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표팀은 역대 월드컵 개최국 중 최약체로 평가받았으나 조 편성에서 행운이 따랐다. FIFA 랭킹으로만 보면 러시아가 66위, 사우디아라비아 67위, 이집트 44위, 우루과이가 22위다. 8개 조 가운데 A조의 랭킹 평균(50위)이 가장 낮다(한국이 속한 F조의 랭킹 평균은 25위). 러시아 대표팀은 역대 월드컵 본선에 모두 10번 진출했다(옛 소련으로 7번, 러시아로 3번). 최고 성적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 전설적인 골키퍼 야신을 앞세워 거둔 4위이며, 러시아로 재편된 뒤 참가한 3번의 대회에서는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94년 미국 대회에서는 1승(대 알제리) 2패, 2002년 한·일 대회에서도 역시 1승(대 튀니지) 2패,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는 2무(대 한국, 알제리) 1패를 기록했다.

ⓒAP Photo3월23일 러시아 대표팀이 경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 중 유일하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러시아가 그 두 번째 기록으로 남을지, 16강에 진출할지를 지켜보는 것도 이번 월드컵의 재미가 될 것이다. 일단 조별 리그의 대진은 러시아에게는 긍정적이다. A조에서 상대적으로 약체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먼저 만나고(대회 개막전) 차례로 이집트와 우루과이를 상대하는 일정이어서 전술 선택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는 개최국 러시아가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좋다. 만약 조별 리그를 통과한다면 16강 상대로 유력한 팀은 B조의 스페인이다(B조-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이란)

이번 대회를 위해 스타니슬라브 체르체소프 감독(스파르타크, 디나모 모스크바 팀 등을 지휘했으며 2016년 8월 러시아 대표팀 감독에 선임)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그 결과,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고르 데니소프(1984년생, MF, A매치 54경기)와 알렉산더 케르자코프(1982년생, FW, A매치 91경기 30골),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바실리 베레주츠키(1982년생, DF, A매치 101경기 5골), CSKA 모스크바에서 14시즌째 뛰고 있는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1979년생, DF, A매치 120경기 8득점) 등을 볼 수 없게 되었다.

ⓒTASS표도르 스몰로프(크라스노다르)
‘신의 손’이 뽑은 조 편성, 내친김에 16강까지

알렉산드르 코코린(제니트, A매치 48경기 12골, 2017-2018시즌 러시아 1부 리그 득점 3위-22경기 10골)이 무릎 부상으로 대회에 나설 수 없게 됐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득점을 기록했던 코코린의 역할을 표도르 스몰로프(크라스노다르)와 알렉세이 미란추크(안톤 미란추크와 쌍둥이 형제, 로코모티브 모스크바)가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018년 두 번의 평가전에서 이 둘은 모두 선발로 경기를 치렀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는 3-5-1-1의 ‘1’을 맡았고(스몰로프가 최전방 ‘1’),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3-5-2의 ‘2’에 포진했다(미란추크가 약간 내려서는 형태). 스몰로프는 A매치 30경기 12골을 기록 중인데, 2015-2016, 2016-2017시즌 연속해 러시아 1부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2017-2018시즌에는 득점 2위를 기록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스트라이커다. 왼발과 오른발 슈팅이 모두 좋다. 공간을 만드는 창의력이 뛰어난데, 올해 3월에 있었던 프랑스와의 평가전 때 프랑스 센터백 2명(사무엘 움티티와 로랑 코시엘니)의 뒤 공간으로 파고 들어가 득점한 움직임은 예술적이었다.

ⓒEPA알렉세이 미란추크(로코모티브 모스크바)
알렉세이 미란추크는 러시아의 젊은 별이다. 2012년 열일곱 살에 러시아 1부 리그에 데뷔했으며 2016-2017시즌에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러시아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쳐 1995년 A매치에 데뷔했고, 데뷔 후 3년 만에 자국에서 개최하는 월드컵 명단에 포함됐다. A매치에는 16경기에 나서 4골을 기록했으며, 2017-2018시즌 러시아 리그 전 경기(30경기)에 나서 7득점을 기록했다. 공을 지키고 연결하며 침투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전방과 MF 영역 전반이 활동 범위여서 체력적 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3-3으로 비겼는데 스몰로프가 2골, 알렉세이 미란추크가 1골을 기록했다. 특히 이 경기 전반 40분의 득점은 러시아 축구 팬들에게 이번 대회 조별 리그 통과의 확신을 심어줄 만했다. 스몰로프가 스페인의 아크 앞에서 원터치로 내주고, 이를 받은 미란추크는 공간을 만들어 찔러줬으며, 다시 스몰로프가 오른발로 잡고 왼발로 때려 골을 만들었다. 알렉세이 미란추크의 패스와 스몰로프의 침착한 결정력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이보다 한 달 앞선 우리나라와의 평가전에서도 이 둘은 한 골씩 넣으며 4-2로 승리했다. 러시아가 공격으로 전환할 때 이 두 명과 MF 3명, 윙백 중 한 명이 상대 진영으로 쏟아져 들어가 짧은 패스로 슈팅 기회를 만들어낸다. 올해 3월23일,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잘 맞아 들어가면서 20여 분간 브라질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스몰로프와 알렉세이 미란추크의 호흡이 러시아 득점의 결과를 좌우할 것인데, 이 둘의 능력은 조별 리그에서 경기당 1.5득점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스타니슬라브 체르체소프 러시아 대표팀 감독
체르체소프 감독이 사용하는 주 전술은 3-5-2 포메이션으로 2017년부터 센터백 3명을 붙박이로 운용해왔다. 빅토르 바신(CSKA 모스크바)이 스위퍼의 역할을 하고, 좌우 스토퍼로 표도르 쿠드리아쇼프(루빈 카잔)와 게오르기 지키야(스파르타크 모스크바)가 서는 형태인데,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였다. 상대의 역습 또는 ‘면 전환(Side-Change)’에서 발이 느려 위기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2018년 들어 여기에 더해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바신과 지키야가 부상을 당해 이번 월드컵 35명(28명 예비 명단+7명 추가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지키야를 대신해서는 블라디미르 그라나트(루빈 카잔)가, 바신을 대신해서는 쿠테포프(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또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독일 20세 및 21세 이하 대표팀 경력을 가진 로만 노이슈테터(페네르바체)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 3월에 있었던 브라질과의 경기에선 쿠테포프가 선발로 나섰는데 세트피스 수비 때 티아고 실바의 순간 동작에 당하면서 실점의 빌미가 됐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선 노이슈테터가 선발로 나왔는데, 킬리안 음바페의 접는 움직임에 당하면서 역시 실점의 단초가 됐다.

특히 브라질과의 경기 후반전 20분, 파울리뉴에게 추가 실점을 당했을 때, 러시아는 10명이 수비에 가담하고 있었다. 페널티박스 안에만 7명의 선수가 있었는데도 파울리뉴는 골 박스 안에서 수비의 방해 없이 헤딩으로 득점했다. 이유는 전반전에 소진했던 체력 문제와 더불어 수비 때 대인방어의 조직력이 잡혀 있지 않아서였다. 3개월 사이에 그 조직력을 만들 수 있을까? 러시아의 가장 큰 약점은 3-5-2 포메이션의 ‘3’이다.

ⓒTASS이고르 아킨페프(CSKA 모스크바)
이고르 아킨페프(CSKA 모스크바) A매치 104경기. 2002년 현재의 클럽에서 데뷔해 16시즌 동안 러시아 리그에서만 400경기 가까이 뛴 백전의 GK. 열여덟 살인 2004년에 국가대표에 발탁돼 이듬해부터 러시아의 주전 수문장이 됐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는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전했으며 경기당 1실점했다. 특히 한국과의 1차전 때 이근호의 중거리 슛을 막지 못하며 ‘기름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번 시즌 러시아 리그에서 28경기에 나와 20실점(경기당 0.7 실점)하며 팀의 리그 2위에 기여했다. 순발력과 슈팅 각도를 좁히는 능력은 좋으나 공중볼 처리 때 펀칭의 방향성이 아쉽다. 이번 대회, 러시아의 취약한 수비력을 감안할 때 조별 리그에서의 경기당 실점률을 1.3 이하로 유지할 수 있는지가 16강 진출의 열쇠가 될 것이다.

알렉산드르 사메도프(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1년 러시아 리그에서 프로에 데뷔했으며 해외 리그 경험은 없다. A매치 46경기 6득점.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에는 오른쪽 윙어였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격적 능력은 이미 검증됐으나 문제는 수비에 달려 있다. 지난해 한국과의 평가전, 올해 두 번의 A매치 모두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했다. 사메도프의 수비 능력에 따라 팀의 오른쪽 균형이 일관성 있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전 수비진의 부상으로 윙백들의 수비적 역할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어서 책임이 막중하다. 크로스와 슈팅의 정확도가 좋다.

알렉산드르 골로빈(CSKA 모스크바)
2014년 프로에 데뷔했고 20세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클럽의 주전으로 도약했다. A매치 17경기 2득점. 드리블과 오른발 킥 능력이 좋다. 왼쪽 윙백(유리 지르코프 또는 드미트리 콤바로프)과 서로 겹치면서 측면 또는 중앙으로 전진하는 움직임이 경쾌하다.

알란 자고예프(CSKA 모스크바) A매치 55경기 9득점. 3월에 있었던 프랑스와의 평가전 때 전방에 알렉세이 미란추크와 표도르 스몰로프가 거의 투톱 형태로 서고, 중앙 MF의 왼쪽에 알렉산드르 골로빈, 오른쪽에 알렉산드르 예로힌, 중앙 전방으로 알란 자고예프가 위치했다. 전방 압박의 위치와 강도를 적절하게 배분하고, 공을 소유했을 때 MF에서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상대를 끌어내는 전술을 구사했는데 그 핵심에 자고예프가 있었다. MF의 좌, 우, 중앙 모두에 위치할 수 있다. 동료에 대한 패스의 줄기를 잘 찾아내며 상대의 패스 경로를 잘 끊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기자명 이재후 (KBS 아나운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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