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주말만 기다린다. 주말에만 게임을 허락했다. 오로지 게임을 하기 위해 수학 숙제를 하고, 게임을 하기 위해 피아노 숙제를 한다. 게임 배경음악까지 흥얼거릴 정도다. 이 세상 모든 게임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노래를 흥얼거렸다. 처음 듣는 노래였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아이쿤이라고?” “아이콘!” 아들은 숙제를 하며 ‘사랑을 했다’. 야구를 할 때도 ‘사랑을 했다’. 체육 시간에 떼창을 한다고 자랑도 했다. 우리 아이뿐 아니었다. 주변에서 ‘간증’이 쏟아졌다. 유치원생까지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고 했다.

도대체 왜? 기사부터 찾아보았다. ‘후크송이 앞쪽에 배치됐다’ ‘노랫말이 따라 부르기 편하다’. 그런 노래가 한두 개인가.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아들을 취재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학 온 어떤 친구가 처음 부르면서 다 불렀어.” 〈강남스타일〉처럼 유튜브에서 팡 터져 히트한 게 아니라 구전이라고? 그랬다. 21세기 서동요였다. 구전으로 퍼져 호기심 때문에 유튜브를 다시 찾아본 것 같았다. 유튜브에는 초등학생 제작 뮤직 비디오, 운동회 군무, 소풍 가는 유치원생들의 떼창 동영상까지 다양하게 올라왔다. 아이돌 그룹 아이콘(iKON)이 ‘초통령’이 된 건 ‘관계’ 때문이다. 아들 말대로 학교에서, 태권도장에서, 학원에서 전국의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먼저 퍼졌다.

이번 커버스토리 기사를 보며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지난 1월 변진경·임지영 기자는 스물두 살 엄마를 둔 3남매 화재 사망 사건에 주목했다.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두 기자의 고군분투가 〈시사IN〉 제541호 ‘아동학대 보고서’ 기사에 담겼다. 민관의 관계망에서 벗어난 사례를 집중 조명했다. 한 차례 취재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해외 취재에 나섰다. 미국과 영국, 스웨덴을 찾았다. 해외 취재 기사는 다음 호에도 이어진다. 결론은 이렇다. ‘아동학대가 없는 나라는 없다. 아동학대라는 실패 앞에 포기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는 민관의 관계망은 여전히 헐겁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1명이 담당하는 아동이 평균 6300명. 올해 아동학대 예방이나 사후 관리에 배정된 예산은 254억3200만원. 전체 나라 예산(428조원)의 0.006%. 이 예산 대부분도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나온다. 사각지대를 없애기에는 인력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는 사이 2016년 한 해에만 아동학대로 36명이 숨졌다. 아들이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빌리면 ‘과거로 두기엔 너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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