라고 선언했으나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비디오 판독 결과 득점이 인정됐다. 급해진 독일은 노이어 골키퍼까지 하프라인을 넘어 총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노이어가 공을 빼앗기며 최전방 손흥민이 공을 받았고, 텅 빈 골대로 추가 골을 넣었다. 추가 시간 6분이었다.

기적적인 승리였지만 한국은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동시에 진행된 경기에서 멕시코를 3-0으로 잡은 스웨덴이 조 1위로 올라갔다. 이 경기 결과가 반대였다면 한국은 월드컵 사상 최초로 2패한 뒤 16강에 진출한 팀이 될 수도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손흥민·김영권 등 선수들은 분루를 쏟았다.

한국 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거둔 결과가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002년 이후 눈이 높아진 팬들에게 1승2패는 성에 차지 않는 성적이다. 신태용 감독의 전술도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다. 손흥민·기성용 등 유명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도 2014년보다 퇴보한 경기 내용을 보였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사력을 다한 대표팀은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대회는 ‘독일을 이긴 월드컵’으로 기억될 듯하다.

ⓒXinhua예상치 못한 승리에 선수와 국민 모두가 환호했다.
ⓒAFP PHOTO독일 팀의 강슛을 여러 차례 막아낸 조현우 선수는 ‘멕시코의 신’으로 강림했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졌다.
ⓒAP Photo예상치 못한 승리에 선수와 국민 모두가 환호했다.
ⓒReuter스웨덴에 0-3으로 졌지만 한국 팀의 선전 덕분에 F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 멕시코도 축제 분위기였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거리 응원에 참여한 현지 시민들이 한국 어린이를 목말 태운 채 기뻐하고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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