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부터 국가와 지방정부가 나서 아동 사망 사건을 조사해온 영국과 달리, 한국은 아이가 학대받다 죽어도 아무런 공식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경찰과 검찰이 가해자를 수사하고 언론을 통해 주변 정황이 보도되지만 그 ‘실패’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공식 절차는 사실상 전무하다.
그나마 기록된 보고서 하나가 2014년 초 발간된 ‘이서현 보고서’이다. 울산시 울주군에 살던 여덟 살 이서현양은 2013년 10월 친구들이 소풍을 가던 시각 새엄마에게 맞아 숨졌다. 수차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사례가 접수되었고 부모의 폭행 사실을 인지한 주변 사람도 많았지만 이양은 결국 죽은 채 발견됐다. 그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고 개선 과제를 제안한 이서현 보고서는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로 불린다.
그러나 이서현 보고서를 작성한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는 정부기관이 아니다. 국회의원과 NGO, 교수 등이 자발적으로 위원회를 조직해 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단 위원장을 맡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 관련 NGO 관계자들이 찾아와 ‘이대로 지나가면 안 된다’라며 도움을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남 의원은 2014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고 여러 차례 아동복지법 개정을 주도하는 등 아동보호 입법 활동에 적극적이다. ‘표 안 되는’ 취약 아동 보호에 꾸준히 관심 갖는 남인순 의원을 만났다.
‘이서현 보고서’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이서현양 사건도 하나의 사건으로만 지나가고 마는 걸 보면서 제대로 된 국가라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굿네이버스, 초록우산,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 NGO 관계자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진상조사를 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밝혀서 국가가 종합계획을 세우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도움을 요청했다.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싶어도 행정기관 자료 요청 등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국회에서 여러 현안을 다루다 보면 하나의 이슈에 매달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건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건을 들여다보니 무엇이 문제였나?
조기 발견과 신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양 가족이 여러 차례 이사하면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간 정보 연계가 잘 되지 않았다. 학대의 징후를 발견했던 신고 의무자들의 신고 의무 인식도 낮았고 관련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보고서는 어떻게 활용됐나?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실까지 찾아가서 보고서 초안을 직접 전달했다. 2014년 2월28일 발표된 아동학대 예방 종합대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큰 틀의 아동보호 업무를 지방자치단체 사무에서 국가 사무로 전환시켰고, 신고 의무자에 대한 교육 강화 등을 이끌어냈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 인력도 다소 증원됐다.
정부 대책의 아쉬운 점은?
2014년 대책을 발표하고 2016년에 보완 대책도 나왔지만,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제일 중요한, 예산 계획을 수반한 내용이 없었다. 이번 정부 들어 3월8일 발표된 아동학대 방지 보완대책은 취약·위기 가정 발견과 부모 교육 강화 등 예방 차원에 초점을 맞췄다. 아동보호 업무의 공공성 강화와 인프라 확장도 약속했는데 구체성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민간 위탁기관의 상담원들이 학대 신고 접수, 출동, 초기 조사와 상담, 교육, 사후 지원을 모두 감당하는 데에 애로사항이 많다. 신고와 초기 조치는 지자체의 아동 전담 공무원 등 공공기관이 전담하고 사후 지원은 위탁 NGO가 맡는 방식으로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
여전히 예산 확보 방안이 없다.
아동보호 예산이 지금처럼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만 나오면 안 된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도 지금 줄어들고 있다. 예산이 있어야 정책을 짤 수 있다. 아동보호 업무 재원을 일반회계로 가져와야 한다. 예산을 쥐고 있는 법무부·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관심도 없고 예산이 부족하다는 인식도 없다. 지금 아동학대 관련 정부 예산은 254억3200만원이다. 여기서 적어도 2배는 늘어야 한다. 60여 곳에 불과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도 100곳은 돼야 한다. 아동학대 인식 개선을 위한 국민 홍보도 절실하다. 양육 기술 부족에 따른 아동학대 사례가 많다. 지역 곳곳에 무료로 부모 교육, 부모 상담을 할 수 있는 센터도 필요하다.
올해 초부터 위험 가정의 아동을 발견하기 위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가동했지만 관련 인력 충원이 없으면 과부하만 걸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지난해 시범사업으로 66개 시군구에서 위기 아동 1만300여 명을 예측했다. 그 가운데 620명에게 교육·의료가 지원됐고 학대 징후가 발견된 아동 6명의 가정에 대해 조사가 의뢰됐다고 들었다. 시스템이 잘 가동되면 사각지대 아동을 발견해냄으로써 아동학대가 예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업무를 전담할 사회복지 공무원, 특히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충분한 증원이 필수적이다.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에 대해 국가가 한시적으로 3년만 지원하고 그 이후엔 지자체가 다 알아서 하기로 돼 있는데 적어도 아동보호 전담 공무원에 대해서는 국가가 계속 예산을 지원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자체에서 그 분야 인력부터 줄이기 십상이다.
아동보호 업무를 맡은 사람들의 처우가 너무 낮다.
보건복지부부터 그렇다. 아동보호 분야는 일만 많고 알아주지도 않아 기피 대상이다. 정부 중앙부처에서부터 아동보호 업무 담당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든지 승진 기회를 주든지 우대해줘야 한다. 격무에 시달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인건비는 연간 2700만원 수준이다. 이 분야 종사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국가 리더가 그들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권에 있으면서 너무나 크게 느끼는 것이, 아동은 유권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들 사건이 터지면 말만 하지 실제로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저출산 국가 어쩌고 하는데 아동 양육의 질적 문제를 풀지 않고 어떻게 무조건 낳아서 키우라고만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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