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 판사가 방에 들어간다. 양육권을 두고 다투는 부부 앞에 앉는다. 아이의 진술서를 꺼내는 판사. 열한 살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이야기를 대신 읽어 내려간다. “저는 엄마가 걱정돼요. 그 사람은 엄마 괴롭히는 짓만 일삼으니까요. 그 사람은 아빠도 아니에요. 이혼한다니 기뻐요. 영영 안 보면 좋겠어요. 그게 다예요.”

남편(드니 메노셰)은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말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아내(레아 드루케)는 아이가 증언을 자청했다고 반박한다. 집에서 수시로 폭력을 휘두른 아빠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전한다. 남편 회사 동료들은 그가 “차분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딸 조세핀의 손목을 비틀어 병원에 간 적도 있다는 엄마의 항변이 이어진다.

어느 쪽 이야기가 맞는지 통 알 수 없다. 15분 동안 이어진 재판 심리 내내 연신 두 사람 표정을 살폈는데도, 선뜻 편들어줄 사람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관객은 이미 판사의 자리에 앉아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끌려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판사의 눈으로 지켜보는 건 여기까지. 한 발짝 떨어져 남의 일인 양 궁금해하는 것도 거기까지. 줄리앙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나는 별수 없이 줄리앙이 되고 말았다. 2주에 한 번 주말마다 아빠 차에 오르는 아이가 되었다.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아빠 옆에서, 잔뜩 굳은 표정으로 숨 한번 편히 쉬지 못하는 열한 살 소년이다. 둘 사이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둘 사이엔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가 멀리서 지켜볼 객석은 없다. 나도 함께 감당해야 하는 무대만 있을 뿐.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줄리앙은, 아니 나는, 그렇게 불안에 떨며 엔딩을 향해 떠밀려가고 있었다.

세상이 고개 돌려 발생한 비극을 기억하려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도무지 영화를 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래전 내 자신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가 매일 겪은 불안과 공포와 분노와 체념과 냉소와 절망을, 영화 속 줄리앙이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었다. 줄리앙의 열한 살 위로 나의 열한 살이 포개졌다. 나의 ‘그 사람’과 줄리앙의 ‘그 사람’은 참 많이 닮았다.

몇 번이고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망각의 서랍 속에 억지로 구겨 넣어둔 트라우마가 자꾸 비집고 나오는 통에, 영화를 끝까지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이유는, 세상이 쉽게 고개 돌리고 우리가 끝까지 지켜보지 않아서 발생한 수많은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가정 폭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려고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었다. “조용히 시작하지만 엔딩에선 의자 끝에 겨우 걸터앉게 만드는 영화”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조마조마한 라스트신 15분을 부디 많은 관객이 ‘목격’해주면 좋겠다. 그들에겐 우리가 필요하다. 편하게 판사 노릇하는 관객이 아니라, 기꺼이 목격자가 되고 증언대에 서겠다는 사람이 줄리앙과 엄마에겐 꼭 필요하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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