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한동안 방황했다. 이기는 건 당연하고 화끈해야 한다는 기조를 버리고 ‘실리주의자’ 카를루스 둥가 감독을 선임해 결과에 집착하는 축구로 선회했다. 화려한 축구는 차후로 미루고 잃어버린 승리 DNA를 되찾고자 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둥가 감독 체제도 실패했다. 밑바닥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했더니, 그 아래에는 불지옥이 있었다.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에서 8강, 2016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는 아예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축구 제국’이라는 수식어가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브라질 축구도 이제 끝이라는 푸념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역사상 최대의 위기였을 것이다. 그럴 만했다. 브라질은 초대 대회인 1930 FIFA 우루과이 월드컵 이후 전 대회 본선에 진출한 유일한 국가이며, 역대 최다인 다섯 차례 우승을 거머쥔 월드컵 역사가 보증하는 최강의 팀이었다. 1994 FIFA 미국 월드컵을 기준으로 세 차례나 대회 결승에 올라 두 번의 우승(1994·2002)을 경험했다. 세계 축구의 헤게모니는 돌고 도는 법이지만, 브라질은 지난 20년간 최강자를 논함에 있어 늘 가장 먼저 거론되던 팀이었다. 그런 팀이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정상과 시나브로 멀어지더니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이후 크게 몰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2016년 치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브라질은 과거의 우승 후보의 면모를 완벽하게 되찾았다. 브라질은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18전 12승 5무 1패(승점 41점)를 기록, 남미 1위 자격으로 ‘동토’를 밟게 됐다. 참고로 개최국 러시아를 제외하고 전 세계 예선을 통틀어 가장 먼저 본선행 확정을 알린 팀이 브라질이다.
치치 감독은 브라질 특유의 공격 축구 색깔을 살리되 전술적 측면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브라질 축구’ 하면 현란한 개인기로 수비수를 제쳐 골을 넣는 선수를 떠올린다. 브라질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전술은 최소한의 밑바탕일 뿐, 때로는 구차하게 여기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대 축구 전술의 발달로 이제 그런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천하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도 그들의 절대적 개인기를 전술이라는 시스템 위에서 구현하는 시대다. 치치 감독은 이 점을 주목했다. 돌파가 아닌, 패스와 ‘오프 더 볼 무브먼트’로 상대 골문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격을 전개하는 것에 주력했다. 치치 감독의 정확한 처방전은 본디 개인기만은 세계 최고 수준인 브라질 선수들에게 날개를 단 격이었다. 브라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행을 확정한 이유다.
브라질은 러시아 월드컵 E조에서 스위스·코스타리카·세르비아와 한 조에 속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만만찮은 내공을 가진 두 유럽 팀과 강력한 수비를 자랑하며 지난 대회서 8강 돌풍을 일으킨 코스타리카의 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위협이 될 수 있는 팀일지는 몰라도, 냉정히 브라질을 부러뜨릴 만한 힘을 가진 상대는 아니다. 다른 톱시드 팀에 비해 다소 까다로운 대진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브라질이 이들을 연거푸 쓰러뜨리고 16강 티켓을 가져갈 확률은 여전히 높다.
물론 브라질이 ‘완전무결한 팀’은 아니다. 특히 오른쪽 수비를 책임졌던 베테랑 다니엘 알베스의 공백은 지난 2년간 수비 강화에 큰 공을 들여온 치치 감독에겐 매우 큰 골칫거리다. 알베스가 네이마르와 더불어 팀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한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선수층이 두꺼운 국가다. 알베스의 공백은 다닐루·파그너 등 못잖은 기량을 가진 실력자들이 대체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빠지는 구석이 없는 팀이 바로 브라질이다.
그런 브라질에게 최대 관건은 조 1위 돌파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E조의 16강 진출 팀은 한국이 속한 F조에서 살아남은 팀들과 16강에서 8강 진출을 다툰다. 크로스 토너먼트라 조별 리그 순위가 확정되는 순간 대진이 결정되는데, 만에 하나 브라질이 조 2위에 그치게 된다면, F조 1위가 유력시되는 ‘전차군단’ 독일과 외나무다리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제3자에게는 미리 보는 결승전일지 모르나, 브라질은 절대 바라지 않을 시나리오다. 독일을 피해 E조 1위 16강에만 진입한다면 객관적 전력상 8강까지는 무난하게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4강 이후부터는 그 어느 팀을 만나도 진검승부일 수밖에 없는 만큼 일단 준결승 고지까지는 안정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 경험한 실패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오로지 네이마르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네이마르가 콜롬비아전에서 허리를 다치면서 브라질의 운명도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네이마르는 4년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파괴적인 공격수로 거듭났다. A매치 83경기에서 53골을 성공시키고 있는 네이마르는 브라질 A대표팀 역대 득점 4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등 이전보다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소속 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3개월여를 쉬어야 했으나, 한숨을 고르고 대회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도리어 전화위복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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